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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에 보내는 냉소적인 위로 - UMC/UW

UMC가 돌아왔다. 여전히 거칠고 마초적인 목소리지만, 여전히 쓰라리게 뼈아프다. 이 엉망진창인 사회에서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패배자 내지는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각인시켜 주는 감성적인 가사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물론 특유의 마초적인 목소리와 거친 쌍욕이 아니었다면 자살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게 단점(?)이지만.

오늘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끝없이 죽음 같은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걸 UMC는 결코 회피하지 않는다. 이 현실에 대해 절망하는 대신 UMC는 거리를 두고 빈정거리면서 이야기한다. 그 냉소는 오히려 현실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내 돈 어딨냐’는 끝없이 돈을 벌어야 하지만 그렇게 죽도록 벌어봤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한 시대를 통렬하게 꼬집어낸다. ‘98학번’은 꿈을 버리고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고 마는 사회를 자조적인 목소리로 들려 준다. 연예인을 지망하면서 화려한 자본들 속에서 점점 소외되는 여성의 삶을 노래한 ‘자영이’의 가사는 폐부를 찌른다. 연예인을 지망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영혼을 팔기 전까진/결코 행복한 날은/오지 않을거라구”라는 가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조적으로 노래하지만 “낙오자”를 자처하는 UMC의 목소리는 외면하는 것처럼 그 “낙오자”들을 끌어안는다. UMC는 ‘You mean everything to me’에서 말하는 “꿈을 말하는 직업 때문에 꿈을 버려야 했던 이들”의 노래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거리두기를 시도하면서 “니 얘기 아냐” 또는 “너나 닥쳐”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목소리들은 더욱 진실을 보여 주는 효과를 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현실을 비웃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UMC가 현실에서 거리를 두는 방식은 냉소적인 유머다. 한쪽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빈정거리면서 실실 ‘쪼개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Bullet’에서 이명박을 반장으로 비유해서 ‘씹어대는’ 부분은 그 카타르시스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교생한테 꼬리치느라/교실에 개울을 파버렸”던 “매우 하자”인 “반장”은 여전히 “지랄염병병신육갑”하고 있지 않은가(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부 다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다 #’에서 ‘좆’으로 치환되는 라임 역시 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힙합에는 반드시 라임이 존재해야 하며, UMC는 그 라임을 제대로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라임을 만들지 않는 거라는 비판에 대한 UMC 특유의 빈정거림이다. 모든 라임이 결국 다 ‘좆’이라는 걸 그들이 원하는 라임을 뽑아내면서 노래한다.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라임’이라는 형식이 갖는 절대적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다 #’은 그 카타르시스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아무튼 여전히 UMC는 별로 다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타인도 비웃고 자신도 비웃는다. ‘Kebee’, ‘InsaneDeegie’, ‘Hiphopplaya.com’, ‘Rhymer’ 같은 트랙들에선 “낙오자”인 자신에 대해서 대놓고 냉소한다. 하지만 이 냉소를 단지 냉소까지만 보고 손을 놓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냉소는 냉소를 가장하고 있기 때문에 “낙오자” 리스너들에게 더욱 따뜻한위로를 준다.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낙오자” 동지가 돼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버겁다. UMC의 노래가 보여 주는 그대로. UMC/UW는 이 버거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을 좀 많이 비뚤어지고 쌍스러운 태도로 아닌 척 더욱 다정하게 위로한다. 2009년 4월 오늘, 현실을 똑바로 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쓰라린 위로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