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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구조조정 계획을 즉시 좌절시켜야

2차 은행 구조조정을 앞둔 김대중은 지난 7월과는 달리 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민은행 노동자들이 "합병 논의 중단"이라는 일시적 승리를 얻어 낸 바로 다음 날, 정부는 즉각 은행 합병을 밀어붙이겠다고 발표했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김대중은 노르웨이에 가기 전에 "은행 합병을 꼭 마무리해 둘 것"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여름 은행 노동자들의 파업이 하루를 넘겨 "금융대란"이 코 앞에 닥치자 강제 합병은 않겠다며 물러섰다. 도대체 금융 파업의 파장이 어느 정도가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전에 서둘러 뚜껑을 덮으려 했던 것이다.

정부의 굴복은 은행 노동자들에게는 분명 승리였다. 그러나 결코 굳힌 승리는 아니었다. 정부는 강제합병 않겠다는 약속으로 노동자들을 일단 안심시킨 뒤 야금야금 은행 노동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미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들의 노동자들에게 '명예' 퇴직을 강요했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의 명예 퇴직 종용은 정리해고와 다를 바 없다. 서울은행에서만 7월 이후 7백여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퇴직서를 써야 했다. 한빛은행도 수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많은 은행들은 "이름만 안 썼지 누군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문서를 공개한 뒤 퇴직 희망자를 신청받는 식의 악독한 방식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노동자는 "밤에 아무리 잠을 청하려 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은행 노동자들에게는 하루 하루가 공포특급의 나날들이었다.

정부는 은행 노동자들을 옭아매기 위해 악랄하고 표독스런 수법들을 동원해 왔다.

퇴직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은증권 노조 위원장에게 배임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고, 퇴직금 누진제폐지에 "특히 금융 부문"이라는 강조를 잊지 않았다. 특히 기획예산처는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시킨 은행에만 공적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한 은행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는 1인당 2억 2천만 원이라는 황당무계한 생산성 지표를 들이밀었다. '해고냐 초인적 노동강도 강화냐'라며 더 작은 악을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인원 감축을 위한 수법

김대중은 대우차 노조 지도부를 마녀사냥해서 얻어 낸 노조 동의서를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자, 곧바로 금융 노동자들에게도 동의서를 요구했다. 노조 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부실 은행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심지어 쓰지도 않은 동의서를 썼다는 허위 사실을 흘리기도 했다.

김대중은 은행 노동자들에게는 말로는 달래는 척하고 행동으로는 누구 못지 않게 표독스런 방식을 아끼지 않는 위선적 행동으로 일관해 왔다.

대우차 노조 동의서 제출 직후 김대중 정부는 김대중 정부는 P&A, 즉 고용승계 의무가 없는 자산부채 이전계약 방식을 동원하겠다고 공표했다.(1998년 5개 은행을 퇴출시키면서 다시는 이 방식은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IMF도 정부에게 2차 금융구조조정 과정에 P&A방식을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이 방식은 지난 1980년부터 10년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됐다. 미국에서 정리된 은행 등 금융기관 1천 89곳 가운데 73퍼센트인 8백5개 은행이 이 방식을 적용했다.

애초에 공기업 노동자들을 "비효율"이라고 몰아붙였던 것이 공기업뿐 아니라 사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전주곡이었기에, 마침 김대중에게 전국전력 노조 지도부의 파업 유보는 은행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시킬 안성마춤의 기회가 됐다.

그러는 사이 정부 주도 하에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논의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골드만 삭스와 주택은행 인수 합병 팀은 합병 조건을 극비리에 논의하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점포망이 가장 비슷해서 인원을 최대로 줄일 수 있는 은행으로 국민, 주택 두 곳을 꼽았던 것이다.

정부는 갖은 책략을 동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지위가 불안해질 것을 염려해 은행 합병이나 지주회사 통합에 은행 고위 경영진들 자신이 반발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했다.

은행 합병의 총대를 맬 은행장이 바로 자살한 금감원 국장 정래찬의 옛 상관이자 정현준 게이트의 사실상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상훈 국민은행장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금융 부실은 기업 부실의 결과

이 모든 공격이 은행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7월 파업 때 금융 노조가 물리치지 못한 금융지주회사도 은행 노동자들의 인원 감축을 전제로 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한 지방은행 노동자에 따르면 정부 주도 하의 지주회사가 구성될 경우 각 은행의 업무에 대한 해체 작업이 시작된다. 카드 업무, 부실 채권 관리 업무, 전산 업무로 각각 나뉘어 같은 분야끼리 통합된다. 그렇게 되면 카드 사업 인원만 따져도 25퍼센트만 살아남게 된다. 한빛은행과 평화은행처럼 점포가 중복되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게 된다. 지주회사는 반드시 대량해고를 낳는다.

더구나 이미 IMF 공황 전에 13만 7천 명이었던 은행 노동자들이 지금은 7만 3천여 명이다. 7월 파업 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떠났다. 그들에게 김대중은 "도덕적 해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대형 부정 비리 사건의 주인공들은 은행 노동자들의 절반이 직장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검찰의 묵인 방조 하에 요리조리 빠져 나가거나 은폐돼 왔다.

부패한 금융감독원은 이미 올해 초에 파악한 진승현 비리를 알고도 쉬쉬했다. 정현준 비리에 연루됐다고 알려진 인물에는 금감원 고위 간부들뿐 아니라 여권 실세도 포함돼 있었지만 그들의 부패 비리는 의혹으로 끝났다. 불법 대출로 최소 몇 천억 원대의 돈을 주물럭거리던 벤처 기업가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금융 사기꾼들의 뒤를 봐 주고 구명 운동까지 펼쳤던 국정원 간부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검찰은 정현준과 여권 실세 사이의 다리 노릇을 했던 오기준의 신병을 확보하고도 모른 척했고 이미 1백억 대의 비자금 자료가 보관된 진승현 자료를 압수했어도 꼭꼭 숨겨 놓고만 있었다. 도대체 누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가?

한 노동자는 "도덕적 해이"라는 말만 들으면 뒷목이 뻣뻣해지고 속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대중은 은행 대형화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행 대형화는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은행 합병 뒤 되레 주식 가치가 떨어지고 부실 채권이 늘어났다. 상업과 한일은행의 합병 결과(한빛은행)는 초대형부실 은행이었다. 가뜩이나 현대건설에 돈을 빌려 준 외환은행과 합쳐지기라도 한다면 부실 규모는 더한층 커질 것이다. 일본에서 금융지주회사는 실패의 사례만을 남겼다.

금융 부실이 은행 규모가 작아서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 부실의 책임은 기업 부실 때문이다. 기업에 돈을 꿔 줬느냐 아니냐가 우량과 부실을 나누는 결정적 기준이 돼 버렸다. 도매금융(기업 금융)을 주로 맡았던 한빛·외환·조흥 같은 은행들은 순식간에 부실 은행이 돼 버렸다.

반면,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소매 금융(가계 금융)을 주로 맡았던 은행들은 우량 은행으로 남게 됐다. 자본가들의 탐욕스런 경쟁과 투자가 금융 부실의 원인이다. 광주 은행도 소매 금융만 취급하다가 도매 금융을 취급하자마자 부실 은행이 돼 버렸다.

IMF는 한국에 은행이 너무 많다며 은행을 줄이라는 주문을 하지만 시티은행이나 홍콩 상하이 은행(HSBC)은 되레 점포 수를 늘리며 한국의 소매 금융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금융 구조조정을 좌절시켜야 한다

금융노조 속보는 "금융 노동자들은 IMF 이후 단 하루도 편하게 지내 보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정부가 계속 은행 노동자들을 들볶는 동안 노동자들의 분노도 차곡차곡 쌓여 왔다. 말과 행동 사이에 너무도 큰 격차가 있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배신감도 함께 쌓여 왔다.

사실 7월 파업 당시 연세대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던 많은 노동자들은 집에 돌아가 마감뉴스를 보면서 내심 상실감과 당혹감을 느꼈다. 강제 합병은 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지만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는 금융 노조가 받아들인 셈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면계약서는 결코 노동자들의 상실감을 채워 줄 보루가 될 수 없었다. 내가 만난 여러 은행 노동자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이면계약을 두둔하지 않았다. 뭔가 공개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면계약 같은 방식의 '성과'는 얼마든지 없던 것으로 휴지조각 취급해 버리곤 한다. 한 노동자는 "투쟁에 기반하지 않고 협상에 의존하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물론 끝까지 연세대를 지키지 못했던 일부 지부 ― 가령 외환은행 노조 ― 지도자들도 문제였다.)

금융 노조 지도부가 이면계약의 효과를 내심 믿고 있는 동안 은행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국민은행 노동자들이 보여 준 금융노조와 단위 노조 지도자들에게 보인 불신은 7월 파업 이후 노동조합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정부의 공격을 물리치고 "명예퇴직" 강요를 막아내는 데 미진하게 대응한 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다 잘리고 난 다음에 파업할 거냐"며 노조위원장에게 항의했던 한 국민은행 여성 조합원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서울은행에서는 20여 명이 강제 명예퇴직에 반대해서 퇴직서 쓰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지원과 방어를 받아야만 한다.

광주은행 노조가 주최한 금융지주회사 반대 집회는 8천여 명의 은행 노동자들이 참가해 성황리에 끝났다.

실패한 금융 구조조정을 다시 재방송하려는 정부에 맞선 은행 노동자들의 정당한 행동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난 여름 이후 은행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쌓인 분노와 투지를 효과적으로 집중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