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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전 운동이 거둔 소중한 첫 승리 - 파병안 통과를 두 차례 막아 내다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거세진 반전 운동에 부딪혀 국회의원들이 파병안 논의를 연거푸 두 차례나 연기했다.

애초 국회는 81 퍼센트 국민의 파병 반대 의사를 “초당적”으로 협조해 무시할 예정이었다. 한나라당은 파병을 서두르자며 아예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파병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게 확대되자 일부 국회의원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은 반전 대열에 가장 늦게 합류한 집단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전쟁 반대 입장을 표명한 국회의원은 35명이었는데 지난 1~2주 사이에 이 수가 2배(71명)로 늘어났다. 그래봤자 여전히 국회의원의 25퍼센트만이 파병에 반대하지만 말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의원이 고작 17명뿐인 한나라당도 파병안 통과를 나서서 밀어붙이려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이재오, 정형근 등은 “민주당 신주류가 반대하는 데는 저의가 있을 것”이라며 비난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눈치를 살폈다.

한나라당이 눈치챘듯이, 민주당 신주류는 파병안이 가까스로 통과될 정도로만 반대해 체면도 세우고 여론의 비난도 피할 생각이었다. 이들은 결코 일관되게 파병에 반대하는 자들이 아니다.

민주당 신주류 의원 김경재는 의료병만 파병하자는 중재안을 내놓으며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베트남전 때도 처음에는 의료병 파병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파병안 통과를 두 차례나 연기시킨 진정한 동력은 국회 안이 아니라 국회 밖에 있었다.

그것은 계속 확대돼 온 반전 운동과 3월 24-25일, 28일 국회 밖 농성과 집회에 모여든 시위대가 일구어 낸 소중한 승리였다. 국민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었다.

국회는 3월 31일 다시 한 번 파병안 통과를 시도할 것이다. 파병안을 완전 철회시킬 때까지 항의 행동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한다.

김하영

3월 25일

지난 3월 24일 저녁 7시 국회 앞에서 5백여 명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파병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국회 정문으로 진출하기 위해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시위는 파병안의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해 철야 농성으로 이어졌다.

25일 아침, 정부는 수천 명의 전투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의 국회쪽 진출을 봉쇄했다. 그러나 낮 12시경 시위대는 마침내 국회 정문 앞까지 진출했다.

그러자 경찰은 전경 버스 수십 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둘러쌌다. 시위대의 배너를 빼앗으려고 버스 위에까지 전투 경찰이 올라와 주먹을 휘둘렀다. 집회 참가자들은 “전 세계가 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부시는 학살자다. 노무현은 공범이다.” 하고 외쳤다.

국회 의원 출입을 막기 위한 정문 앞 연좌 농성이 시작됐다. 시위 대열은 경찰에 의해 뜯겨 정문 맞은 편 거리로 버려졌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다시 정문으로 달려가 봉쇄를 계속했다. 서너 번씩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오면서도 시위대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전쟁반대, 파병반대’ 구호를 외쳤다.

결국 경찰은 경찰 버스로 정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학살전쟁 파병안을 논의하기 위해 도착한 국회의원들은 도둑들처럼 뒷문으로 몰래 들어갔다.

오후 2시, 본회의 예정 시간에 맞춰 시위대 일부가 국회 후문을 통해 국회의사당에 진입했다. 연행될 위험이 매우 높았지만 금세 50여 명이 자원했다. 국회 진입자들은 대다수 국민들이 지지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감 있게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택시 노동자들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일제히 경적을 울려 댔고 대열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거센 항의 행동은 국회의원들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오후 4시경 결국 여야 원내총무의 합의로 파병안 처리를 연기하겠다는 결정이 발표됐다

집회가 끝난 뒤 다함께 회원과 고려대·경희대 반전위원회 등 일부 대열은 국회 진입 때 연행된 26명이 갇혀 있는 중랑경찰서와 북부경찰서로 향했다. 이들은 연행자들을 무조건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기세와 반전 여론에 밀려 경찰은 30분도 채 안돼 연행자들을 모두 석방했다.

최용찬, 김태훈, 김현옥

3월 28일

3월 27일부터 다시 여의도 집회와 농성이 시작됐다. 28일 오전 11시에는 파병 저지 농성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1천 명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참가했다.

유덕상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4월 1일과 2일에 1만 명 규모의 상경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 국민 일손 놓기의 날을 정해 전국적인 반전 행동을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서총련 의장은 “4월 4일에 3백만 전국 학생 행동의 날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28일 집회에는 더 광범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인터넷 방송 ‘라디오 21’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을 후회하며, 콜럼버스”라고 씌인 팻말을 준비해 왔다. 한신대 대학원 신학과 학생들과 교수들도 집회에 참가했다. 연예인들도 참가했다. 한국예술대학의 학생들도 반전 손도장을 찍은 플래카드를 들고 참가했다.

대구지하철참사대책위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사람은 “왜 국회는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냐”며 울부짖기도 했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자 경찰은 25일처럼 시위대를 에워싸려 했다. 그러나 28일은 25일과는 달랐다. 대열 규모가 그 때보다 몇 배 컸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의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트레일러를 끌고 여의도 주변을 에워싸고 경적 시위를 벌였다. 택시 노동자들이 경적 시위에 합세하자 시위 대열은 환호했다.

시위 대열이 경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결국 국회 앞 진입로가 뚫렸고 국회 건너편까지 진출했다.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파병안 본회의 통과가 두번째 유보됐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국회 밖에서 벌어진 행동이 국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 발표에 시위 참가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271명의 국회의원 가운데는 찬성파가 훨씬 많다. 노무현은 파병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반전 평화’ 의원들을 완전히 믿을 수만도 없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바로 파병 저지 직접 행동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그 동안 여의도 농성과 집회는 파병 반대 여론의 초점 구실을 적절하게 해내 파병안 국회 처리 유보에 큰 힘을 발휘했다. 파병안이 철회될 때까지 여의도 주변에서 농성과 집회를 계속 벌일 필요가 있다.

김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