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4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제 허용 업종을 늘리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추진하려 한다. 이명박 정부와 전경련 등은 ‘7월 비정규직 백만 해고설’을 들먹이며 마치 자신들이 비정규직을 걱정해서 개악을 추진하는 척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만든 비정규직 악법도, 이명박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그 법의 더한층 개악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키고 고통을 늘리기만 할 뿐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국민은행 비정규직 노동자가 쓴 글은 바로 그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와 기업주들의 온갖 공격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어 온 마음 고생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한 정규직과 단결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는 이 글은 한국노총 기관지 3월호에 실린 글을 옮겨 실은 것이다. 이 글의 재수록을 양해해 준 한국노총 기관지 담당자께 감사드린다.

지난 몇 년 간 저희 비정규직들은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처음에 비정규직보호법을 정부 여당이 만든다고 했을 때, 저희들은 ‘이제 우리도 정규직이 되나보다’, ‘근데 은행에서 받아줄까’, ‘매년 재계약에 시달리지만 않아도 좋겠다’며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동계가 비정규직보호법에 반대한다는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한국노총이니 민주노총이니 남의 일처럼 살아왔는데, 이 문제는 저희 일이라 관심 있게 뉴스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정부에서는 비정규직으로 3년 정도 일하면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3년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노동계는 그렇게 하면 비정규직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비정규직은 1년까지만 허용하고 그 뒤에도 계속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잘 몰랐습니다. 모르니 더 불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묵묵히 정규직 임금 절반도 안 되는 월급 받아가면서 은행 위해 일했는데 설마 자르기야 하겠나라는 생각으로 애써 위안 삼았습니다. 비정규직법이 통과되자 주변 정규직 선배들은 잘됐다며, 또 잘될 거라며 격려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법을 만들었다는데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일부 은행에서 법 시행을 앞두고 계약해지가 늘어난다느니, 창구 업무를 외주화한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럼, 그렇지’ 하며 체념했습니다. 체념은 이전보다 더 큰 상실감을 갖고 왔습니다.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나’. 은행 일 하나도 모르는 정규직 신입 행원들도 우리보다 연봉을 2천만 원 가까이 더 받는데, 지금껏 군소리 없이 은행을 위해 일한 우리는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 무시당해야 하나.

그러다가,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금융노조의 비정규직지부에서는 정규직노조가 협상을 제대로 하도록 응원하고, 압박하는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점 선배님들께 자꾸 물어보기도 하고, 정규직노조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조마조마한 시간들이 가고 드디어 협상이 타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8년부터 3년 이상, 2009년에는 2년 이상 근무자는 모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기계약직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긴 했지만 매년 재계약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졌다는 마음에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정규직 되기는 역시 힘들구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노조에 문의도 하고, 다른 지점 다른 은행에 있는 친구들과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비정규직노조가 보내 준 설명도 보면서 나름 안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은행이 건넨 무기계약직 계약서는 우리를 좌절케 했습니다. ‘언제든 실적 등으로 해고 가능’

정말 속상했습니다.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갔습니다. 기대라도 안 했다면 모를 텐데, 하늘로 붕 떴다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빠르게 소문은 퍼져 갔고, 소식을 접한 비정규직노조는 정규직노조에 해당 문구 삭제를 요청했고 정규직노조에서 다시 사측과 재협상을 해서 해당 문구가 빠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금융권에서 대우가 낮은 편에 속하던 계약직에서 다른 회사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는 무기계약직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정규직노조 조합원 가입까지 됐습니다.

물론 아직은 업무 분리가 남아 있어서 정규직과 완전히 똑같은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도 아닌 애매한 처지입니다. 하지만, 의욕은 어느 때보다 넘칩니다.

계약직 시절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정규직 선배들 눈치를 예전보다 더 봐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조건이 좋아졌으니 정규직만큼 일하고 정규직처럼 실적에도 더 기여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야 나중에 또 정규직 전환 얘기가 나왔을 때도 정규직 선배들이 도와줄 것 아니겠어요.

두려움과 희망

그런데, 최근에 경제가 어렵고 금융위기 얘기가 나오면서 곳곳에서 구조조정이라느니, 임금 동결이라느니 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제조업에선 비정규직부터 자른다는 말도 들리더군요.

우리끼리 이런 걱정을 하다가도 누군가 ‘우리도 이젠 정규직노조 조합원이니까 함부로 하진 못할거야’ 라고 하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아직은 많은 것이 낯설고, 정규직노조에 가입했다는 게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나 혼자 떠 있는 것 같던 몇 년 전에 비하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희망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희는 정부와 경영진에서 이런 비정규직들의 마음, 두려움, 또 희망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기한을 더 늘리자는 말은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2년 기한에서도 사실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난 친구들도 많은데,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면 그들은 더 불안해 할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정규직노조에서도 비정규직 위해 지금까지 애써 주셨지만, 앞으로도 계속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회사 정규직노조도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지만 정규직 노조의 울타리는 우리들을 예전보다 덜 불안한 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우리가 정규직 노조의 조합원이 됐을 때 노조 선배들은 조합원 수가 늘어서 ‘우리 노조’가 더 힘이 세졌다고 하시더라구요.

긴 얘기, 이제 줄이겠습니다. 다만, 끝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비정규직도 자부심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가족을 꾸려 나가야 할 생활인입니다. 우리도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는 국민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정부나 사장님들 책상 속 서랍에만 넣어 두지 마시고요, 꼭 책상 위에 꺼내 놓고 우선순위로 다뤄 주세요.

우리도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이익을 요구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는 노동자라는 사실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