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성 한 가지를 지적하면서 제국주의에 관한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경쟁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마르크스에게서 배우지 않았다면 마가렛 대처나 로널드 레이건 같은 사람들로부터 들어 봤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쟁이 비효율을 몰아내고,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을 도태시키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이 없는 나라들을 망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쟁은 결코 경제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인 논점이지만 우파 논객들은 흔히 이를 무시합니다.

세계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처음에는 경제적인 경쟁이 필연적으로 전략적·군사적 경쟁으로 비화하며, 급기야는 주요 강대국들 사이의 공공연한 전쟁으로 확산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즉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경제적 경쟁이 군사적 경쟁을 부르는 것은 자본주의가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자본주의의 특징이었습니다.

17세기에 각각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자본가 계급이 권력을 획득한 뒤로 바다와 대륙, 그리고 시장의 지배를 둘러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등 그 시대를 주름잡은 대형 무역 회사들은 회사 소속의 군대까지 갖추고 서로 싸웠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경제적 경쟁과 군사적 경쟁의 융합을 보여 주는 원형입니다. 또한 그 뒤로 가장 강력한 공업국들이 아메리카 대륙, 인도, 동양 등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더 강력해지고 경제적 경쟁이 더 치열해질수록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 기구가 더 긴밀히 융합됐습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결합 덕분에 각 제국은 차례대로 부흥하며 세계를 재분할하고 재식민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제가 발전하고 생산력이 증대될수록 파괴 수단 또한 강력해졌습니다. 무기의 파괴력이 더욱 발달했으며 기업들과 그들의 국가들이 부릴 수 있는 군대의 규모 또한 거대해졌습니다.

그래서 인류를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거대한 생산력의 진보가 도리어 인류가 상상도 못했던 끔찍한 파괴 수단을 개발하는 데 돌려져 온 것입니다.

그 결과 20세기의 마지막 50년 동안에만도―즉,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만도―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가 19세기 전체를 통틀어 전쟁으로 죽은 사람 수의 갑절에 이릅니다. 또, 18세기의 7배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비행기인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는 한 대 가격이 23억 달러입니다. 자기 무게의 3배에 해당하는 양의 금 값과 맞먹는 액수입니다. 자기 국민에게 기본적인 의료 혜택도 제공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이런 폭격기를 만들고 있는 야만적인 현실 또한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경쟁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국가 권력과 군사 기술, 그리고 경제적 경쟁의 융합 때문에 세계가 자본주의적 경쟁의 초창기부터 여러 자본주의 제국들로 분할되고 재분할되는 과정을 거듭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20세기에 들어와 수많은 지역 분쟁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의 권력 재편을 가져온 세계적 전쟁이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단지 이 체제의 일반적 성격입니다. 우리가 이를 쓸모 있는 분석 도구로 활용하려면 그것을 토대로 21세기의 전쟁 동기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21세기의 전쟁 동기를 이해하려면, 전쟁을 유발하는 서로 구별되지만 관련 있는 두 가지 과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3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화”라는 경제적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입니다.

빈곤과 불평등의 세계화

우선, 이 현상의 경제적 측면, 즉 “세계화”라고 알려진 과정을 살펴봅시다. 세계화 시대는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기이자 세계 시장이 확대되는 시대입니다. 국제 무역, 국제 금융, 국제적 생산―이렇게 세 영역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국제 무역은 10배 성장했습니다. 유럽에서 산업혁명 절정기였던 1870년과 제1차세계대전 사이에 국제 무역이 겨우 3배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같은 기간에 국제 금융 거래는 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국제적 생산은 여러 명백한 이유 때문에[예컨대 공장 옮기기는 인터넷으로 계좌 이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세계적 규모로 조직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국제적 생산이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 퍼센트에서 8.4 퍼센트로 갑절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옹호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 확장의 다른 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체제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엄청난 증대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같은 체제의 넓은 부분이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장이 대부분 일본과 유럽, 유럽과 미국,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을 뿐, 그보다 넓은 규모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불평등은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만 존재하는 지리적 불평등이 아닙니다. 불평등은 체제 중심부의 사회 안에도 존재합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불평등의 수준을 가늠하는 수치들이 모두 20년 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미국에서 노동자 한 명의 월급으로 1960년대 말에 가능했던 생활 수준을 누리려면 지금은 노동자 두 명의 월급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뉴욕의 일부 지역 유아사망률은 방글라데시보다 높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런던 동부에서는 20세기 초에 없어진 줄 알았던 결핵과 구루병이 빈민들 사이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옹호자들은 소수 기업들 손에 막대한 부가 집중돼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3백30개 주요 기업들이 선진국 국내총생산(GDP)의 25 퍼센트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불량 국가”들, 파탄난 사회들, 최빈국들의 군국주의가 무엇에서 비롯하는지 조지 부시가 알고 싶다면, 그것은 바로 불평등과 불의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세계화에서 비롯하고 있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전쟁저지연합’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분노가 어디서 나오는지 [부시가] 궁금해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나라와 제가 살고 있는 나라 모두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와 사기업화 때문이며, 영국 사람들이 말하는 ‘탐욕스런 사장들의 문화’ 때문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미 제국은 자신의 경제 정책이 창조한 이 통제 불능의 세계를 단속할 수 있는 능력이 50년 전에 비해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당시에 미국의 제조업 생산은 세계 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경제를 회생시킨 마셜 플랜을 감당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생산은 세계 생산의 22 퍼센트 선에서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마셜 플랜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대선 캠페인 때 보기 드물게 대외 정책에 관한 토론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콘돌리자 라이스가 “82 공정 사단 병사들이 왜 발칸 반도에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일 따위나 하고 있는가?” 하고 불평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발자국을 가볍게 하자[자기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주둔군을 적게 남기자는 뜻―옮긴이]고 말하는 것도, 또 이라크에 군대를 18개월 이상 주둔시킬 의사가 없다는 영국과 독일을 붙잡고 주둔 기간을 3년으로 늘리라고 사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걸프 전쟁의 비용을 서방 동맹국들에게 최대한 떠넘긴 것도 그들의 능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 제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방 예산은 미국 다음으로 군사 지출이 많은 9개 국가의 국방 예산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은 이 군사력을 이용해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다시금 강화함으로써 경제력의 상대적 열세를 만회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에 전쟁을 촉발시키는 둘째 핵심 변수인 국제 질서의 재편과도 관계 있습니다.

세계화가 낳은 불안정과 불평등이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질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부추기는 한 가지 요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일어난 네 차례의 주요 전쟁들[1991년 걸프전, 1995년 보스니아 전쟁, 1999년 발칸반도 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직 베를린 장벽 및 동유럽 국가들의 붕괴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국제 경쟁의 결과로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1989년까지 세계는 양대 제국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1989년 이후 양대 제국 가운데 하나[소련 블록]가 붕괴했고, 그 결과 40년 동안 서방 기업들과 군대가 접근할 수 없었던 영역이 개방됐습니다.

이 덕분에 1989년 이후 미 국방부의 전략가들은 그들이 “유라시아 대륙”이라고 흡족하게 부르는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서는 옛 제국주의 질서가 붕괴한 뒤로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현대판 아프리카 쟁탈전, 세계적 규모의 골드 러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991년 초 걸프 전쟁은 냉전 해체 이후 세계 정세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중동 지역에 대한 서방의 이익과 그것을 수호하려는 서방의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선언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중동 지역은 오늘날 서방 국가들에게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연합군 최대의 전리품은 아랍의 석유”라고 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1990년대 말에 일어난 발칸반도 전쟁은 폴란드·헝가리·체코공화국이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나토 역사상 처음으로 그 영역이 확장된 바로 그 달에 시작됐습니다.

폴란드 등의 가입 덕분에 동쪽으로 수천 마일 더 확장된 나토의 경계선은 발칸반도 지역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혔습니다. 발칸반도 지역은 북쪽의 신입 나토 회원국들과 남쪽의 신입 회원국들인 그리스·터키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발칸반도 지역은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위치, 즉 제국들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는 지역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발칸반도 지역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발칸반도는 석유가 매장된 동쪽의 카스피해로 향하는 훤히 트인 길목이기도 합니다.

전쟁이 발칸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가는 동안 미국의 군사기지와 군사·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석유 개발 및 송유관 건설 계약이 뒤따랐습니다.

폴 월포비츠, 도널드 럼즈펠드, 딕 체니 등 오늘날 미국의 대외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바로 이 문제들에 관한 수많은 정책 회의를 열어 가며 심사숙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보기보다 약합니다.

앞서 말한 그 자들은 미국 대외 정책의 우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권을 찬탈했습니다. 제가 ‘찬탈’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들이 대선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는데도 승리했기[조지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 주에서의 선거 부정을 뜻함] 때문입니다. 부시 정부는 정통성이 결여된 약체 정부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21세기 세계 질서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할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중대한 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박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은 나토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분열시켰습니다. 그들은 또한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악화시켰습니다. 도널드 럼즈펠드가 게르하르트 슈뢰더 앞에서 마치 상대방이 세계 3위 경제 대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 거만하게 설교를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독일의 외무장관 요슈카 피셔는 “저는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은 전쟁을 치러야 할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며 “저는 이 전쟁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없습니다”라고 영어로 반박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국제 사회가 지난 한 세대 동안 보지 못했던 최악의 분열을 겪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 좌파들은 UN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를 오래 전부터 의심해 왔습니다. 그러나 조지 부시는 단 몇 주 만에 우리가 수십 년 동안 UN을 비판함으로써 할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UN의 권위를 실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겪고 있는 이 모든 분열보다 더 큰 위협은 바로 우리[반전 운동 세력]의 존재입니다.

미국에서조차 부시의 지지도는 9·11 직후 75 퍼센트 이상이었던 것이 현재 58 퍼센트로 추락했습니다. 더욱이 전쟁 외의 다른 쟁점에서 부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인 가운데 고작 13 퍼센트만이 부시의 경제 정책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 부시의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영국 국민의 80 퍼센트 이상이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52 퍼센트는 UN의 승인이 있든 없든 전쟁에 무조건 반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단순한 분위기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21세기의 출발점에 있는 이 시대에 더는 세계를 지배자들의 손에 내맡겨 둘 수 없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의 운동입니다.

전 세계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이 대표한다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이 역사적 순간은 눈부시도록 놀라운 광경입니다.

지금은 영국 시인 셸리의 다음 구절을 떠올려야 할 때입니다.

“거인들이 거인인 것은 단지 우리가 무릎 꿇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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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A

Q 부시의 전쟁 몰이는 이집트의 파라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몽고의 징기스칸 등이 벌인 침략·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A 자본주의 시대에도 로마 제국 같은 제국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경쟁 과정에서 논의를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런 축적 드라이브가 현대 제국주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와 그 파괴력이 전 자본주의 시대의 제국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군사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의 결합이 현대 사회의 핵심에 놓여 있고, 그 때문에 오늘날 제국들의 파괴력은 그토록 강력할 수 있으며 두 차례 세계 대전과 수많은 소규모 전쟁들을 통한 끊임없는 세계 분할이 현대 사회의 특징이 됐습니다.

바로 이 특정한 요인 때문에 이 체제가 미쳐 돌아가고 있으며 1989년 이후 널리 퍼졌던 견해, 즉 이제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모든 예측이 빗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견해는 1989년 이후 하나의 상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같은 극소수만이 그런 견해가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제국주의”라는 제목의 글[《국제 사회주의》1990년 가을호에 실림]에서 앞서 설명한 과정이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했을 때 우리는 바보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신제국주의의 자세한 내용과 그 잔혹성, 전개 속도 등등을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당시 우리가 주장한 근본적인 사태 전개 방향은 옳았습니다.

Q 네그리는 제국이 더 확대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봐야 하는가?

A  자본주의체제가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전 자본주의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상당 기간 사실이었고, 이 자체가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전 자본주의 사회들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이론이 레닌의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렇게 주장했던 듯합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통이란 무오류의 성경 구절도 아니고 우리에게 전해진 십계명 같은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현실의 발전에 따라 더 날카롭게 다듬어야 하고 새롭게 고쳐 나가야 하는 일련의 도구들입니다.

제1차세계대전 전에 또는 한창 전쟁이 벌어지던 중에 글을 썼던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목격했고, 따라서 우리의 판단과 이 체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은 변했습니다. 오늘날 제국주의 질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제국주의가 침투해야 할 전 자본주의 사회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경제적 경쟁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열강은 전 세계를 분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합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그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20세기 초에 레닌과 부하린이 이해한 제국주의는 세계화한 경제와 국가 체제 간의 상호 작용이었습니다. 국가는 지정학적으로 제한된 실체입니다. 사실, 국가의 정의 한 가지는 특정 지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 무력을 행사하는 기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적 경쟁이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을 촉진하는 이런 상호 작용은 현대 세계에서도 지속해 왔고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국가 체제의 재편과 세계화 사이의 상호 작용 속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Q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냉전 시대에 비해 더 다극화한 것 같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가 약해졌을 수도 있지만 혹시 더 강해진 측면도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UN이 국제 평화를 위한 기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미국 대외 정책의 도구에 더 가까운 듯하다. UN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A 저는 냉전 종식이 양극 체제를 끝장낸 방식과 이 두 질문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록 미국 경제의 상대적 쇠퇴를 얘기하긴 했지만, 미국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점,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자 단연 세계 최대의 군사 강국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제 체제가 훨씬 더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며 이 때문에 세계는 냉전 당시보다 더 불안정해졌습니다.

냉전 당시 우리는 핵 균형 상태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990년대 초에 우리가 추측하기만 했던 것이 직접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즉, 다극화한 제국주의 질서가 얼마나 불안하고 불안정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세계 체제는 제1차세계대전 전과 훨씬 더 비슷합니다. 당시 대영제국을 비롯한 주요 열강이 여럿 있었고, 다른 국가들이 성장해 이런 열강에 도전했으며, 결국 이것이 체제에 심각한 불안정을 일으켜―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직접적인 결과라는 말은 아닙니다―주요 열강은 식민지를 둘러싸고 서로 충돌했을 뿐 아니라 전면적으로도 충돌했습니다.

유엔은 냉전 시대 세계 분열의 산물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미국·영국·러시아·중국 등이 각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냉전이라는 교착 상태를 제도화한 것입니다. 오늘날 유엔의 위기는 유엔이 더는 세계 제국주의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천안문 광장에서 자국 국민들을 학살한 자[장쩌민], 미국을 지지한 대가로 체첸 민중을 계속 학살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전 KGB 우두머리[푸틴], 프랑스 국민 2백만 명이 “나찌보다는 도둑이 낫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일 만큼 소극적인 지지를 받은 프랑스 대통령[시라크], 조지 부시와 그의 푸들[토니 블레어], 이런 자들이 이끄는 기구를 우리가 왜 신뢰해야 합니까?

저는 우리 운명을 우리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문명의 충돌’을 전쟁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에 대한 생각은?

A 저는 그것[문명 충돌론]이 전쟁 몰이를 위한 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무슬림들에 대한 인종 차별적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시민적 자유,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무슬림·아시아인·아랍인 들의 시민적 자유가 매우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법률을 제정하겠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전쟁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라크는 세속 국가입니다. 물론 발칸반도 전쟁 때[1999년 봄]도 무슬림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명 충돌”이 지배 계급에게 유용한 선전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명 충돌은 그들의 이유나 정책이나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반전 운동이 프랑스나 독일 정부처럼 전쟁에 반대하는 정부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미국에 맞서기 위해 아시아 정부들과 연대할 수 있는가?

A 우리 지배자들을 믿기보다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태도를 살펴보죠. 저는 슈뢰더가 독일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일의 여론이 슈뢰더를 끌고갔습니다. 물론 그가 반전 입장을 취하자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강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국가 체제와 주요 제국주의 열강의 관계는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국가 권력과 맺는 관계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조직, 우리 자신의 동원력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정부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정부를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Q 기어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영국의 전쟁저지연합은 어떤 행동을 계획하고 있는가?

A 전쟁 중단은 전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영국에서 우리가 블레어에게 압력을 넣어 전쟁을 포기하도록 만들지 못하고 그래서 사실상 부시가 전쟁을 벌일 수 없도록 만들지 못하는 것도 전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이 가능성이 큰 얘기이고, 그들은 당연히 전쟁을 시작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거대한 반전 운동이 있습니다. 더욱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토록 거대한 반전 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성장하는 데는 몇 년이 걸렸고,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토록 거대한 국제 반전 운동이 건설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리한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패배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역전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전쟁이 시작되더라도 반전 운동을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는 충분한 동력과 [정치적] 명쾌함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짰습니다. 이라크에 대한 폭격이 시작되는 즉시 반전 운동이 존재하는 유럽 전역의 도시와 지구에서 우리는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에는 유럽 각국의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2월 15일의 동력을 고려할 때, 이것이 또 다른 국제 행동의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경제적 경쟁과 군사적 경쟁이 자본주의 초기부터 결합돼 나타났다면 왜 굳이 19 세기 후반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만 특별히 ‘제국주의 체제’로 규정하는가?

A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앞에서 분명히 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

Q 제국주의의 경제적 요인을 강조하는데, 미국의 대북 압박에 경제적 요인이 있는가? 이라크를 점령하면 석유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북한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A [제국주의의] 경제적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경우, 어떤 지역―중동은 그런 지역 중 하나입니다―에서는 물질적 자원과 전쟁 동기 사이에 직접적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제국주의 전쟁이 언제나 원료 때문에 벌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시장 개방을 강요하느라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이렇다 할 동기를 찾아볼 수 없는 전쟁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쟁탈전을 떠올려 보면, 결국은 사막을 점령하는 것으로 끝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이 지배의 법칙인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경쟁자들보다 늘 앞서가야 합니다. 경쟁자들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경우에 대비해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경쟁자들이 군사적·지리적 이점을 차지하도록 놔둬서는 안 됩니다.

이 사회 체제는 제국주의 열강로 하여금 전 세계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에 뛰어들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영역에서 겪은 패배일지라도, 더 중요하고 더 큰 영역에서 패배를 겪을 수도 있다는 문제를 낳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전쟁을 보면, 경제적 동기와 미국의 전쟁 몰이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가 식민지를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했고, 미국이 이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미국이 민족 해방 운동에 패배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미국이 패배한다면 한 세대 동안 미국의 힘은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Q 1991년 걸프 전쟁 전에만 해도 후세인은 미국의 후원을 받았는데 왜 미국의 태도가 돌변했는가?

A 이것은 오래된 이야기이며 이라크에만 국한된 얘기도 아닙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역시 꼭 마찬가지로 CIA의 산물이었습니다. 실제로, 도널드 럼스펠드가 사담 후세인과 반갑게 악수하는 장면을 찍은 믿기 힘든 사진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우리는 그 사진을 널리 배포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당시 가장 중요한 위협 요인이라고 여겼던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에 대한 방파제로 사담 후세인을 내세웠습니다. 그 뒤 미국은 그를 무장시키고 실제로 미국 의원단을 이라크에 보내 후세인에게 쿠웨이트를 점령해도 좋다는 허가로 비칠 만한 신호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창조해 낸 세력을 이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정하기 그지없는 제국주의 정치의 현실입니다.


 

● 전체 토론 요약


오늘날 부시 정부가 보여 주는 사소한 위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9·11 1주년 기념식에서 있었습니다. 부시 정부는 그 기념식의 일부를 이라크 전쟁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이용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이용해 전쟁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그것은 위선이었고 역겨운 짓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게티스버그 연설은 미국 남부 여러 주에서 노예제를 철폐하기 위한 전쟁을 기념하는 연설이었는데, 중동 민중을 노예로 만들고 싶어하는 대통령이 그 연설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을 복원하는 의미에서 저는 게티스버그 연설의 일부를 제대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결전장이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스러져간 병사들을 기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인들은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을 주목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병사들이 여기서 했던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토론이 매우 소중하고 유익한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말을 행동으로 옮길 때입니다. 저는 영국에서, 여러분은 이 곳 한국에서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