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단언컨대, 외환위기는 없다” 하고 강조했지만 한국 자본주의는 수렁으로 계속 빠져들고 있다. 외신들에 이어서 이제는 누리엘 루비니, 폴 크루그먼까지 “가장 취약한 국가”,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라며 한국을 우려했다.

더구나 “IMF 때와는 다르다”고 했다가 “IMF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리·만 브러더스’의 오락가락 때문에 두 사람이 입만 열면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위기의 뿌리에는 〈저항의 촛불〉이 거듭 지적해 왔듯이 IMF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낮은 이윤율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금융이 방아쇠 구실을 하고 있지만 위기는 실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적 금융 위기의 여파, 경상수지 적자와 금융기관의 부실이 상승작용 하면서 위기는 더 깊어지고 있다. 한국의 은행들은 그동안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며 무리한 대출 경쟁을 벌여 왔다. 부동산담보대출 3백30조 원을 포함해 가계대출만 6백60조 원에 달하고, 건설사들에도 막대한 돈을 대출해 줘 부동산 거품 키우는 걸 도왔다. 2008년 8월 말까지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도 4백13조 8천억 원에 이른다.

이런 무리한 대출 때문에 은행들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올 8월에 1백40퍼센트 가까이로 치솟아 국제적 안전 기준인 90퍼센트를 훌쩍 넘겼다. 예금액을 넘는 대출 금액은 은행채 발행과 단기외화 차입 등으로 채워 왔다.

그런데 실물 경제에서 이윤율이 높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빚잔치와 부동산 거품 확대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었다. 결국 미국발 금융 위기 속에 은행들은 급속도로 돈줄이 말라 갔다. 더구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담보대출이 위험해졌고,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가파르게 올라 부실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고금리로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하거나 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은행들이 고금리로 나서면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며 주가는 더 폭락할 것이고, 대출을 줄이거나 회수하면 돈줄이 끊긴 기업들이 또 줄줄이 쓰러질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2백조 원이 넘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은행과 건설사의 돈놀이 실패를 보상해 주려 한다. 기준금리도 0.75퍼센트 낮추며 대출 금리를 낮추려 안간힘 쓰고 있다. 종부세 완화, 미분양 주택 구입, 재건축 규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 등 부동산 거품 살리기에도 올인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쏟아 부으며 주가 폭락도 간신히 떠받치고 있다. 서민의 노후를 위한 국민연금을 이렇게 불쏘시개로 쓰면서 벌써 20조 원을 날렸다고 한다.

불쏘시개

그러나 실물 경제에서 투자와 이윤이 확대되지 않는 이상 이런 모든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모르핀 주사’를 놓으며 시간을 끈다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외화 유동성이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세계경제 침체로 수출이 빨리 회복되기 쉽지 않은 만큼 내수 중심의 경기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며 대운하 등 ‘삽질’을 다시 시작할 듯하다.

대량실업과 비정규직화·임금 동결 속에서 부자 감세만 한다고 내수가 살아날 리도 없다.

더구나 이명박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배는 결코 출항할 수 없다”며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배들이 가라앉는 바다로 일단 나가겠다는 것이다.

헛발질만 해 온 강만수 사퇴를 조중동조차 요구하고 있지만, 하수인을 바꾼다고 재벌·부자 맞춤형 경제 체제의 온갖 모순과 위기들이 해결될 리도 없다. 물론 강만수는 어청수·최시중·유인촌 등도 함께 사퇴해야 마땅하고 친시장 정책도 철회돼야 한다.

지난해 미국 월가의 임원들이 주고받았다는 “카드로 만든 집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부자가 돼서 은퇴해 있기를 바라자”는 내부 이메일은 마치 지금 ‘리·만 브러더스’가 소망교회에서 같이 하는 기도처럼 보인다.

위기 속에서도 끝없이 아귀다툼을 하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강부자 1·2중대답게 일단 부자맞춤형 위기 대책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또 쌀 직불금 갈취 공범답게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배제한 국정조사단 구성도 합의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홍준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고, 조중동은 IMF 때 재벌에게 공적자금을 퍼 주고 정리해고 등으로 노동자를 쥐어짜던 김대중의 리더십을 새삼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과 함께 이명박에 맞서자는 진보진영 일부의 주장은 덧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막대한 세금과 국민연금을 쏟아 부어 주가를 떠받치고 금융기관·건설사의 투기적 수익을 지탱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닌 노동자·서민을 위한 진정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고통분담과 노사 화합’을 거부하라”를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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