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사법 테러로 덮인 ‘석궁 사건’의 진실”을 읽으시오.
2007년 1월 15일 발생한 김명호 교수의 일명 ‘석궁 사건’ 공판과정을 지켜보며 실체적 진실을 알아버려 현재 ‘석궁사건’ 진실 규명과 김 교수 석방을 위해 애쓰는 나로서는 신영철 대법관이 중앙법원에 재직 당시 ‘촛불 집회’와 관련해 소장 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떠들썩한 사건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는다.
지금의 이 사태가 특이하지 않은, 다시 말해 지금껏 관행적으로 이어져 왔었다는 것은 ‘석궁 사건’을 바라봄으로써 확인 되어질 것이다.
세 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석궁 사건’이 발생하기 전 김명호 교수는 ‘교수지위확인소송사건’으로 1년 반 동안 대법원과 중앙법원을 오가며 1인 시위를 했었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가 비단 김 교수뿐만 아니라 힘없고 빽없는 국민을 볼모로 전쟁터로 모는 막가파식 ‘사법테러’를 자행한다는 것을 목격하였고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국민저항권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석궁’을 들고 자신의 담당 판사에게 간 것이다.
그것을 박 판사는 석궁에 맞았다며 드러눕는 ‘쑈’를 연출하며 부러진 화살과 자신의 옷가지들을 증거물로 제시했으나 공판과정에서 위법하게 된 것들로 나타나 지금껏 밝혀진 증거로는 ‘자작극’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가장 기본적인 ‘혈흔 감정’도 하지 않은 채, 김명호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여 불법감금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 내 공모자들이 은폐한 증거는 다음과 같다.
재판정에서 박 판사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집에 올라가 이 사건을 사건화할 것인지 고민했었다 한다. 즉, 사건 발생 후, 박 판사는 그의 집으로 올라갔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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