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내 친구 한 명이 자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딸의 정치 활동을 반대하셨다. 그런데 토요일 시위에 참가한 것을 칭찬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내 친구는 무척 놀랐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더 놀라웠다. “하지만 시위로는 충분하지 않아. 뭔가가 더 필요해.”

이런 정서는 매우 폭넓게 퍼져 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국 폭격기들이 바그다드에 폭탄을 퍼부어 바그다드 시민들을 산 채로 태워 죽이고 생매장하는 모습들을 날마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 이런 생각은 잘못됐다. 지금까지의 항의 행동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 주말에 보았듯이 역사상 이렇게 광범하고 세계적인 반전 시위들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시위대는 전쟁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세계적 이익을 위협하고 있다.

군사 전략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2백년 전에 이렇게 지적했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수행되는 정치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만큼 정치가 핵심적인 경우도 드물었다.

미국의 전략은 모두 두 가지 정치적 가정을 바탕으로 수립됐다. 첫째,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세인 정권은 이라크의 도시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가정. 둘째, 국제 반전 운동이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들―전략적으로 중요한 중동 국가들은 물론 영국·이탈리아·스페인―을 뒤흔들기 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가정이었다.

일부 장성들이 그 전략이 쉽게 어그러질 수 있다고 우려했음에도 미국이 바그다드 진격 작전을 밀어붙인 데는 바로 이런 가정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가정 모두 오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전쟁 개시 5일이 지났는데도 이라크 남부에서 반란의 징후는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인들이 독일군 조종사를 잡으려고 쫓아다닌 것처럼, 지금 이라크인들은 미군 공수부대원들을 쫓고 있다. 그들은 사담이 아니라 미국이 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후세인에게 반대하는 쿠르드 족조차 후세인 군대에 대한 저항만큼이나 터키군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 군사 장비로 여전히 우위를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전쟁은 애초 계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장기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가 어떤 이득을 얻더라도 그것은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과 패권 상실로 이어져 더 크게 상쇄될 수 있다.

미국 지배자들 일부는 바그다드에서의 최종 승리가 이라크를 해체시켜 쿠르드 족, 터키, 시아파 무슬림들이 서로 싸우는 봉건 왕국들이 들어서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더구나 시아파 무슬림들은 부시가 “악의 축” 목록에 올린 이웃 이란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 지역 친미 정권들의 어려움과 직결된다. 바로 여기서 국제 반전 운동에 대한 미국의 두번째 오판이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레바논이라는 일부 예외가 있지만 중동의 정권들은 모두 군사화된 독재 체제다. 중동의 지배계급과 그 정당들은 세계 자본주의에 유착해 있고 자신들과 부를 공유하지 못하는 민중을 위협하기 위해 억압 정책에 의존한다.

그러나 일단 많은 수가 함께 모여 거리 시위를 벌이고, 대학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이기 시작하면 [아랍 민중의] 그러한 두려움은 사라질 수 있다. 아랍 민중은 TV를 통해 런던·샌프란시스코·마드리드·로마의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카이로나 암만에서도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 세계적 운동에 대한 인식이 도처에서 시위대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그래서 백악관과 다우닝가의 살인자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자들조차 이라크에서의 살육이 너무 많이 공개되면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 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실정이다.

사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군 장성들이 이라크의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정된다.

한편, 토니 블레어에게는 나름대로 커다란 문제가 있다. 그가 열광적으로 부시를 지지하는 것 때문에, 노동당이 평화를 지지하는 정당이라고 믿어 온 고참 노동당원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블레어가 자본주의적 통합 유럽의 주창자라고 여기며 겨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를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

그가 유로에 반대하는 루퍼트 머독이나 콘래드 블랙 소유의 우파 신문들과 결탁해 자크 시라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대한 반감을 자극했고, 결국 두 달 뒤에 있을 유로화 도입 찬반 국민 투표의 성공 가능성을 망쳐 버렸던 것이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 같은 유로 지지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화를 냈다. 그들은 자유당의 셜리 윌리엄스나 보수당의 케네스 클라크 같은 유로 지지자들과 함께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다.

블레어가 의회 투표에서는 승리했지만 그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자기 주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따라서 항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전장의 패배와 국제적 시위는 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에서 잔혹 행위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 거의 30년 전에 미국이 베트남을 굴복시키려던 노력을 포기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전장의 패배와 국제 반전 운동은 미국이 새로운 살육전을 감행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전체 인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따라서 투쟁에 나설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크리스 하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