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과도 같은 학교를 빠져나오면 비정규직이라는 절벽이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끔찍한 삶에 대한 고발이자, 이들에게 보내는 연민의 편지인 《88만원 세대》는 그동안 큰 반향을 얻었다.

우석훈은 그 이후에도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부제가 달린 책들을 통해, 신자유주의로 질주하는 한국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통렬히 고발하고 이를 해체할 대안을 제시해 왔다.

“괴물”의 악행은 학생들에게 창의성 대신 군대식 규율을 부과하고, 일자리와 삶의 질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새만금 갯벌의 파괴가 보여 주듯이 ‘토건자본주의’는 생태, 균형,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문화, 정주(定住) 등의 가치를 제물로 삼아 건설자본, 땅투기꾼, 관료, 정치인 들의 탐욕을 채웠다.

전쟁을 낳는 “괴물”에 대한 다음의 통찰도 타당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오래된 목소리를 다시 기억해 보자.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낮아지는 이윤율이 시스템의 몰락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제국주의로 전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결국 경제 위기가 그런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이는 지난 2세기 동안 자본주의 역사가 보여 준 교훈이다.”

그는 “시장의 이윤지상주의 논리만이 관철되는 사회는 지옥”이라고 말한다. 그의 비판은 시장 제도의 근본적 문제점들을 환기시킨다.

그는 자신의 최신 저작 《괴물의 탄생》에서 ‘사회 경제’라 부르는 ‘제3부문’을 강화해 시장 제도를 “견제”하자는 포괄적 대안을 제안한다. ‘제3부문’은 시장의 이윤지상주의가 아니라 호혜(互惠), 연대, 증여(贈與)의 원리에 기초해 운영되는 비(非)시장적 경제다.

그것은 또한 국가로부터도 독립적인 경제다. 그에 따르면, 국가사회주의의 실패와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의 한계는 국가 개입을 통해 시장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대안은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사상과도 관련이 있다. 폴라니는 인류 역사에서 상이한 사회들이 사회 전체의 유지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시장 제도의 파괴적 본성을 통제해 왔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시장 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로 운영되는 경제체제가 필요하다는 우석훈의 주장은 민주적 의사 결정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참여계획경제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적극 공감할 만한 주장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非)시장적 경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다.

우석훈은 ‘제3부문’이 아직까지 충분히 이론적으로 설명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가령, 경제적 수단을 통제하는 기존 자본과 국가의 권력에 도전하지 않고도 ‘제3부문’이 시장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우석훈은 ‘제3부문’에 상당히 많은 대상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공정무역’, 생활협동조합운동, ‘사회적 기업’ 등은 그가 말하는 ‘제3부문’에 포함된다. 거대 자본의 착취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생산자들에서 친환경적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사회적 가치들을 방어하려는 진지한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공정무역’이 ‘자유 무역’에 의미있는 균열을 냈다는 증거는 없다. ‘공정무역’을 통해 일부 제3세계 커피 농부들의 소득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 커피 농부들의 소득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커피가격이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의 가격 변동에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의 5퍼센트도 안 되는 ‘공정무역’ 커피에 지불하는 ‘프리미엄’(노동계급이 소비자로서 지불하는)으로는 전체 커피 가격 폭락분을 메우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따라서 ‘자유 무역’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면 커피 생산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계획이 필요하다.

스타벅스 웹사이트에 있는 공정무역 홍보 페이지. 스타벅스는 공정무역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감을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 즉 원자화된 상품소비자로서 시장체제에 도전하는 방식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 자본은 상품 생산을 위한 자원 획득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자본의 뒤를 봐준다. 이들은 가격 경쟁력, 마케팅, 규제 등의 막강한 수단을 활용해 ‘제3부문’이라는 ‘불청객’들에게 자신들의 이윤이 새지 않도록 고삐를 틀어쥘 수 있다.

심지어 자본이 ‘불청객’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업영역으로 포섭하는 경우도 있다. 네슬레, 스타벅스 등의 다국적 기업들은 ‘공정무역’이 소비자들에게 주는 호감을 이용해 더 수익성 있는 사업을 할 기회로 여기고 있다. 만일, 이와 달리 ‘제3부문’이 스스로의 ‘경제적’ 동력으로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가고자 한다면 시장의 논리인 ‘상품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은 어떤가? 이 또한 어쨌든 기업의 존재법칙 ― 이윤 추구 ― 을 따라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이윤을 해치지 않고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등을 제공하려면 세제 혜택 등 국가의 지원에 많은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빌 게이츠의 ‘기부’나 장인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방형 소규모 공업도 ‘제3부문’에 포함시키는데, 이것들이 시장 “견제” 수단에 포함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제3부문’ 또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자본과 권력이 가하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을 “견제”하기에는 부족하다. 시장 체제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돼야 한다.

한편, 그가 강조하는 ‘탈(脫)포드주의’나 ‘지식문화’ 경제 등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진보 진영의 대응을 ‘반신자유주의’ 또는 ‘공공부문 사수’라는 구호로 집약하는 것은 경제에서 일어난 변화를 충분히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복지국가 모델은 포드주의적 생산에 기초해 노동과 국가의 힘이 자본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증대한 결과인데, 세계화 시대에 이러한 체제가 더는 작동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그가 노동계급이 아니라 새로운 ‘제3부문’을 강조하는 맥락과도 연결돼 있는 듯하다.

그러나 1980년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회 복지 분야를 포함한 정부 지출 규모가 증가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가 차지하는 구실이 쇠퇴했다는 증거는 없다. 세계화 시대에 노동계급의 힘이 약화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고임금으로 인한 ‘제조업 공동화’는 과장이다. 1970년에서 2001년까지 선진국에서 자동차 산업의 고용은 증가했다.

그는 ‘지식문화’ 강국으로서 스위스를 대안 모델로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고부가가치’를 생산해 자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어 시장 논리에 도전해야 한다는 그의 다른 주장과 모순된다. 네슬레, 로슈 등 다국적 기업의 천국이자, 해외 자본가들의 자산 도피처 구실을 하는 나라를 대안으로 여겨야 할지도 의문이다.

비(非)시장적 대안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통찰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

시장 논리와 근본에서 다른 운영 원리를 따르는 경제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제도와 국가의 적대(포섭을 포함해)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과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에 직접적·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한편, 폴라니도 인식했듯이 시장의 광기에 대한 ‘사회적 통제’ 시도가 단일하지는 않다. 여러 사회 세력들이 상이한 시도들을 추구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시장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노동계급은 체제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경제 전체의 사회화에서 이득을 얻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다른 세력들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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