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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쟁저지연합' 사무총장 린지 저먼 인터뷰:
영국 반전 운동, 부시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있는 중

2월 15일 국제 반전 공동 행동을 평가하고 그 뒤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린지 저먼: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상 최대 규모 시위였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대 규모였다는 추산도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종전을 기념하는 축제 분위기였고 이틀 동안 휴일이었다.

2·15 항의는 국제적 규모로도 최대 시위였다. 각국 시위 참가자 수를 더하면 1천5백만∼2천만 명이 참가했다. 이로써 우리의 운동은 정치의 중심 무대에 서게 됐다. 이 정치 무대는 얼핏 보면 미국·영국이 한 축을 이루고 독일·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다른 한 축을 이뤄 전쟁을 시작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하고 있는 것이 주된 양상인 듯하지만, 이 논쟁을 일으키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은 우리 반전 운동이다.

2·15 시위는 또한 영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25만 가구는 가족당 한 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인구가 1백만 명인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는 3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블레어 정부에 반대를 나타냈던 것이다. 이것은 많은 성과를 냈는데, 예를 들어 새로 지역 시위들이 조직됐고, 새로운 반전 조직들이 결성됐고, 많은 전쟁 반대자들이 자신들이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국 반전 운동이 급성장한 비결은 무엇인가?

린지 저먼: 먼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을 불의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 2차 걸프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세인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 후에도 좌파 다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경제 제재를 전쟁의 인도주의적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쟁과 경제 제재를 경험했고, 발칸 반도 전쟁도 경험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지금까지의 전쟁이 모두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 카에다와 이라크가 연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직 입증된 것도 없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시와 블레어의 알 카에다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알 카에다가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 하더라도 그들을 체포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들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알 카에다]은 알다시피 계속 새 조직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라크 경제 제재 문제와 중동 지역 독재자들을 후원하는 미국과 영국의 대외 정책 문제 들이 해결돼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진정 무엇과 관계 있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 상황을 보건대 이라크가 위협적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보다 부시에게 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북한은 지금 ‘그래, 우리는 핵무기가 있을 수도 있다. 어쩔래?’ 하고 대들고 있는데도 부시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들은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라크가 군사력이 약하기 때문에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후자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라크는 전쟁과 지난 십여 년 간 지속된 경제 제재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둘째 요인은 우리가 지난 18개월 동안 성공적으로 반전 운동을 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방금 말한 사실들을 잘 알게 됐다. 반전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전쟁은 석유와 미국의 권력을 위한 것이며 미국이 세계 여러 곳의 독재자들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2월 15일 시위가 성공을 거둔 요인이 두 가지 더 있는데, 하나는 반전 운동이 기층의 민주적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보통 시민들이 참가했다. 다른 하나는 운동의 국제적 측면이었다. 우리는 피렌체에 가서 주장했고, 카이로에 가서 주장했으며, 포르투 알레그레에 가서도 반전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영국 반전 운동의 쟁점들은 무엇인가?

린지 저먼: 반전 운동 안에서는 다양한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극소수는 미군 기지 침입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B-52 폭격기가 있는 기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방패”를 만드는 데 주력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위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논쟁이 있지만 우리가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것은 ‘민중 의회’를 소집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민중 의회는 사람들이 운동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토론하는 장이 될 것이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운동은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 즉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는데도 정부가 전쟁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냐 하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집회 규모를 보더라도, 또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지금 블레어는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캔터베리 대주교[영국 국교회 수장]와 가톨릭 추기경과 대다수 노조, 자신이 이끄는 당[노동당]의 당원 대다수도 그를 지지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블레어는 지금 독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세계의 독재자를 추방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기존] 의회를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없다면 이 같은 대안[민중 의회]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중 의회는 운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고도의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시위·파업 등과 같은 행동에는 더욱 그렇다. 민중 의회가 가져다 주는 것은 대안적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론이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고, 의회가 우리를 대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전 운동의 전망과 과제는 무엇인가?

린지 저먼: 국제 반전 회의에서 우리는 다음 두 주 동안에 있을 반전 시위 계획을 공유했고, 전쟁 개전 즉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그 주말에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했다. 이처럼 반전 운동이 국제적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 반전 운동에 중요한 것은 앤드루 머리[전쟁저지연합 의장]가 “체념”이라고 부른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회의[국제 반전 회의]에서 앤드루 머리가 말한 바와 같이 그들[부시·블레어 일당]은 모든 전쟁 관련 논쟁에서 패배했다. 오늘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블레어의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더구나 노동당 지지자들의 블레어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지체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더 불리해지게 된다. 사실, 그들은 그 동안 비행 금지 구역에서 진행되던 폭격을 오늘 강화했다. 지금 운동내 한 가지 태도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하는데도 그들이 폭탄을 투하할 것이라는 체념이다. 이런 맥락에서 체념에 맞서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우리는 그들이 군대를 출동시켰다 해도 터키의 사례처럼 전 세계의 민중과 노동자 계급이 효과적으로 항의 시위를 조직한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터키에서는 의회에서 미군 기지 사용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때 정부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군사 장비를 내려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같은 시점에서도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복잡하고 퍼즐 같은 상황에서 영국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만약에 우리가 블레어를 끌어 내릴 수 있다면 전쟁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정해진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유엔 2차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만일 미국과 영국 지배자들이 영리하다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만약에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이라면 미국과 영국은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으므로 인정받지 못하는 전쟁을 [미국과 영국] 독자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 때 영국에서 대대적인 저항이 있을 것은 확실하다. 블레어는 심지어 의회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설사 노동당 의원들 다수가 전쟁을 반대하는 것으로 돌아선다 하더라도 보수당 의원들이 전쟁을 지지할 것이지만, 이들 또한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 어쨌든 이 경우 블레어의 정치 생명은 끝장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몇 차례의 역사적 사례가 있다. 그 가운데 최근의 사례만 들어 보겠다. 1956년 수에즈 운하 문제를 두고 당시 보수당은 의회에서 지지를 이끌어 냈지만 사실상 분열을 초래했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했지만 철회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총리는 신경증을 겪었으며, 몇 달 후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전쟁 위협이 벌어지고 있는 비교적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가 총리를 퇴진시킬 수 있었던 사례들이 있으며 지금도 그럴 수 있다.

토니 블레어는 유엔 승인을 받지 못하면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유엔 승인을 받을지라도 그들이 그 승인을 받기 위해서 온갖 계략을 동원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어제 신문에 따르면 미국이 유엔 안보리 소속 이사국 대사들의 사무실을 도청하고 있었음이 폭로됐다. 미국은 도청을 통해 이들이 얼마만큼의 압력을 받고 있는지 알고자 했다. 아마도 그들은 미친 것 같다. 이처럼 미국은 뇌물·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승인을 받아 내려 하기 때문에 승인의 정당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블레어는 전쟁이 시작되면 끝장날 것이다.

한국의 반전 운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린지 저먼: 지금까지 연대해 온 데에 대해 고맙고 우리도 [당신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또한 한국에서도 국제 반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어서 우리는 고무됐다.

서방에 흔히 알려져 왔던 친미와 친서방의 길을 걸어 왔던 남한의 역사를 고려해 봤을 때 남한 반전 운동가의 국제 회의 참가는 큰 의미가 있다. 남한이 전쟁을 겪고 냉전의 최전방에 위치했는데도 반전 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음을 보고 우리는 크게 고무됐다.

이처럼 오늘날 반전 운동의 국제 연대는 놀라운 수준에 있다. 1960년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졌지만 주로 선진국에 집중됐다면, 오늘날 반전 운동은 기존 선진국을 포함해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등 진정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유례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