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아사프는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동·중앙아시아 지역 미군 총사령관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는 ‘테러와의 전쟁’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전략을 재평가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군사 동맹인 나토를 휘감고 있는 심각한 비관론 ─ 이 전쟁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 을 감안한 것이다.

페트레이어스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일부 “온건한”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어 그들을 “부족 민병대”로 전환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말했다. “나는 확실히 적들과 대화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가 가능한 많은 합의를 이루고 싶어 한다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지난 2001년 10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의기양양하게 승리 선언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들은 자신들이 짧은 시일 안에 치안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국군 신임 사령관은 이제 아프가니스탄에 병력 3만 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 점령 초기 2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으스댈 수 있었다. 탈레반은 사분오열했고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핵심 요소, 즉 전쟁으로 갈가리 찢겨진 나라를 재건해 “대중의 지지를 얻겠다”는 전략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 책정된 수십억 달러의 예산은 서방 건설업자·부패한 관리 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건설된 도로는 전부 군사용이었고 학교와 병원은 지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대신 미국은 자신이 임명한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가 수도 카불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카르자이는 대통령궁에 고립된 채 카불 밖으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가 통치하는 정부는 뼛속 깊이 부패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탄받는 전쟁광들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실패한 경제 정책의 실험장이 됐다. 수도 카불에는 휘황찬란한 쇼핑몰과 값비싼 식당 등이 들어선 거대 유리 빌딩들이 속속 생겨났다. 반면 나머지 지역의 아프가니스탄 대중은 기아로 신음하고 있었다.

만연한 부패와 빈곤은 탈레반 저항에 대한 연민을 부추겼다. 갈수록 많은 지역의 저항 조직들이 탈레반에 가담했고 탈레반은 점령군에 맞서 반격을 시작했다.

2001년과 2004년 사이 저항군의 공격에 점령군 약 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수치는 2005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2006년, 영국군을 필두로 한 나토는 탈레반의 핵심 장악 지역인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 대공세를 시작했다.

공습

초기에 이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한 듯 보였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전투기의 공습 앞에 저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다.

그러나 곧 희생자의 상당수가 민간인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민간인 마을에 공습이 반복되면서 대중의 분노가 대중 시위와 폭동으로 분출했다.

나토의 공습 때문에 전쟁이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파키스탄까지 확대됐다. 저항군은 아프가니스탄 점령군을 공격하고 부족장들이 통제하는 파키스탄 지역으로 돌아가곤 했다.

파키스탄은 어느새 ‘테러와의 전쟁’의 새로운 전선이 됐다. 최근까지 파키스탄을 지배한 친미 군사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을 안정시키려고 병력 수만 명을 투입했다.

그러나 무샤라프의 이런 시도는 저항군의 탈출 경로를 끊겠다는 애초 의도와 달리 군대 내의 저항만 촉발시켰다.

올해 초 그는 대중 항쟁에 밀려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새로운 민간 정부도 양쪽의 압력 ─ 미국 정부와 광범한 반전 여론 ─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긴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은 아프가니스탄 점령에서 핵심적인 곳이다. 나토는 이 지역의 키버로(路)를 통해 물자의 대부분을 공급한다.

파키스탄 저항군은 나토의 물자 수송을 공격해 그것을 탈취한다. 미국은 중무장한 무인 폭격기로 저항군을 “박살”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무인 폭격기의 공습으로 죽은 시체가 마을을 뒤덮었다.

전쟁이 확대되면서 병력 수가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지배 계급에게 각종 정치 위기로 대두되고 있다.

한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는 이라크의 군대를 빼내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여러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미군 사령관들은 이 성공이 “매우 취약해서 언제든 이전의 불안정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라크에서 미군에 대한 공격은 결코 완전히 멈춘 적은 없다. 바그다드와 그밖의 주요 도시에 대한 미국의 통제는 여전히 확고하지 못하다. 이라크 상황이 이처럼 불안하기 때문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병력을 이동하면 더 큰 위험에 노출될까 봐 두려워 한다.

이런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군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렵게 만든다. 현재 외국군 9만 8천 명이 아프가니스탄에 상주해 있는데, 이것은 점령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데 필요한 40만 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저항군은 카불로 통하는 많은 길을 통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대한 애초의 야심찬 계획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페트레이어스는 아프가니스탄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패배를 관리”하려는 이런 시도는 점령의 새로운 단계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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