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경제가 위기인가?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폭발하면서 미국 경제에 크게 의존해 온 한국 경제도 위기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겁에 질린 미국과 해외 자본가들이 달러를 회수하기 시작하자 한국 주식시장은 무너지고 환율은 치솟았다.

금융이 방아쇠 구실을 했지만 이번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실물에 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주요 산업에서 이윤율(투자 대비 이윤의 비율)이 하락하면서 1997년에 IMF 위기가 왔고 그것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때 이래 기업주들은 더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고 역대 정부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이를 지원했다. 그 중에는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서 자본가들의 이윤몫을 늘리는 방법(예컨대 정리해고제나 비정규직 악법)도 있었고, 투기와 돈벌이 기회를 주기 위해 금융자본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예컨대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도 있었다. 그러나 낮은 이윤율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는 별로 확대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김대중 정부는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신용카드 시장을 키웠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신용불량자만 양산했다. 그 뒤에 지배자들이 키운 것은 부동산 거품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거품 붕괴 위기다. 지금 이명박은 거품 붕괴를 막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

어떠한 정책도 경쟁과 축적에서 비롯하는 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고 비슷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없앴는가?

이명박 정부는 통화스와프가 “미국의 4번째 선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 국채를 내다팔겠다고 위협해 통화스와프 계약을 받아낸 듯하다. 빚을 내서 은행들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미국 정부로서는 국채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또, 미국 정부는 한국 등 신흥시장의 위기가 다시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뉴질랜드 등과도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게다가 미국은 약화하는 ‘달러 패권’을 강화할 필요도 있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가 아닌 위안과 루블로 결제하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며, 라틴아메리카 나라들도 자국 통화들로 직접 결제하는 방안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등이 8백억 달러의 아시아공동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하자 미국은 한국과 서둘러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통화스와프는 장하준 교수의 지적처럼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 더 받아온 것과 비슷하다”며 “우산 하나 더 있다고 폭풍우를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통화스와프 3백억 달러는 우리 나라의 하루 외환 거래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숨을 돌리긴 했지만 한국 경제에 쏟아지는 ‘폭풍우’는 더 거세지고 있다. 철강·자동차·반도체 등이 모두 하향세를 그리는 상황에서 수출은 계속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부동산 거품과 연결된 높은 가계부채, 건설사 부실, 금융 부실 등이 위기로 폭발할 가능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금융 규제 완화 정책은 투기꾼들과 헤지펀드의 공격에 의한 외환위기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명박의 부동산·건설 경기 부양책이 경기를 되살릴까?

이명박은 “수출이 어려워질 것을 감안해 내수를 더 살려야 한다”며 ‘11·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감세·재정지출 등으로 총 14조 원을 투입하고, 규제를 모조리 풀어 부동산과 건설 경기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내수 살리기’는 노동자·서민의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 증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혈세를 퍼부어 전국 곳곳에서 행복도시·고속도로·고속철도 등을 만들고 건설 자본가, 투기꾼, 땅부자들이 돈 벌 기회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질 일자리는 제한적일 것이고,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일 것이다.

이명박은 이를 통해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고 심지어 더 부풀리려 한다. ‘삽질’이 낳을 환경 파괴와 더 커진 거품의 붕괴가 낳을 끔찍한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지금, 건설사와 금융기관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무려 3백83조 원에 이르는 은행권 가계대출이 곧 만기가 돌아올 것이고 건설업체 부도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6퍼센트 급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11·3 대책은 건설사와 금융기관의 위기를 해결하기 힘들다. 은행과 건설사들의 부실 규모가 수백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낮은 이윤율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을 깎아주고 돈을 더 대준다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리 만무하다. 재벌들은 지금도 3백47조 원이 넘는 현금을 쌓아놓고 있지만 투자할 생각이 없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진정한 대안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모두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고 노동자·서민을 더욱 쥐어짜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최근 열린 한미재계회의에서 미국과 한국의 기업주들도 이명박에게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노사관계 재정비”를 요구했고, 이명박은 이들에게 “노사 문제는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부는 이미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정리해고 요건 완화, 임금 동결, 최저임금 개악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명박이 주장하는 ‘고통분담’과 ‘노사정 타협’은 이런 공격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강요이다.

이렇게 노동자와 밑바닥 서민들을 공격하고 쥐어짜면서 “마음만은 서로 따뜻하게 나누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이명박의 11월 3일 라디오 연설)니 정말 역겹기 짝이 없다.

따라서 이런 이명박 정부와 재벌·부자들만을 위한 ‘고통분담’과 ‘노사정 타협’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점에서 “사회적 대타협 제안을 환영”한 한국노총 지도부와 달리 민주노총 지도부가 “기만적인 ‘사회적 대타협’은 절대 안 된다”고 한 것은 옳다. 다만,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 등이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 폐기, 내각 총사퇴 등을 수용하면 우리도 고통분담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서로 한발씩 물러서자는 태도가 결국 잘못된 타협과 우리의 일방적 양보로 귀결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에 맞서서 민주당과 손을 잡아서도 안 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친기업 정책과 한미FTA 추진 등을 비판하지만, 사실 이 정책들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재벌·부자들에 기반을 두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아귀다툼을 하다가도 부자맞춤형 위기 대책에 ‘초당적 협력’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자·서민들의 연대와 투쟁이다. 특히 공기업 민영화, 한미FTA, 비정규직법 개악 등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원들이 앞장서 투쟁해야 한다.

쌍용차나 강남성모병원 노조 지도자들처럼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수수방관해선 안 되고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해야 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격에 맞서서 각개약진이 아니라 부문을 넘어서는 전국적·정치적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

노동자·서민을 살리기 위한 대안은 있다. 정부가 은행·건설사를 위해 쏟아 붓기로 한 2백조 원에 가까운 돈은 노동자·서민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한다.

민주노동당도 제안했듯이, 금융기관을 국유화해서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서민 국책은행”으로 운영해야 한다. 부실 건설사와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인수해 임대주택으로 전환하고 서민 복지에 활용해야 한다.

재벌 부자에 대한 감세를 전면 철회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더 자세한 것은 10면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을 보시오.) 이런 요구들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대중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이런 투쟁은 고장난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계획경제 건설의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