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 3호의 ‘국가가 시장의 광기를 치료할 수 있을까?’ 기사에는 최근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견해를 다루지 않았는데, 때마침 이 문제에 관한 인터뷰(〈프레시안〉 4월 8일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장하준은 “이번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크면 더 컸지 덜 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낙관론”에 대해서도 “지금 2막이 진행 중인데, 이게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일축했다.

또, G20 정상회의가 대성공이었다는 주류 언론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며 파생상품 규제를 포함하지 않은 대응책을 비판했다. 그리고 “선진국들은 다 적자재정하면서 후진국 보고는 이자율 올리고 흑자재정하라고 요구한다”며 강대국들의 위선을 꼬집기도 했다.

그 밖에, 현재 국가 지도자(오바마를 포함해) 가운데 “근본적 개혁”을 주도할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고, 중국의 성장력을 과장하는 논자들과 달리 “중국은 양극화가 심각해서 세계경제 변화의 주도권을 쥘 여력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런 통찰력 있는 현실 인식과 시원스런 폭로를 보고 있으면, 얼마 전 연세대에서 열린 장하준 교수 강연회에 왜 무려 5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대타협’ 프로젝트

그러나 이 인터뷰에서는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비관적 전망이 그러하다. 자신의 주장이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털어놓는 데서 그의 통찰은 갈 길을 잃어버린다. 최근에 출판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의 맺음말에서 장하준은 “대안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대안이 존재한다”고 낙관적 전망을 외친 바 있다.

아마도, 세계 경제 위기 심화에 대한 각국 정부 정책 입안자들과 권력자들의 대처 방식을 보고 심정이 동요한 듯하다. 그들도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할’을 말하지만, 장하준의 구상과 달리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투기꾼 짐 로저스의 말처럼)만을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자본시장통합법과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버젓이 추진하는 한국 정부에게서 그가 느꼈을 환멸감도 심정 동요에 한몫 했을 성싶다.

세계 자본주의가 1930년대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놓인 탓에 기업주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양보할 여지는 더욱 줄었다. 따라서 재벌의 양보를 전제로 한 장하준의 ‘대타협’ 프로젝트는 실현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보를 얻어내려면 체제 유지를 위협할 만큼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가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대중의 자주적 행동이 지닌 잠재력에 주목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이런 아래부터의 관점이 있었다면 지난달 프랑스 총파업이나 G20 항의시위를 보고 비관적 전망을 떨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5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장하준 교수 강연회에 몰려들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비관적 전망을 지닐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졸초임 삭감을 수반하는 ‘노사정 타협안’에 대한 그의 비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위기의 부담을 떠넘기려 하는 권력자들에 맞서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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