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영화는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뒤 악
영화를 본 뒤 관객들이 선한 주인공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 속의 악이 매력적이면 영화도 매력적이게 된다. 묘사되는 악의 완성도와 영화의 완성도가 서로 비례하는 셈이다. 기념비적인 영화에는 기념할 만한 악이 나오고 팝콘 무비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 창작에서 악을 가공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현실의 악은 진부함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독일계 유태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60년 유태인 학살의 총책임자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이 잡혔을 때 ―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해 예루살렘으로 압송했다. ― 아렌트는 흥분에 들떠 취재하러 재판정에 참석했다. 하지만 곧 큰 충격에 빠졌다.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상상한 괴물이나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했다. 단지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사고가 결여된, 진부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런 이가 나치의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구실과 책임을 군말 없이, 충실히 이행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이로 인해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진부함
우리 주변의 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용산 참사의 책임자였던 김석기는 경찰 내부에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자기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경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한나 아렌트의 말은 더없이 꼭 들어맞는다. 김석기도 아이히만처럼, 부당한 시스템과 독립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없었다. 사고 능력의 진부함이 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악은 이렇게 태생적으로 진부하다. 그래서 악을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가공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인상 깊은 악당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영화가 흔치 않은 현실엔 이런 이유가 큰 몫을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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