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어떤 대안을 추구할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저항의 촛불〉은 한국에서 경제 위기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 온 주요 논자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장하준은 자신을 “빈국이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개발경제학자로 소개한다.

장하준은 주요 저작에서 과거 국가 개입을 통해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선진국이 오늘날 빈국에 자유무역과 탈규제를 강요해 발전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실과 맞지 않는 정책을 강요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대다수 반신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입장과 일치하며, 상상 속의 시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데서 장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장하준이 때로 너무 단순하게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칼처럼 구분하지만, 오늘날 서브프라임모기지와 각종 파생상품이 불러 온 위기를 보면, 자본의 ‘자유로운’ 투기 활동이 초래할 해악에 대한 그의 지적이 옳았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러나 다수 반신자유주의 사상가들처럼 장하준에게도 신자유주의 반대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특정한 자본 분파(주로 ‘초국적 금융자본’)가 저지르는 온갖 해악(탈규제, 민영화 등)에 대한 반대다.

장하준은 “경쟁은 기업의 성과를 개선하는 최선의 방법인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등 일정한 수준의 시장 경쟁이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제도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자체가 아니라 시장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풀어놓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계획

장하준이 시장을 신랄하게 비판한 뒤 돌연 꼬리를 내리는 것은 그가 자본주의 시장을 뛰어넘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 케인스도 동일한 지점에 도달한 바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무엇으로 대체할지 알지 못한다.”

장하준은 시장경제의 대안인 사회주의가 시장 경쟁을 완전히 부정하기 때문에 스탈린주의 체제의 낭비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완전한 중앙 집중적인 계획과 포괄적인 국유화를 통해 모든 경쟁을 억제하려던 시도는 경제의 역동성을 파괴하여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다.”

그는 민주적 토론을 통해 공동으로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정성진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토론하고 하면 지겨워서 안”한다는 엘리트주의적 근거로 거부한다. 대안은 “통제된 시장경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안을 논의할 때 장하준은 어떤 국가 통제가 필요한지 상세히 언급한다. 그는 빈국이 ‘선택적 산업 정책’을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금융자본’(또는 주주자본, 투기 자본)의 만행을 억제하고, 필수적 공공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준은 이런 국가 개입이 세계시장의 힘을 빌리는 방향으로 나갈 때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수입하려면 개발도상국들은 … 외화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 대부분[의 외화]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여야 한다. … 경제 발전을 위해서 국제 무역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시장과의 관계는 자본주의 틀 내에서 발전을 추구하는 모든 빈국들이 부딪치게 되는 현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한 나라가 추구했을 때 성공할 수 있는 것을 여러 나라가 동시에 추구하면 ─ 즉, 경쟁이 보편화하면 ─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장하준이 경제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박정희 모델이 성공을 거둔 것은 운좋게도 세계시장에 편입된 소수의 제3세계 국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제3세계 국가들이 대거 세계시장에 공산품을 쏟아낸다고 생각해 보자. 전 세계적 수준에서 엄청난 과잉생산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1990년대 빈국들이 커피를 대거 수출했다가 50퍼센트의 가격 폭락에 직면한 것이 좋은 예다.

‘중국 위협’

더 결정적 예로, 중국의 부상을 들 수 있다. 중국은 신자유주의 정책보다는 강력한 국가 개입으로 성장한 사례고, 일부 국가들은 성장하는 중국 경제에 수출해 성장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개도국은 서방 시장, 특히 미국에서 중국 상품에 밀려났고, 심지어 선진국들도 중국 상품과의 경쟁 압력 때문에 산업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많은 나라 지배자들이 ‘중국 위협’을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이 단순한 위협용은 아니다.

게다가, 중국 대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중국의 성공은 모순된 결과를 낳고 있다. 중국에서 빈곤률이 크게 하락한 시기는 수출 붐이 폭발한 1990년대 중반 이후가 아니라 주로 국내 소비 붐에 의존해 성장했던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10퍼센트 이상의 고도성장을 시작한 2003년 이후로는 오히려 절대 빈곤자의 수가 늘고 있다. 세계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농민에게 양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도 때때로 이런 문제를 인식한다. 그래서 수출을 통해 어느 정도 발전에 성공한 국가들 ─ 예컨대 한국과 가까운 미래의 중국 ─ 은 내수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시장을 키우려면 당연히 노동자·서민의 소비가 늘어야 하고, 이것은 때로는 엄청난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한 전문가는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지속가능한 수준’인 5퍼센트로 만들려면 노동자와 농민의 소득이 국내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 45~50퍼센트에서 65퍼센트대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러면 자본가들의 이윤을 엄청나게 깎아 먹어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볼 때, 자본가들은 설사 이런 변화가 축적을 좀더 안정적으로 만들더라도 알아서 양보하진 않을 것이다. 오직 아래로부터 엄청난 투쟁이 있을 때 약간 양보를 할 뿐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2004년부터 내수 진작을 주장했지만 같은 기간 수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이것은 중국 경제를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장하준의 주장처럼 시장에 대한 통제는 필요하며, 이미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주된 요구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시장을 뛰어 넘는 대안을 거부하고, 단지 그것을 규제하고 이용하는 것에 멈춰서는 전 세계 빈민이 끔찍한 가난과 때 이른 죽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더구나 현재 세계시장은 지난 30년간 가장 심각한 불황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대안으로 삼아야 할 것은 규제된 세계시장이 아니라 시장의 경쟁 논리를 폐지한 전 세계적 민주적 계획 경제다.

다음에는 현재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장하준이 한국 경제에 제시하는 대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