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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 vs 마르크스주의

영국의 친(親)시장 싱크탱크 아담스미스협회의 수석 연구자 이몬 버틀러와 반자본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 크리스 하먼이 오늘날 경제 위기를 둘러싼 흥미있는 논쟁을 벌였다.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워커〉 2123호에 실린 이 기사는 〈저항의 촛불〉 독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이몬 버틀러 ─ “시장을 너무 많이 통제하고 규제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늑대인간 같은 자본주의의 탐욕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몇몇 사람들은 이 붕괴가 불가피했다고 여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단지 자본주의를 더 규제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 경제가 스스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도록 놔두지 않고 너무 많이 통제하고 규제했기 때문에 오늘날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977년 미국 정부는 모기지 대출 회사를 만들어 가난한 지역 사람들에게 대출을 늘리도록 했다. 가난한 서민들이 집을 사도록 돕는다는 것은 아주 훌륭하고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대출 회사들은 돈을 실제 갚지 못할 사람에게도 모기지 대출을 해 줬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서브프라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로부터 8년 뒤, 미국에서 7백 개가 넘는 금융기관이 도산한 저축대부조합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 개입해 구제 보따리를 풀었고, 은행들을 통합시켜 ‘망하기엔 너무 크게’ 만들었다. 참 잘한 일이다, 그렇지 않나?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1990년대 말 금융 위기로 러시아·아르헨티나·멕시코 정부가 지급불능을 선언하든 9·11 테러가 일어나든 미국 정부는 단지 달러를 더 찍어내 투자자들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한편, 영국에서 고든 브라운은 걷은 세금보다 약 2천8백억 파운드를 더 썼고 엄청나게 많은 현금이 시장에 유입됐다. 그래서 중국·인도 같은 신흥공업국에서 값싼 공산품이 수입돼 물가가 떨어져야 마땅할 때, 영국 중앙은행은 오히려 물가가 2퍼센트 상승하도록 방치했다.

모두가 잔치 분위기였고 샴페인이 터졌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정부가 마구 찍어낸 ‘장난감 돈’[가치가 부풀려진 돈]으로 뒷받침된 것이었다. 이것이 계속될 순 없었고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동안 규제 당국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그들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은 다가오는 은행의 연쇄 파산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문제가 터진 뒤에는 닭대가리처럼 행동했다.

정부가 공짜 칩을 나눠주고 규제 당국은 바에서 술이나 마시는 일종의 도박판에서, 일부 노름꾼들은 판돈을 위험 수준까지 올렸다. 그러나 비난받아야 하는 대상은 도박판 경영자지 손님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위기는 규제와 정부의 위기지 자유시장 경제학의 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만 가지고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현재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고 지금도 매년 8~10퍼센트씩 성장하고 있다. 다른 신흥공업국들도 강력하다. 심지어 경제 위기가 심각한 와중에도, 경제학자들은 내년 세계경제가 아마 4퍼센트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것은 최근 영국의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것이다. 따라서 세계 시장 경제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인도와 같은 경제들이 정부가 아니라 무역과 시장에 기대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했다. 그 결과 고생한 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장 체제 덕분에 빈민 수십억 명이 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만들고 약간의 기호품도 소비할 수 있게 됐고, 자기 자본을 모아 개인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시장은 이들과 그 가족들이 자립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해 줬다.

시장은 거대한 국제 협력 체제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아마도 남아메리카산(産) 가죽과 인도산(産) 염료를 수입해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리스 선박에 실려 영국 도매업체에 전달됐을 것이다. 이런 상호의존은 평화를 유지하는 강력한 힘이다. 기업인들은 병사가 아니라 상품이 국경을 넘길 바란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아닌 정부다. 이라크에 개입한 것은 토니 블레어지 스코틀랜드 은행이 아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의견이 각기 다를지라도 서로 협력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나는 이란 정부에는 호감을 갖지 않지만, 이란 농부들이 만든 잘 익은 대추는 좋아해 자주 사 먹는다. 이런 관계를 통해 우리 둘 다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시장은 고도로 효율적이면서 자율적인 체제다. 부족이나 잉여가 발생하면, 가격 변화가 일어나 수요와 공급을 조정한다. 수많은 사람과 그들이 가진 정보가 이 과정에 투입된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시장은 중앙집중적 계획보다 우월하게 작동한다.

시장은 재산과 신뢰를 보호하는 규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부가 생산자들을 조종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이런 규칙들을 유지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면 상황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시장은 전 세계에 부를 확산시키고, 사람들이 자기 삶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크리스 하먼 ─ “금융 위기는 극소수 ‘기생충들’이 아니라 부패한 체제 전체의 문제다”

금융 위기는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시장의 경이로움에 관해 들어온 얘기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보여 준다. 그런 이야기들을 앞장서 떠들어댔던 바로 그 경제학자와 정치인 들이 이제 1930년대 초 규모의 위기를 피하려면 국가가 개입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늘 위기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윤과 축적을 향한 맹목적 경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본가들은 신용과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다가 그들의 이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그래 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꼴사납게 나자빠진다.

19세기에 자본주의 위기들은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피해를 줬고 노동자들에게는 끔찍한 재앙을 가져왔다. 그러나 사회 최상층의 입장에서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소수의 파산에서 이득을 챙겼기 때문이다.

자유시장 이론가들은 정부 개입만 없으면 자본주의가 번영을 가져올 거라고 주장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그런 이론들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지 않았다. 개별 기업들의 규모가 너무 커진 나머지 그들이 파산하자 다른 기업들도 타격을 입었다.

거의 모든 친자본가 경제학자들이 국가가 개입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설파한 종류의 개입으로는 혼란을 끝낼 수 없었다. 기껏해야 미국에서만 짧은 회복이 있었고 1937년이 되자 새로운 문제들이 발전했다. 위기가 끝난 것은 오로지 제2차세계대전 덕분이었다는 데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럼에도 제2차세계대전 후 30년 동안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에 내재적 결함, 즉 약간의 국가 개입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결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1974년과 1980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케인스가 설파한 자본주의 교의에 따른 국가 개입 시도들은 그런 공황들을 끝낼 수 없었다.

많은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이 하룻밤 새에 태도를 바꿨다. 전에 그들은 위기는 국가 개입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었다. 이제 그들은 개입 자체가 문제라고 비난했다.

시장을 그냥 방치한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정부의 초기 정책은 심각한 위기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러자 레이건은 막대한 군비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에 국가를 이용했다.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 때 영국과 미국 정부는 모두 중앙은행들을 통해 경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어야 했다.

물론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거짓말이다. 시장은 늘 자국 경제에 기반을 둔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증진하려 애쓰는 국민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경제적 경쟁이 국가들 간의 군사적 경쟁으로 확대됨에 따라 시장 체계가 그토록 불안정해지고 전쟁으로 나아가기 쉬워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레이건과 대처 하의 자유시장이란 부자맞춤형 [국가] 개입과 나머지 대다수에 대한 신자유주의 강요를 뜻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 1990~ 1992, 1997~1998, 2001~2002년에, 그리고 다시 지난해에 ─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앞선 위기들로부터의 회복은 갈수록 부채에 의존했다. 은행들에 대한 정부 규제의 제거는 부채 규모를 엄청나게 늘렸다.

신용 대출 덕분에 전 세계에서 ─ 미국과 영국은 물론 중국과 인도에서 ─ 기업들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판매할 수 없었을 상품들을 위한 시장이 생겨났다.

대출 호황은 붕괴했고 그와 함께 은행들도 파산했다. 이것은 단지 극소수 “기생충들”이 아니라 부패한 체제 전체의 문제다.

우리는 시장이 영국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줄 거라고 들어 왔다. 서방 정부들의 압력 아래 시장 자유화 물결이 남반구 전체를 강타했다.

번영은커녕, 이것은 ─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 ─ 엄청난 규모의 심화하는 불평등을 초래했다.

그 때문에 많은 빈국 경제들이 세계 시장에 완전히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에 곤경을 야기하고 있는 위기가 남반구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체제를 구하기 위한 각국 정부들의 최근 시도들은 기껏해야 우리들에게 엄청난 부담만 지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시장이 파괴적이고 혼란으로 가득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사회를 운영하는 상이한 방식 ─ “자유시장”이나 상명하달식 국가계획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를 창조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 이 필요하다는 점을 증명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윤이 아니라 필요를 위해 조직되는 체제, 즉 사회주의가 필요하다.

크리스 하먼 주장에 대한 이몬 버틀러의 반박

우리는 지금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것일까? 이론에 대해서, 아니면 현실에 대해서? 현실 속의 지옥 같은 자본주의와 이론 속의 천국 같은 사회주의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비교하려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비교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자본주의 편을 들 것이다. 비록 자본주의에서 신용경색이나 심지어 대공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스탈린과 마오쩌둥 식의 대량 학살이 벌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옹호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나는 자유 시장을 옹호했다. 물론 강요와 착취를 예방해 주는 [사유]재산, 신뢰, 계약, 경쟁, 선택 등 시장 규칙을 유지하는 데는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심판이 아니라 선수가 되려고 할 때, 정치가 시장을 망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공황을 대공황으로 만든 것은 시장이 아니었다. 신용을 바닥나게 한 정부 당국의 책임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초래한 것도 시장이 아니다. 사실 누구도 위험한 사업을 벌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상황을 그렇게 몰고 간 것이다.

우리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 나를 그것도 인정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로 오해하지 말아 달라. 그러나 정부 개입은 시장이 잘 돌아가기 위한 틀을 유지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래야 번영이 지속될 수 있다.

자유시장이 잘 돌아가면 양쪽 모두 이득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자발적으로 교환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교역이 더 많을수록, 상호 이익이 더 커진다. 한때 폐쇄적이었던 나라가 세계 무역 체제에 동참하는 등 교역이 세계에 확대되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부유해질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시장은 부를 만들어 낸다. 반면 사회주의 나라들은 부를 그냥 탕진했다. 몇몇 나라들은 좀더 먼저 생산적인 자본을 창조했고 여전히 앞서가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정치인들의 보호무역주의만 없다면 선진국을 따라잡고 부유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천국이 아닐까? 하먼은 큰 정부에 맞선 투쟁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몬 버틀러의 반박에 대한 크리스 하먼의 재반박

정부 개입이 위기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완전히 궤변이다. 현재의 위기는 민간 은행, 모기지 업체, 헤지펀드 들의 행동에서 비롯했다. 그들은 사적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오랜 원칙을 따랐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에게 초래한 결과를 보라.

자유시장 원칙에 의존하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대규모 파산을 향해 치달았다.

조지 부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부자맞춤형 국가 개입을 통해 체제를 지탱하는 쪽으로 갑작스레 선회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1930년대 위기는 정부들이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도록 강요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독일이었다. 1932년 말에 대기업들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도록 허락하는 것이 위기가 계속되는 것보다는 “차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독일과 세계를 전쟁과 야만주의로 몰아넣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위기를 해결하려는 또 다른 시도를 보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이 포함된다. 이미 히틀러와 스탈린의 끔찍한 폭정 아래 죽어 간 것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매년 가난 때문에 죽고 있다.

시장은 일련의 서로 이득을 보는 자발적 교환이 아니다. 시장은 경쟁자를 지배하려 애쓰는 기업 간 그리고 국가 간의 무자비한 경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시장 참여는 경제적 강압, 즉 살기 위해 노동해야만 하는 필요에 기반을 둔다.

시장이 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투기꾼이나 은행, 사장 들이 그러는 것도 아니다. 부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부의 생산이나 분배에 대한 발언권이 전혀 없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 ─ 그런 부를 도둑질하는 자본가들이 아니라 ─ 의 통제를 따르는 국가가 모든 거대 은행들과 기업들을 몰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