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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노무현 정부의 등장을 좀더 길고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이 그 맥락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1879-1940)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은 노동자 계급 대중 조직”임을 지적했다. 달리 말해, 자유민주주의는 지배 계급이 조직 노동자 계급의 세력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국가의 정치 구조 안에 통합하는(“참여”시키는) 자본주의 국가 형태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조직 노동자 계급 통합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중재에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다.

노무현의 노동계 “참여”시키기가 ‘아슬아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와 자본(결정적으로 재벌)의 긴장된 관계가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둘째,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자본가들이 두려워한다.

셋째,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지배 계급이 내분해 있고 일관되지 못하다.

그래서 유례 없이 새 대통령 취임식 날에도 야당이 집권당과 의회에서 격투를 벌이고, “참여 정부”의 일부 조각에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엥겔스가 19세기 중엽 제정 러시아의 유화 정책에 대해 쓰면서 관찰했던 바, 곧 통치자가 흔히 두 적대 계급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면서 둘 모두를 견제하는 전술을 취하도록 만든다(〈뉴욕 트리뷴〉 1858년 12월 23일치).

그래서 김대중도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을 이용해 “재벌 개혁” 등 오른쪽을 견제하려 했고, 공안 세력과 한나라당 주류 등 오른쪽으로부터의 압력을 이용해 노동자 투쟁과 급진 좌파를 탄압했다.

노무현이 노동자 운동이 밑에서부터 가하는 압력에 밀려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실행한다 해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독재의 한 형태”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래서 위기 때는 자유 민주주의 정부도 혹심한 노동 탄압의 마각을 드러내곤 한다. 가령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 봅 호크(Bob Hawke) 노동당 정부는 호주판 노사정 합의인 “물가-소득 협정”의 한계를 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한다고 해서 건설노련(BLF: Building Labourers Federation)을 불법화했다. 몇 천 경찰을 투입해 피켓라인을 분쇄했다. BLF 지도자들은 구속돼, 날조된 혐의로 기소됐고, 노조 기금이 압류됐고, 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노조원들은 해고당했다.

또한, 1990년 뉴질랜드에 들어선 국민당 정부는 때때로 노조 가입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를 해고시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