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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과연 바닥을 쳤는가?

한국 경제의 조기 회복론이 솔솔 피어나고 있다. 지난 2월 IMF 총재 스트로스-칸은 한국이 가장 빨리 회복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통계 지표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의 나쁘지 않은 실적에 근거하여 IT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무역수지도 올해 3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환율도 하향 안정되고 있다’, ‘작년 4분기의 -5.1퍼센트 성장에서 올해 1분기에는 0.1퍼센트 성장으로 바닥을 다지고 있다’ 등등.

이런 통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먼저 지적할 것은 세계적인 주류 연구소들의 경제전망들이 하나같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IMF는 지난 11월에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2퍼센트로 잡았다가 3개월 뒤인 올해 2월에는 -4퍼센트로 6퍼센트 포인트나 낮추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통계의 진정한 의미다.

한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수출 증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수입의 급격한 감소 때문에 흑자를 기록했을 뿐이다. 더욱이 설비투자의 기반이 되는 기계류의 수입은 지난 2월보다 더 감소했다. 이것은 극심한 내수 침체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4월에 발표한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 모두 하락하고 있다.

제조업 성장률 하락은 훨씬 더 심각한데, 지난 1분기 지표는 1970년 이후 최악이다.

수익성 악화

이런 모든 거시경제 지표들은 한국 경제가 회복되기는커녕 바닥을 확인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 외에도 한국 경제에 온갖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가계부채가 8백2조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가 1990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가계가 금융부채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닫고 있어 보유하고 있는 자산(펀드나 아파트 등)을 처분하지 않으면 갚기 힘들게 됐다는 의미다.

전체 고용인구가 줄어들고 실업자도 늘어나고 있다. 신규고용은 줄어들고 비정규직부터 시작된 해고 바람은 정규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자리 감축과 임금 삭감은 내수 축소로 이어져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증가에서 보듯이 한국의 주택시장도 언제 거품이 꺼져 주택담보대출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주택가격 하락과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다시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진다.

미국과 더불어 독일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지 못할 전망이다. 우리는 연일 선진국 경제들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뉴스 보도를 접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형적인 수출주도형인 한국 경제가 경기회복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착시 현상

최근 한국과 중국 같은 일부 국가들의 경제 지표가 그나마 최악을 모면한 것으로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의 증가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은 작년 하반기 이후 각각 GDP의 20퍼센트와 6퍼센트에 가까운 재원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고, 이런 효과 때문에 급락하던 경제가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회복을 위해서는 선진국 시장이 회복되거나 내수가 확대돼야 하는데,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 가능성은 낮다. 일부 대기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거두어들인 이윤을 신규투자로 돌리지 않고 움켜지고 있다. 투자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내수의 또 다른 요소인 민간소비도 고용 사정 악화로 확대될 것 같지 않다.

한국 경제의 회복 근거로 들고 있는 IT경기는 오히려 이번 위기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작년까지 20퍼센트 과잉공급으로 반도체칩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투자는 계속 진행됐고, 그 결과 독일 인피니언은 망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의 공장 가동률은 5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반도체 경기가 회복된다 할지라도 과잉투자된 자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의 수익성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단기외채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유럽발 위기가 서유럽으로 전이되거나 미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계속 나타난다면 환율이나 무역수지 등 대외경제 지표들은 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다. 정녕 한국 경제가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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