10월 9일 열린 ‘민주주의와 민생 위기에 대응하는 비상시국회의’는 10월 25일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한 새로운 연대 기구’(이하 민민련) 준비위를 발족하기로 결정했다.

‘다함께’는 촛불시위가 절정이던 6월 초부터 이미 이런 연대 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 때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포괄적인 공동전선으로 전환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 민민련이 이제야 발족하는 것은 기회를 놓치고 지난 촛불시위의 여파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민민련의 의의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민민련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비교적 제한된 쟁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보다 의제가 포괄적인 장점이 있다.

또 다른 저항의 분출에서 민민련이 정치적 상징 구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10월 9일 비상시국회의에는 한국의 주요한 시민·사회 운동 단체들이 참가했다.(다만, 다함께를 제외한 급진좌파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 단체들이 그동안 쌓아 온 영향력 때문에 운동이 분출할 때 또다시 주도적 구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민민련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이석행 위원장은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반독재 국민전선”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민민련에 물적·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동조합 고유의 쟁점보다 더 포괄적인 정치 운동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국민전선”에 보이는 열의가 파업 등 노동계급의 독자적 행동을 대체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면피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경제 위기 시대에는 더욱 단호한 투쟁만이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우려

다함께는 독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개혁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민민련 준비 기획단과 비상시국회의에 참가했다.

그런데 민민련은 발족 과정에서 논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까지 중요한 쟁점은 계급연합에 관한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정당인 민주당을 민민련에 포함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는 준비 논의 때부터 중요한 쟁점이었다. 준비 기획단에서 다함께는 민주당 초청을 반대했지만 다수의 의견에 밀려 10월 9일 비상시국회의에 민주당도 초청 명단에 포함됐고, 민주당은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했다.

10월 9일 비상시국회의에서도 다함께는 민주당이 참가해서는 안 되고 진보정당들의 참가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빈련, 진보신당도 같은 맥락에서 주장했다.

그러자 민민련을 주도하는 개혁주의자들은 아예 정당 배제를 타협안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면 민주당뿐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진보 정당들도 함께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당과는 그 계급적 기반과 주장, 실천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진보 정당들을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동안 세계사회포럼을 비롯한 국제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도 개혁주의자들의 ‘정당 배제’는 정확히 ‘좌파 정당 배제’였다. 개혁주의자들은 급진좌파 정당들은 배제하면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프랑스 사회당, 브라질 노동자당 등과 관계를 맺고 이들을 추수했다.

민민련 주도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1퍼센트에 맞선 99퍼센트”라는 수사에는 계급연합의 개념이 포함돼 있는 듯하다.

물론 ‘1퍼센트 최상위 부유층’을 위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좌절시키는 것은 사회 운동의 중요한 임무다. 그러나 그 대안이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까지 포함하는 99퍼센트의 단결과 연대일 수 있을까? 그 99퍼센트에 재벌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의 이해에 반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것은 트로츠키가 1930년대 프랑스 공산당의 계급연합 전략인 국민전선을 비판했던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 공산당은 “2백대 가문에 맞선 국민적 투쟁”을 강조했는데, 트로츠키는 “그 2백대 가문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게 아니라 금융자본 체제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백대 가문을 타도하려면 경제·정치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프랑스 공산당이 주장하듯이 한줌밖에 안 되는 재벌에 맞서는 국민적 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 하고 비판했다.

이런 우려가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민민련의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발족 단계에 있는 민민련은 아직까지 실천을 통해 선진 활동가들에게 입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변혁적 사회주의자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독립적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하면서 여기에 개입해야 한다. 동시에 경제 위기에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의 독립적 요구를 분명하게 하면서, 필요할 경우에는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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