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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사회 운동의 대안

이 글은, 2월 1일 보건의료단체연합이 주최한 ‘2009 보건의료진보포럼’의 “경제위기를 넘어선 사회운동의 대안” 토론회 에서 패널 토론자였던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의 발표문이다. 이 토론에는 김하영 외에 하승창(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김세균(학계, 교수노조), 정태인(경제평론가, 진보신당)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2008년 가을 세계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금융위기는 이제 세계 경제위기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 위기들이 전에 없던 일은 아니지만 ― 1994년 멕시코와 1997-8년 동아시아와 러시아, 2001년 아르헨티나 ― 이번의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주변이 아닌 심장부 미국에서 시작됐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위기 초기만 해도 이번 위기가 미국의 위기로 그치고 그 결과 미국의 헤게모니는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할 것이라는 ‘비동조화’(decoupling) 주장이 강력했으나, 지금 세계 어느 지역도 위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최근 중국은 주가 폭락, 부동산 거품 붕괴, 수출 급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세계 경제 동향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들은 세계 경제 주요 부분이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제 이 위기가 ‘월스트리트(금융)’의 위기일 뿐 아니라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음이 확연해졌다. 이번 경제위기의 잠재적 심각성은 1930년대 대공황과 비견되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한국 경제의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현재 한국경제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수출 감소인데(수출의존도는 1997년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적자가 됐다. 지난해 12월 산업생산은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이었다. 경제지표들은 거의 다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나쁘고, 무엇보다 하락 속도와 깊이는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다. 작년 12월 하순에 발표된 200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0퍼센트였는데, 몇 주 만에 이 수치는 바닥을 향해 갱신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올해 성장률을 0.7퍼센트로 낮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상반기 성장률을 마이너스 2.6퍼센트로 잡았다. IMF는 1월 28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신흥공업경제권의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 3.9퍼센트로 발표했다. 그 직후 한국은행 총재도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시인했다.

위기의 원인

이번 위기의 원인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은 금융이 문제라는 것이다.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듯 모든 것이 탐욕스런 금융업자들 탓이고, 체제의 다른 부문은 무고하다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와 국경을 넘나들며 대규모 투기에 가담한 금융시장의 영향력 증대가 이번 위기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왜 금융이 전례 없는 규모로 성장하게 됐는가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위기의 근원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 그것은 1970년대 이후 계속돼 온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었다.

세계경제는 1960년대 말 이후 장기적인 수익성 위기를 겪어 왔다. 구조조정과 착취율의 증가로 1990년대 초에 이윤율이 조금 회복됐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회복이었을 뿐이다. 그러자 1990년대 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과 세계경제에 값싼 신용을 대거 공급해 심각한 경제위기를 막으려 했다. 재화와 서비스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임금이 정체하거나 하락한 노동자들에게 대출이 권장됐다. 미국에서 개인 부채는 1980년대 초와 2006년 사이에 무려 20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금융의 거대한 팽창은 자본주의 체제에 자리잡은 더 깊은 문제점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이런 투기 거품이 결국 폭발해 2007년 8월 신용경색을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1960년대 말 이후 자본주의를 괴롭혀 온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인 것이다.

국가 개입

경제위기에 직면한 각국 정부들의 대응은 대개 국가 개입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9월 7일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의 파산을 막기 위해 국유화를 단행한 뒤, 9월 14일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하더니 하루 만에 다시 태도를 바꿔 AIG를 인수하고 7000억 달러어치의 악성 금융자산을 사들이는 데 돈을 쏟아부었다. 미국에서 가장 우파적인 정부가 부자들을 보호하려고 75년 만에 전례 없는 규모의 국유화를 단행한 것이다. 이런 조처는 권력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해 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었다. 그들은 다급해지자 자신들이 수십 년 동안 설파해 온 것들을 모두 내팽개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미국은 8조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이코노미스트〉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주류 경제지들은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스주의자다” 하고 선언하며 “국가의 복귀”에 대해 얘기한다.

미국 공화당 우파 의원들은 부시가 취한 국유화 조치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비난했다. 여러 나라 진보 진영 일각의 케인스주의자들은 환상을 갖고 구제금융을 지지했다. 그러나 뉴욕의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가 잘 꼬집었듯이 그것은 “부자들과 연줄 든든한 사람들과 월스트리트를 위한 사회주의”일 뿐이다.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적 처방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흔히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케인스주의는 경제위기의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1930년대 대불황을 끝낸 것은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아니었다. 뉴딜 정책으로 잠시 경제가 최악 상황을 벗어나는 듯했지만 1937년부터 다시 불황이 시작됐다. 1930년대 불황을 끝낸 진정한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리한 경제학자들은 ‘제2차세계대전’이라고 답했다. 전후 첫 10여 년 동안 장기 호황을 유지시킨 것도 케인스 요법이 아니라 미국의 군비 예산이었다. 케인스주의적 개입은 1970년대 초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자 본격 시도됐는데, 경제가 활력을 찾기는커녕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물가도 오르는 현상(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그러자 1970년대 후반 각국 정부는 케인스주의를 포기했고 새로운 경제 정설인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다.

누가 위기의 대가를 치를 것인가

정부와 기업들은 경제위기 극복의 비용을 노동계급과 빈민들이 지도록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이윤이 증대하는 동안 그것을 나누자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우리는 경제위기가 돼서야 ‘나눔’의 미덕에 대해 듣는다. 이럴 때 사회운동은 저들이 위기의 대가를 우리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대중의 삶을 방어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제 해고와 실업이 심각해지고 알량한 복지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와 빈민의 일자리와 임금과 주택과 연금과 등록금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국가가 지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전에 신자유주의 논리를 들이대며 국가의 개입으로 시장을 교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정부는 이제 군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은행과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개입해 돈을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예컨대 사회운동 진영은 투기꾼들, 기업들, 호화로운 부유층을 살리는 구제책에 반대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IMF 당시 이런 경험을 했다. 169조 공적자금 조성으로 기업들은 더 부유해진 반면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로 더 가난해졌다. 이런 경험을 했음에도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은행 외채 지급보증 방안(은행들이 외국에서 낮은 금리로 빌려와 국내에서 대출해 준 - 대부분 부동산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 자금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기 위해 1000억 달러를 준비하겠다는 것)에 대해 진보진영 일각이 지지 불가피 입장을 펴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은행이 파산하도록 정부가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되,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낸 금융 시스템을 보호할 게 아니라 보통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경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가 현재 은행 시스템을 지탱해 준다면, 금융업자들은 눈앞의 문제가 해결되면 전에 하던 투기를 되풀이할 것이고, 정부 규제에 맞서 자산 해외 이전 위협을 할 수도 있다. 1년 전 영국 정부에 인수된 노던록은 그 뒤 담보 주택을 압류해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일을 한다.

부도 기업, 직장폐쇄, 매각에 대한 대안은 또 다른 예다. 이처럼 일자리를 위협하는 기업들은 국유화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가 그런 경우다. 프레디맥과 페니메이 그리고 AIG의 국유화 이후 이런 요구는 더는 공상처럼 들리지 않는다. 쌍용차는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하면서 고정비용 지출 절감을 위해 희망퇴직 시행, 순환휴직을 통한 평균임금 50퍼센트 축소 지급, 향후 2년간 임금 최고 30퍼센트 삭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주들은 해고와 임금 삭감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경제위기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면 일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줄이는 것은 다른 노동자들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을 줄이기 때문이다. 위기는 더 심화될 뿐이다. 직장 폐쇄와 대량 해고를 단행하려는 기업들을 국유화해 노동자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은 임금 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삶을 개선케하는 요구가 특히 필요하다.

국가간 갈등 격화

경제위기는 세계 지배계급들 사이의 충돌을 격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독일 재무장관 슈타인브뤼크는 이제 미국의 “금융 초강대국 구실이 끝났다”고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 국가는 약화하는 경제력을 보강하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하고픈 의욕이 더욱 강렬해진다. 패권적 위치가 흔들리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 때문에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미국의 패권을 세계에 확인시키고자 했던 이라크 정복은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쟁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공격,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공격 등은 모두 미국이 부추긴 것들이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의 “확전 태세”를 강조했고, 미군을 두 배로 늘리는 부시 정부의 계획도 이어받았다. 오바마 정부의 대외 정책이 전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오바마 정부는 동맹국들의 기여 수준에 불만을 토로하며 한국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이제 곧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가 떠오를 것이고, 미국의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투쟁은 올해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 이 시도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석유 등 원재료에 대한 중국의 수요 증대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에 변화를 초래하는 것도 이 갈등에 한몫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북미관계의 배경에는 늘 중미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문제 국가”(또는 “깡패국가”나 “폭정의 전초기지”나 “핵 보유국”)로 취급하는 것은 늘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자신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과 관련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한반도도 함께 불안정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촛불의 교훈

제2의 촛불이라는 유령이 어른거린다. 이것은 이명박에게 악몽이다. 게다가 제2의 촛불은 두 가지 점 때문에 지난 촛불보다 더 격렬한 양상을 띨 수 있다. 첫째,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이 내포하는 폭발 잠재력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정정길은 지난 연말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이 부도 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고 봉합했지만, 이것은 단지 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아이스랜드에서 몇 달 만에 대중 시위로 정권이 퇴진하는 것을 보라.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촛불의 효과로 운동권 총학생회가 늘어난 일 등에서 보듯 대학생 단체들도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이명박에 대한 염증이 6개월 동안 더할 나위 없이 악화됐다. 이명박은 고개 숙여 사과하고 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을 모두 다시 추진했고, 야비한 촛불 복수극을 벌였다. 이명박 정권은 ‘3월 위기설’ 등이 퍼져 있는 마당에 조금이라도 밀렸다가는 둑이 터지는 효과가 날까 봐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사건과 김석기 내정 철회 문제 등에 대해 밀리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시민사회운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우선, 시민사회운동세력은 대안을 제시하고 운동이 최대한 단결해서 강력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보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경제위기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오른쪽을 향할 수도 있다. 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전망을 책임 있게 제시하지 않으면 운동은 표류할 수 있다. 지난 촛불에서 시민사회진영은 운동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전반적 반대로 발전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거리에서 자연스러웠던 정권퇴진 구호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100만 명을 모은 운동이 어디로 나아갈지 불분명해지자 운동은 응집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것은 운동이 살아움직이는 것이어서 요구 수준을 낮게 유지하는 것만으로 단결과 규모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단결을 위해서는 매순간 적절한 방향이 제시돼야 한다. 예컨대 지난 촛불 초기 국면에서 정권과 보수언론은 순수한 의도의 촛불집회와 순수성을 잃은 거리행진이라는 식으로 이간질하려 했다. 한때 대열이 분열돼 집회도 두 곳에서 열렸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내 다수는 가족단위 참가자들을 근거로 거리행진을 꺼렸지만, 일부 세력의 주도로 본 대열이 거리행진에 나섬으로써 비로소 단결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시위 규모가 급증했다.

둘째, 운동이 파편화돼 각개약진하지 않고 하나의 큰 연대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분산과 자율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정권에 맞서 효과적인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에 반대하는 수십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각각의 운동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갖가지 방법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지난 촛불은 참가자들에 의해 의제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철거민살인진압 규탄 운동은 MB 악법과 민생파탄 반대로 이어져 확대돼야 할 것이다. 사실, 시민사회진영은 지난 촛불 이후 이명박의 민생 파탄/민주주의 파괴라는 포괄적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민생민주국민회의’를 만들었으나, 민생민주국민회의는 민생 문제이자 민주주의 문제인 철거민살인진압 문제에 중심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셋째, 경제위기 국면에서 노동자 투쟁이 더욱 중요해졌다. 시민사회운동은 이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또, 제2촛불과 노동자 투쟁이 결합될 수 있도록 (요구의 결합 등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촛불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참가하면 참가자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촛불의 의의를 삭감시킨다는 의견을 일부에서 강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촛불 대중은 운송거부 노동자들의 투쟁에 환호했고, 6월 초에 이르면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나선 게 아니라 오히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넷째,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이명박에 맞서 민주당과 상시적 동맹을 맺는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권 방어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비판적 협력이 가능할지라도,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전략적 대안을 건설하는 데서 민주당이 포함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지금 노동자·서민 고통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고 자본가 계급의 정당이다. 게다가 지난 촛불 때와 달리 연말 MB 악법 반대 정국을 지나면서 민주당의 위상이 제고돼 우리가 주도해서 민주당을 ‘견인’할 수 있다는 낙관도 근거 없게 됐다. 특히 지방선거나 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민주당과 연합을 해서는 안 되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범시민사회진영이 단결해서 ‘도로 민주당’이 아닌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시민사회운동은 참가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적 구조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촛불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대한 비판은 그저 거리의 불만으로만 존재했다. 이런 의견이 책임있게 개진되고 반영될 통로가 없다 보니 불만은 생산적·협력적이 되기 어려웠고, 어떤 것도 참가자들에게 구속력이 있는, 권위 있는 결정이 되기 어려웠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대국민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으겠다고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이런 식이다 보니 연합체 내에서도 비민주적 관행이 벌어지곤 한다. 분명히 민주적 절차에 따라 내려진 결정을 소수가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것 같으면 퇴장해 단결을 위협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섯째, 대다수 급진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에 종파적 태도를 취하고 공동전선에 열의있게 참가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시민단체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광범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특정 조건에서 급진 좌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대다수 급진좌파 단체들은 지난 촛불 참가에 매우 굼떴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도 적극 참가하지 않았다. 내부 논란이 심화될 즈음 나오기 시작한 단체들은 흔히 ‘반대하러 왔느냐’는 의혹을 사기 쉬웠고, 무엇보다 함께하면서 발전적인 비판을 하는 관계라면 얻을 수 있을 설득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곤 했다. 운동을 함께 협력적으로 건설하고 그 안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참을성이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아래로부터의 행동보다 정책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대국회사업’에 신경 쓰는 상황에서 시민단체부터 좌파 조직들, 즉 시민단체들, 민중단체들 그리고 정당을 포함한 정치조직들(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노준, 사노련, 다함께 등)이 상시적이고 포괄적인 공동전선을 구성해 정책뿐 아니라 투쟁에도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운동은 지난 촛불의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배워 ‘제2의 촛불’이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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