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씨 커밍아웃(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 이후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홍석천 씨는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테러의 위협을 느낀다 … 매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하고 말했다. 이 사건을 통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가 가하는 불이익과 편견 그리고 억압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개인의 성 생활은 개인의 일이지 국가나 특정 집단이 통제하거나 제약해선 안 된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온갖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병든 사회인지를 보여준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들

이성애만이 인간 본성에 적합한 성적 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관념이다. 이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로 가득하다. 비정상적인 성장, 심리적 충격, 뇌기능 장애 등이 동성애를 낳는다고 보는 것이다. 지배 언론에서는 의식적으로 동성애를 마약, 도벽, 범죄 등과 동렬에 놓고 청소년들을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성애자들은 바이러스와 같다. 회사를 온통 동성애자로 물들일 것이다. 발각만 되면 ‘사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동성애자들에게 말한다. 동성애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라. 그러나 걸리진 마라.(<동아일보> 98년 6월 29일치)

동성애는 죄악이며 알코올 중독이나 섹스 탐닉, 도벽 등과 마찬가지로 다뤄져야 한다.(트렌트 로트 미상원 공화당 원내총무, <한국일보>)

동성애 문화가 무분별하게 확산될 경우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의 동조가 우려된다. 적극적인 대책이 시급하다.(한국에이즈연맹 권관우 본부장, <중앙일보> 96년 3월 17일치)

동성애는 이상 성욕의 표출이다.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심리·생리 현상이다 … 만에 하나 우리에게 전염됐을까 겁부터 난다.(<서울신문> 93년 5월 1일치)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역사》는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거짓말인지 분명히 보여 준다.

지배자들은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천형인 것처럼 말한다.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1992년말까지 전세계 1천3백여만 명의 에이즈 환자 가운데 소수만이 동성애자였다. 감염자 대다수는 가난 때문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성애자들이다. 케냐에서는 인구 18명 중 한 명꼴인 4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 짐바브웨에서는 성생활이 가능한 사람 5명 가운데 1명이 에이즈에 걸렸다. 한국에서도 1985년 이후 에이즈 감염자 중 동성애자는 19퍼센트에 불과하다.

종합 병원이나 전문 병원에서 주사 바늘을 통해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가난한 제3세계 나라들의 민중 ― 아프리카 지역 인구의 25퍼센트 ― 은 에이즈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콘돔과 깨끗한 주사 바늘을 살 몇 푼의 돈조차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HIV 보균자 중의 동성애자 비율은 20퍼센트에 불과하다. 에이즈 감염은 성적 지향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안전한 성행위 여부에 달려 있을 뿐이다.”(p.155)

에이즈의 원인을 동성애로 매도하는 것은 동성애자를 희생양 삼아 에이즈 예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는 에이즈를 동성애자의 병으로 간주하여 에이즈 확산을 방치했다. 그리하여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때 사망한 미국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로 죽었다.

보건 당국과 사이비 에이즈 예방 기구들은 에이즈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 동성애를 하지 않고, ‘건전한 부부 관계’만 맺는 것이라고 홍보해 왔다.

동성애자를 “변태성욕자, 성도착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 이전까지는 동성애를 ‘이상한 짓’으로 보진 않았다.

그리스 시대(대략 BC 500∼300년)에는 성인 남성들이 소년들에게 품는 성적 욕망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서 결혼이나 자녀 양육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봉건 시대 일본의 특권 무사 계급인 사무라이도 스파르타 전사들처럼 청년들과 남성들의 사랑을 발판 삼아 군대를 육성했다.

“서유럽 역사에서 ‘암흑 시대’로 알려져 있는 AD 500∼800년 사이는 폭력과 잔인한 만행이 난무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동성애에 대한 박해는 없었으며 이런 느슨한 완화기가 몇 세기 더 지속되었다.”(p.175)

동양의 많은 고전 문학과 민담 등에서도 동성애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로 묘사된다. 중국의 대표적 소설 《홍루몽》, 《금병매》 등에서 동성애는 이성애와 대등한 사랑의 가치로 다루어졌다. 조선시대의 작품인 《열하일기》에는 청나라 상인들과 소년들 사이의 동성애가 묘사돼 있고, 일제시대 홍명희가 쓴 《임꺽정》에도 머슴들의 동성애 행위가 묘사되어 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특별한 억압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뉴기니의 부족은 동성애가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나 특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 버다취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성의 선택 ― ‘젠더’라고 한다. sex(성)는 생물학적 개념 ― 도 자유로웠다.

성적 지향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의 성 지향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두 개의 산뜻한 범주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의 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명의 남자 중 적어도 1명이 다른 남자와 성 경험을 가졌으며 8명의 여자 중 1명은 다른 여자와 성경험을 가졌다. 1980년대의 한 보고서도 미국에선 남자 5명 중 1명, 프랑스에서는 4명 중 1명이 다른 남자와 성 경험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밖에 많은 연구들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의 경계가 희미함을 보여준다.”(p.22)

최근에 일부 유전학자들은 만약 과학의 힘을 빌려 특별한 게이 유전자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면 유전공학을 이용해 게이와 레즈비언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동성애 남성의 경우 여성에 대한 성 충동을 지배하는 뇌 특정 부위(전체 뇌의 0.000009%)의 크기가 정상인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그 크기는 여성의 것과 비슷하다.”(<미국 캘리포니아 솔크생물학연구소>의 사이먼 리베이 박사)

하지만 1973년 미국 정신과 의사 협회는 이런 내용이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동성애를 정신 질환이나 호르몬 문제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 서독의 외과 의사들이 28명의 게이를 이성애자로 만들기 위해 실시한 뇌 수술은 모두 실패했다.

이들 연구가 저지르는 더욱 근본적인 잘못은 인간의 행위를 단순히 생물학적 요인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생물학적·유전적 설명은 인간 행위가 시대에 따라 상이한 사회나 심지어는 개인들 사이에서 왜 달라지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동성애자는 왜 억압받는가?

동성애자 억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작됐다. 이성애와 구별되는 동성애란 말 자체가 생겨난 것은 1869년 헝가리 의사 벤케르트에 의해서였다. 왜 19세기 후반에 이런 관념이 생겨났을까?

제프릭 윅스는 자신의 책 《커밍아웃》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전개 양식은 산업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도시화가 이루어져 가족과 성관계가 개조되는 과정의 일부로 바라볼 때에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공식 담론에서 이제는 진부한 문구가 되어버린 개념과 의미들, 예컨대 ‘주부’ ‘매춘부’ ‘아동’의 의미나 ‘동성애자’라는 개념 등이 근대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은 모든 이런 변화의 결과였다 … 다름아닌 자본주의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동성애의 근대적 개념[강조는 필자]들이 생겨났다.”

자본주의 가족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가족이 곧 생산 단위였지만 자본주의에서는 그렇지 않다.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가족은 유일한 사적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가족도 자본주의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미래의 노동자를 키우는 것과 노동력을 재충전하는 것을 모두 가족이 담당하고 있다.

동성애 관계를 통해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존재는 자본주의 가족제도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 가족의 역할은 안정적인 자본 축적에서 필수적이다. 동성애는 자본주의 이윤 논리 때문에 억압받는다.

동성애자 억압을 없애는 길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면, 해방은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때만 가능하다.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세력은 노동계급이다. 따라서 동성애자 억압에 맞서는 운동은 노동계급 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20세기 초반의 역사는 레즈비언과 게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노동자들이 얻은 것 잃은 것과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레즈비언과 게이에게도 위대한 승리였다.

“소비에트 법률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사회와 국가가 성 문제를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유럽의 법률이 사회 도덕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기는 동성애, 남색(sodomy) 등 여러 다양한 성적 만족의 유형들을 소비에트 법률은 이른바 ‘자연스러운’ 관계로 간주한다.”(p.44)

노동계급 운동의 패배는 동성애자의 패배를 낳았다. 독일 노동자 운동을 박살낸 히틀러는 사회주의자, 노조 활동가뿐 아니라 레즈비언과 게이들도 대량 학살했다.

“히틀러는 1933년 1월 수상이 된 지 3주 만에 사회주의 조직과 게이 권리 조직을 금지시켰다 … 1935년에는 남성들 사이의 모든 ‘외설적인 행동’이 범죄로 간주되어 키스, 접촉 또는 연애편지까지 유죄를 받을 수 있었다. 나찌 독일에서 살해당한 게이의 수를 정확하게 집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만 명이 죽은 것은 확실하다.(p.46)”

현대 동성애자 해방 운동 역시 노동계급 운동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는 레즈비언과 게이에게 모진 세월이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에선 게이와 좌파모두에 대한 마녀사냥이 진행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수배되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1960년대 말이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1968년 프랑스에서 역사상 가장 큰 대중파업이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수십만 명의 흑인들이 시민권 쟁취를 위해 싸웠다. 1970년까지 4백만 명의 미국 학생들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항의했다. 현대 동성애자 해방 운동은 이러한 투쟁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 때 동성애자 해방 운동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는 흑인시민권 운동, 여성 해방 운동 그리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인 사상과 가치 체계에 도전했다.(p.120)”

1997년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대중파업은 한국 동성애자 운동을 한발짝 전진시켰다. 비록 소수였지만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자신의 깃발을 들고 노동자 시위에 동참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 수준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는 투쟁은 자본주의 가족에게 부과된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들에 맞서는 투쟁이기도 하다 … 동성애자들이 노동자 집회에 나간 이유는 같은 전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동성애자인권협의회 1997년 3월 11일 자료집)

동성애자들의 노동자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1985년 영국 광부파업 때 동성애자들은 적극 지지·지원을 했고, 광부들은 동성애자들과 함께 행진 했다.

광부 대표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레즈비언과 게이에게 등을 돌렸다. 우리는 그들과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 수년 동안 이것이 우리의 태도였다. 그런데 경찰, 언론, 국가가 우리를 공격하고부터 우리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갖게 되었다.(p.66)”

동성애자 억압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동성애에 대한 다양한 편견에 맞서야 한다.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역사》는 이런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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