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하먼은 <사회주의 노동자> 편집자이다. 그는 19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운동 이후 적극적인 사회주의자로 활동해 왔다. 그가 2월 15일 전 세계에서 벌어진 시위의 의미를 분석한다.

 2월 15일 사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것이었다. 시위는 영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시위는 전 세계에서 벌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 시위였다고 전했다. 사실, 베트남전 당시에도 이처럼 대규모로 열린 시위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월 15일에 스페인에서 약 4∼5백만 명이, 이탈리아에서 3백만 명 이상이, 독일에서 50만 명이 행진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십중팔구 1백만 명쯤 될 것이다. 카나리아 제도[아프리카 북서부 해양상의 군도]에서 20만 명이 벌인 시위는 거기서 휴가를 보낸 사람 누구에게나 뜻밖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위들은 이미 전 세계 지배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 시위가 부시의 전쟁 몰이를 저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부시의 동맹자들은 전쟁 몰이가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지 분명히 깨닫게 됐고, 토니 블레어는 어색하게 우물쭈물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배자들이 자기들의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우리를 속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는지 점점 더 분명히 깨닫고 있다. 사람들은 4∼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1999년 11월의 시애틀 시위가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그 시위에는 겨우 5만 명만이 참가했을 뿐이다. 그 때 이후로 제노바에서 30만 명, 바르셀로나에서 50만 명, 피렌체에서 1백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런 시위들은 체제의 상이한 양상들에 대항하는 반란 전체를 고양시키고 있다. 이 자체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실이다. 한 세대가 처음으로 정치에 연루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 내내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또 패배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패배한 사람들은 남은 인생 동안 어쩔 수 없이 체제와 함께 살아야만 한다. 좌절한 그들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 체제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 체제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흔히 새 세대가 나타나 체제에 도전한다. 그리고 구세대가 다시 투쟁에 참가한다.

나는 지난해 11월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ESF) 이후 벌어진 반전 시위에서 이런 사실을 목격했다. 많은 노인들이 발코니에 나와 시위대에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파시즘을 경험했고 레지스탕스 투쟁을 벌였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자신들의 운동이 흥망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제 또다시 뭔가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을 것이다.

2월 15일에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조부모와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와, 체제가 강요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러한 국제주의 의식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을 썼던 18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에서 혁명과 봉기가 동시다발로 분출했다. 뒤이어 패배의 시기가 찾아왔지만, 1860년대에 운동이 부활했다. 몇몇 나라의 노조 활동가들 소수가 단결해 제1인터내셔널을 결성했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제1인터내셔널로 모여들었다. 개혁을 통해 사회 변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고,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의 정점은 파리의 노동계급이 파리를 장악하고 파리 꼬뮌을 건설한 1871년이었다. 꼬뮌이 패배한 후 사람들은 다시 후퇴해야만 했다.

인터내셔널

그 뒤 1889년에 다시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건설됐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은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붕괴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전쟁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1918∼19년에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건설했다. 새로운 국제주의 시대가 시작됐다. 경제 공황과 파시즘, 전쟁의 광기가 지배한 1930년대에 국제주의는 다시 떠올랐다. 스페인 혁명이라는 고무적인 사례에서 국제적 연대 행동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1960년대에 베트남전 반대 운동으로 국제주의가 부활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또다시 국제주의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 규모는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크다.

전 세계에서 열린 다양한 사회포럼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회 변화의 방법을 토론했다. 2년 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1회 세계사회포럼(WSF)에는 약 2∼3만 명이 모였다. 지난해에 열린 제2회 포럼에는 5∼6만 명이 참가했다. 올해 열린 제3회 포럼에는 10만 명이 참가해, 10개국 이상의 언어로 사회 변화의 방법을 토론했다.

다양한 사상과 견해가 표출됐다. 체제에 일정 정도 압력을 가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새로운 사실은, 이러한 논쟁들이 한데 어울려 진행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토론을 벌였던 사람들이 솔선해서 2월 15일 시위를 주도했다. 물론 시위가 포럼 자체보다 훨씬 더 컸지만 말이다. 시위를 조직한 사람들은 국제적 운동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렇게 많은 곳에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세계화가 우리에게 이로운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바로 통신의 세계화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이 이메일, 웹사이트, 값싼 국제전화를 이용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강요하는 모든 조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낳는다. 사람들은 기층에서 스스로 조직하고 경험을 일반화한다.

현재 발전하고 있는 운동에는 세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첫째, 이미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극소수가 이 운동에 포진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참가한 시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다수였다. 그러나 2월 15일 행진에서 우리는 극소수였을 뿐이다. 우리는 조직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전파하는 운동의 일부였지만, 우리 규모보다 1백 배나 더 큰 운동을 촉발하는 데 성공했다.

둘째 요소는, 지난 3년 남짓 동안 성장해 온 반자본주의 운동의 영향을 강력히 받은 젊은이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애틀 시위 이후 운동에 가담하고 그 운동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폴 풋·조지 몽비오·존 필저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론 이들도 행진에서 소수였다.

셋째 요소는, 이제 막 이런 사상에 영향받기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종류의 주장에도 영향받고 있다. UN이 전쟁을 승인하면 전쟁을 벌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주교들처럼 고상한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전쟁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모두에게 하나의 도전 과제이다. 운동이 퇴조하는 시기에 사람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자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 소규모 집단과만 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가 그들을 행동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더 넓은 청중과 토론한다는 뜻이다. 그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들과 토론하라.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노동자〉를 읽는 모든 독자의 과제이다.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누가 시위에 참가했는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누가 참가했는가? 그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들을 조직하고, 전쟁 개전 때 무엇을 할 것인지 함께 얘기해 보자.

대안을 둘러싼 논쟁

1960년대와 비교해 보자. 1967년에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극소수였다. 1967년부터 1974년 사이에 거대한 운동이 벌어졌다. 극소수였던 세계 도처의 혁명가들은 이제 수만 명은 아니더라도 수천 명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성장했다. 이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수백만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일상적 시기에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아주 커 보인다. 2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우리와 사상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수천 명은 더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의 관심사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더 나은 세계를 원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시위대는 모두 전쟁에 반대했다. 그들 대다수는 IMF가 제3세계에 강요하는 정책에도 마찬가지로 반대할 것이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소방수 파업을 지지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70, 80 아니 90퍼센트가 지지했을 것이다.

다른 문제로 넘어가면 사태가 달라질 수 있다. 시위 참가자 다수는 예컨대 난민 문제에 관한 일부 언론의 주장에 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우리는 조직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다양한 운동이 체제 전체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은 체제의 가장 역겨운 측면 중 하나다. 하지만 대중은 전쟁에 반대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2월 15일 하이드파크 집회에서 전쟁뿐 아니라 체제 자체에도 반대하는 연설을 했던 연사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사회주의 노동자〉를 구매하는 사람들만 환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은 유럽·라틴 아메리카·북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도시들,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의 각지에도 존재한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방법을 놓고 폭발적인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운동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1860년대와 비교해 보자. 당시 제1인터내셔널의 기반은 협소했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파업들을 지지하기 위해 단결하는 정도였다. 몇 년 뒤 파리 꼬뮌이 탄생했다. 노동자들이 세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를 장악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함께 모여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지금까지의 운동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무언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