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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최일붕 동지의 논평에 답하며:
금산분리 완화 반대가 전술로선 유용하다

〈레프트21〉 2호의 내 기고 글에 대한 최일붕 동지의 비판적 논평(지난 호 독자편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잘못 짚은 문제입니다.’)에 우선 감사한다. 매우 필요하고 유용한 논평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제 분석과 대안 논쟁에서 자본의 특정 편재 방식 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나 역시 글 서두에서 이미 한국의 재벌(나는 여기서 소유지분을 문제삼는 개혁주의적 용어법이 아니라 재벌을 대자본에 대한 대중적 호칭으로 여겨 사용했다), 즉 대자본들이 은행을 제외한 금융기업들을 소유·경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 예상 역시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다만, 최 동지의 비판 중 내가 총체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를 분석하지 않고 말단지엽적 문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 최 동지와 이론적 출발점을 달리해서가 아니라 내 글이 금산분리 쟁점에 한정해 논지를 전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 의견을 부연하자면, 한국의 대자본들은 산업 이윤율 하락 탓에 지난 수년간 금융기관을 통한 투기적 이익추구에 몰두해 왔다. 이것이 IMF 이후 10년간 금산분리가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장기 불황에도 한국 경제가 금융 호황을 겪은 이유다. 그러나 이 불안정한 호황은 2002∼2003년 카드대란, 지난해 펀드 폭락, 최근 부동산 거품 폭락 위기 등으로 근본적 취약성 역시 거듭 드러내 왔다.

따라서 “경제 공황기에 거대한 금산복합체는 특정 기업의 부실을 경제 전체로 확산시킬 위험성을 키운다”는 내 지적이 마르크스주의적 경제 분석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그 위험성 정도에 대해서는 논쟁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한편, 최 동지는 금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개혁주의자들 중 금융자본을 죄악시하는 쪽과 단순히 자본의 특정 편재 방식에 집착하는 쪽을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 예를 들어, 장하준 교수의 경우, “금융과 산업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생기는 비효율을 걱정”한다. 산업자본인 재벌이 ‘국부의 원천인 제조업’을 등한시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김상조 교수에 의존하는 편인) 심상정 전 의원의 문제의식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나는 한국 자본주의를 국가가 주로 은행을 통해 사적 자본을 보호·육성해 왔던 시기에서 사적 자본이 점차 독립해 온 과정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대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금산분리 완화) 요구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자본주의로 이행해 온 과정의 한 에피소드일 뿐이다.(이 과정이 자본 자체의 판단으로 역전될지 아닌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런 점에서 ‘금산분리 고수가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 주요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유용하다. 결국, 근본에선 ‘어떤’ 자본주의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전술적으로 중요한 슬로건은 ‘은행 국유화를 통한 공공적 운영 요구’일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쟁점은 우리가 은행 국유화를 요구하기 위해 금산분리 완화에 ‘전술’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나는 그것이 노동계급에게 부차적인 쟁점에 불과하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여전히 금산분리 반대가 전술적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은행 국유화를 요구하면서 은행의 본격 사유화에 반대하는 것이 모순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재벌과 경제적 부정의에 대한 반감, 친재벌 악법들을 강행하려는 MB정권에 대한 반대와 저항에 공감을 표현하는 것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