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는 정부의 공격과 함께 민주노총을 고립시키려는 보수 언론의 난타전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사퇴한 것을 계기로 민주노총 혁신 논쟁이 다시 떠오른 가운데 지난 3월 12일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하루 종일 총 3부에 걸쳐 진행된 토론회에는 민주노총 안팎의 활동가 17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자들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등한시해서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고, 내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돼 있다는 진단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날 제시된 혁신 방안은 일부 진취적인 대안도 있었지만 대체로 조직 형식상의 처방에 그쳤다.

세 차례의 토론을 서로 구분하지 않고 1) 민주노총의 사회적 고립 극복 방안, 2)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단결, 3) 혁신 방안 등으로 전체 토론자들의 논지를 추려서 살펴보며 현장조합원들의 관점에서 민주노총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한지 제시하고자 한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고립 극복

토론자들은 대체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 서민들로부터 고립됐다며 이를 극복하는 것을 혁신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조합원과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모을 수 있어야 한다”(이창곤 〈한겨레〉 사회부 부편집장)거나, “민주노총이 고립된 섬처럼 돼 있다”(한석호 ‘전진’ 집행위원)는 진단이 그것이다.

“민주노총이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의 출발”(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라는 타당한 주장도 있었다.

아쉬운 점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 서민의 지지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대안이 불충분한 것이었다. 김 처장도 삼성경제연구소에 비견될 만한 진보진영 연구소를 만들자는 등 정책개발 노력을 강조한 것 외에 뚜렷한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이익단체가 됐다’며 “파업 투쟁만 하지 말고 발랄한 운동”을 하라는 김민영 처장의 주장은 모순이다. 그의 지적대로 ‘서민의 대변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비정규직법 개악을 포함한 MB악법 저지와 실업급여 지급 기간·대상·금액 확대 등을 위해 파업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안기부법·노동법 날치기에 맞선 1997년 1월 파업도 높은 지지를 받으며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드높인 계기였다. 이 파업 직후 민주노총은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사회단체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기업주들만의 배타적 이익을 앞세운 공격에 맞서 민주노총은 일자리·임금·복지를 지키는 조합원들의 강력한 “이익단체”여야 한다. 그동안의 문제는 오히려 미덥지 못한 “이익단체”였다는 점이었고, 정규직을 넘어 비정규직과 억눌린 하층민들의 “이익단체”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비정규직·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해 여성·이주노동자 요구까지 담아”서 “고용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분출되는 조합원의 요구를 모은 대중투쟁”(이재현 현장실천연대 의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현실적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단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강조하고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그 실현 방안은 서로 엇갈렸다.

정규직 양보를 암시하는 “결단”을 촉구하는 주장(한석호 전진 집행위원 등)도 있었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규직 양보론은 더더욱 대안일 수 없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공장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지만 … 자본과 정권의 분할 시도가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봐야 한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었다. “경제 위기 책임 떠넘기기에 맞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단결,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단결을 확대”(이현대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하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다.

상당수 토론자들이 민주노총 조합비를 비정규직 조직 사업에 쓰고, 상근자를 ‘하방’시키자는 등의 제안을 했다. 그러나 조직 형식상의 조처보다 시급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을 실제로 조직하는 일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투쟁을 책임지고 승리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정규직·비정규직 이간질을 극복하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지름길이다.

혁신 방안

“민주노총이 죽었다”(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거나, “민주노총은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정윤광 노동전선 정책위원)는 주장도 있었다.

일부 노조 지도자의 부정 행위에 대한 배신감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비민주적 관행에 대한 불신은 당연한 일이며, 이는 반드시 극복돼야 할 혁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도부의 문제를 민주노총에 속한 80만 조합원의 문제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지도부 내 약점을 전체 조직의 문제로 환원해서 민주노총의 효용성이 다했다거나 “제3노총”을 들먹이는 것은 섣부르다.

게다가 발언자 자신이 지도부의 일원이었거나 주요 세력의 대표자라면 설득력은 더 떨어진다. 사실, 민주노총이 이미 “고립된 섬”이 됐다면, 이명박과 조중동이 저토록 ‘마녀사냥’에 혈안일 이유도 없다. 민주노총 ‘탈퇴공작’과 연일 계속되는 이데올로기 공격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혁신 운동의 동력은 외부로부터 온다”(정윤광 노동전선 정책위원)며, 외부 인사 비중을 높인 혁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잘 다가오지 않는다. 새 기구를 만들고 조직 형식상의 재편을 한다고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는 없다.

‘노조관료주의’에서 비롯한 비민주주의는 현장조합원의 활력과 투쟁력에 바탕한 조합원 대중의 견제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장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의 열망을 대변해 민주노총이 제대로 투쟁하도록 현장 투쟁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지도부에 강제해야 한다.

제도개혁 개입 우선론과 ‘정풍운동’

“제도개혁에 개입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투쟁 강조는 공허하다”는 비판(조형일 혁신연대 집행위원)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민주노총 지도부의 핵심 일원으로 참여한 조직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민주노총 현 위기도 따지고 보면 지난 시기 투쟁이 필요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의 누적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악법 통과 당시는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는 과거 노사정위원회, 사회적 교섭 등에 매달려 시기를 놓치거나 투쟁을 등한시하다가 결국 뒤통수만 맞고 별 성과도 없이 협상기구에서 탈퇴하기를 반복했다.

경제공황으로 협상의 여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투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회적 교섭’에 연연하면서 “투쟁 남발”이 문제라는 식의 태도야말로 없어져야 할 혁신의 대상이다.

혁신문제를 지도부의 자기 정화 노력이나 ‘정풍운동’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운동 주체의 사상적?도덕적 재무장 소홀”이 문제이니 “간부의 혁신, 사상의 혁신”(정성희 민주노동당 2010 상임위원)이 필요하고, “혁신은 지도부가 나서야 해결된다”며 “현장에서부터 ‘사상문화 혁명’을 시작하자”(이승우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부의장)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혁신 과제로 거론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상당 부분 ‘노조관료주의’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처한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다. 지도부의 비민주성이나 일부 지도자의 부정부패 행위는 협상을 전문으로 하고 현장 노동자들과 괴리를 겪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조건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인격적인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개인의 ‘도적적 재무장’이나 ‘사상 혁신’을 넘어 무엇보다 현장 조합원들의 열망과 의사가 지도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현장 조합원의 활력 제고와 투쟁 확대가 관건이다.

총파업 남발이 문제인가

“민주노총 투쟁 전술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총파업 전술”이라며, “전국 집중 투쟁과 상경 투쟁의 남발”(이승우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부의장)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총파업과 현장 투쟁 강화와 대립시킨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동안의 문제는 전국적 파업이 남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데서 비롯했다.

이랜드 투쟁, 한미FTA 반대 파업, 지난해 촛불항쟁 파업 등에서 지도부는 미적거리다가 너무 늦게 나서거나, 선언해 놓고 제대로 조직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시늉내기에 그치곤 했다. 지도부의 이런 태도는 현장 조합원들을 기운 빠지게 만들었고, 실망과 회의를 부채질했으며, 그나마 있던 파업 동력조차 떨어뜨렸다.

비정규직법·최저임금법 개악을 비롯해 각종 MB악법 통과 시도와 대량해고에 맞선 투쟁 등에 민주노총이 나서서 전국적 파업을 조직하고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혁신을 위한 진정한 대안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민주노총의 혁신 문제를 당면 투쟁의 승리를 위한 전술과 분리해서 생각한 채, 조직 형식상의 변화를 제안하거나 공허한 구호를 내거는 데 그쳤다. 상당수 토론자들이 투쟁 방안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민주노총 지도부 내 비민주주의, 투쟁 회피 경향, 일부 지도자의 부패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비정규직과 억압받는 서민들과의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 민주노총 혁신의 방향이어야 한다.

이 같은 진정한 혁신은 당면 투쟁 확대를 조직하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준비하고 있는 상반기 투쟁 일정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쌍용자동차나 위니아만도 같은 구조조정 작업장에서 먼저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투쟁에 민주노총이 강력한 연대를 건설해서 승리로 이끈다면 다른 기업주들도 함부로 공격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당면해서 이명박 정부가 오는 4월에 통과시키려는 비정규직법 개악에 맞서 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실업자 문제 해결과 최저임금제 개악 저지, 이명박의 민주주의 권리 탄압 반대를 전면에 내걸고 싸워야 한다.

보궐선거에서 더 투쟁적인 좌파 지도부가 들어설 필요가 있다. 좌파 집행부의 등장은 현장 민주주의를 고무하고 투쟁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 지지 받아야 한다.

민주노총의 진정한 혁신과 당면 투쟁의 승리는 결국 현장 활동가들의 활력과 투쟁 확대 노력에 달려 있다.

활동가들은 지도부가 투쟁할 때는 함께, 지도부가 열망을 저버릴 때는 독자적으로 투쟁을 조직하는 데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