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블릭스는 1990년대 내내 유엔 무기사찰단과 미국의 정보기관·군사연구소들 사이에 긴밀한 연계를 구축하는 활동을 했다. 1990년대 초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었던 블릭스는 CIA한테서 북한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다.

전직 〈워싱턴 포스트〉 기자 돈 오버도퍼는 “스웨덴 외무장관을 지낸 블릭스 사무총장은 IAEA의 조사와 사찰에 필요할 경우 미국과 여타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채택할 권리와 의심이 가는 시설에 대한 의무적 ‘특별 사찰’을 통해 공개를 요구할 권리를 확립시켰다.”고 말했다.(《두 개의 코리아》, 중앙일보, 252쪽)

“미국 정부는 블릭스 총장이 주요 시설을 놓치지 않도록 블릭스와 그의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1991년 9월, 1992년 3월, 그리고 방북 직전인 5월 7일에 걸쳐 세 차례 정보 브리핑을 했다.”

영변에서 추출한 핵 샘플들을 입수한 블릭스는 그것들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패트릭 공군 기지로 보내 분석토록 했다.

그러나 1994년에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기로 합의했고, 결국 미국은 IAEA에 공격적 사찰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1991년까지 “IAEA의 업무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가맹국들이 자진 신고한 민간 핵시설과 핵물질 사찰에 국한됐다.”

그러나 걸프전 뒤에 부시(1세) 정부와 클린턴 정부는 이라크와 북한에도 압력을 가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블릭스는 “특별 사찰”이라는 절차를 고안해 냈다. 이 강제 사찰을 뒷받침한 것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라는 위협이었다.

이런 식으로 유엔 무기사찰단은 유엔 안보리의 핵 강국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약소국들을 혼내 주고 싶을 때 멋대로 이용하는 도구 노릇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