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NPA 창당 대회는 투쟁의 상승과 함께 좌파도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1월 29일 프랑스 정부의 경제 불황 대책에 반발해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주에는 프랑스 운동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다.

노조 지도자들이 추가 행동을 벌일지, 아니면 2월 18일 사르코지와의 회담까지 기다릴 것인지 서로 논쟁하는 동안, 학생들은 대학교 직원들과 함께 고등교육의 시장화에 맞서 싸우는 전국 공동위원회를 결성했다.

또,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은 NPA 건설에 뛰어들기 위해 해산했다.

NPA는 우익의 신자유주의 공격에 맞선 투쟁 속에서 탄생했다. 또, 사회당이 우익의 공격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데 대한 불만도 탄생에 한몫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4백60여 개의 NPA 지역위원회가 결성됐고, 9천여 명이 당원으로 등록했다.

6백50명의 창당 대회 대의원을 선출하는데 전체 당원의 약 70퍼센트가 참여했다. 또, 약 30개국에서 참관인들이 방문했다.

NPA 대의원들은 자본주의와의 혁명적 단절의 필요성뿐 아니라, 개혁주의 조직들에 독립적이면서 투쟁에서 좌파들의 단결을 추구할 필요성도 고려해 창당 원칙들을 채택했다.

〈소셜리스트 워커〉는 NPA에 관해 몇몇 대의원들과 인터뷰했다.

지난 40년 동안 정치 활동에 참가해 온 프랑스 노총(CGT)의 알랭은 이렇게 말했다. “창당 대회는 큰 성공을 거뒀다. 많은 대의원들이 NPA의 창당 원칙들에 동의한 것은 대단한 일이며, 새로운 정당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우리의 주된 임무는 다양한 투쟁들에 개입하고 그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새로운 활동가들을 교육하고 사람들에게 선거철이 아니어도 자신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파리에서 계약직 노동자와 주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여 온 라일라는 이렇게 말했다. “1년 반 전 NPA 창당 호소문을 봤을 때는 별로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리된 운동들에 참가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공통의 적에 맞서고 있는데 말이다.”

“이 모든 운동들은 시장에 맞서 싸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 조직이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의원들은 NPA의 다양한 정치 경향들을 반영해 전국 지도위원회를 선출했다.

대의원 오렐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개혁주의 정당이냐 혁명적 정당이냐의 문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 선거 연합 문제도 있고, 미래에는 당의 내부 민주주의 문제도 중요해 질 것이다. 사람들은 창립 대회에 열광했지만, 동시에 타협도 해야 했다. 기대도 크지만, 자신의 정치적 고향을 떠나면서 어느 정도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지난 15년 동안 마르세유에서 지역 활동에 참가해 온 아딜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제나 LCR 지지자였고 선거 때마다 브장스노에게 표를 던졌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35세에 두 명의 자녀가 있는 사람이었고, 저녁 식단의 ‘변혁’은 충분히 해 봤지만 그 이상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마르크스나 트로츠키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우리가 더 많은 투쟁을 벌일수록 더 많은 공공서비스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이 다른 나라에 본보기가 되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브장스노는 이렇게 말했다. “사르코지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엄청나다. 그동안 사람들의 분노는 사회 투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투쟁은 정치적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NPA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창당 대회의 진지한 분위기 ― 대의원들은 3일 동안 20여 개의 주제를 토론했다 ― 는 NPA 당원들이 운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무엇이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이제 프랑스에서 전 세계 급진 좌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반자본주의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짐 울프리스는 반자본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위원으로 영국 킹스칼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프랑스 정치와 관련한 많은 책과 논문을 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