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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학살의 배경

스리랑카 정부는 국내 타밀족들을 상대로 끔찍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유리 프라사드가 이 분쟁의 배경을 살펴본다.

인도 남동쪽 해안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스리랑카섬에서 유혈낭자하고 또 점점 일방적으로 흐르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자기식으로 해석해 ‘타밀호랑이’로 잘 알려진 분리주의 단체 타밀일람해방호랑이(LTTE)를 분쇄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스리랑카군은 타밀족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이들을 자프나반도로 몰아 그곳의 학교, 병원, 피난처를 거듭거듭 폭격했다. 최근 UN 보고서를 보면, 최대 19만 명의 타밀족들이 이 좁은 지역에 갇혀 있다.

4월 초, 스리랑카군이 푸투마탈란 마을 내 임시 병원을 공격해 환자 수십 명이 죽었다. 스리랑카를 식민 지배했던 영국 등 서방 정부들은 스리랑카군에 무기를 지원해 왔다.

언론은 이 분쟁을 드물게 다루거니와, 다룰 때도 불교도 싱할리족 정부와 힌두교도 타밀족들이 벌이는 이해할 수 없는 오랜 종교-종족 갈등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내전은 언론의 묘사처럼 외견상 뚜렷이 구분되는 집단 간의 오랜 충돌이 아니라 지배계급 내 경쟁 분파들, 또 그 아래의 중간계급들이 종족에 바탕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 애써 온 결과다.

스리랑카에는 2천만 명 넘는 사람들이 영국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면적의 섬에 모여 산다. 그들 중 다수는 싱할리어를 쓰는 불교도지만 이들과 다른 종교를 믿고 다른 언어를 쓰는 소수 민족들이 무시 못 할 규모로 존재한다.

이주

스리랑카의 타밀족은 모두 같은 언어를 쓰지만 종족이나 신봉하는 종교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전체 인구의 14퍼센트를 차지하는 타밀족은 1천 년 넘게 이 섬에 거주해 왔는데, 이들은 종종 스리랑카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곤 했다.

19세기 중반 인도의 타밀족들이 당시 영국 치하의 실론섬[오늘날의 스리랑카]으로 이주해 왔다. 그들은 홍차 재배지에서 일했고 대부분 가난했다. 그들 중 다수는 힌두교도였는데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힌두교 이외의 종교를 믿었다.

스리랑카 인구의 다수인 싱할리족들 사이에서도 폭력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는 것 또한 잘못임을 보여 준다.

영국 식민 정부는 스리랑카 대중을 최대한 착취하려고 분열지배 전략을 폈고, 결국 오늘날 분쟁의 토대를 닦는 데 일조했다.

영국 정부는 소수민족인 타밀족이 자신에게 충성하게 하려고 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타밀족은 정부 내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대학에 진출한 학생수도 인구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영국 제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1948년까지 실론섬에서 타밀족과 싱할리족 사이 적대가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권위[영국 식민 정부]가 붕괴하자 새로 엘리트층이 되려는 이들 사이에서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실론섬 내 날카로운 계급 분단을 가리고 지지율을 끌어올려 선거에서 이기려고 모든 정치인들이 사람들의 종족적·종교적 차이를 부각시켰다.

스리랑카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핵심 수단은 언어였다. 독립 당시 스리랑카의 공식 언어는 영어였다.

새 정부가 공식 언어를 영어에서 싱할리어로 바꾸겠다는 공약으로 당선한 것은 보통 영어와 타밀어를 쓰는 스리랑카 타밀족 중간계급들에 대한 우회 공격이었다.

새 정부는 또 타밀족 수만 명을 인도로 돌려보내고 남아 있는 이들의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좌파와 노동조합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었는데, 왜냐하면 타밀족 농업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좌파와 노동조합으로 잘 조직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처로 싱할리족의 독자적 정체성이 새롭게 형성됐다. 다른 한편 타밀어를 쓰는 중간계급들은 정부의 차별 정책에 맞서 한목소리를 내려고 모든 타밀족을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형성하려 애썼다. 두 집단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종교적 상징과 설화를 변형시켜 활용했다. 처음에 대중은 새로운 종족적 정체성에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갈등의 고조를 엘리트들 간 문제로 봤다. 그러나 언어를 둘러싸고 시작된 전투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내전을 촉발하는 씨앗이 됐다.

1956년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스리랑카자유당(SLFP)은 싱할리어를 유일한 공식 언어로 삼겠다는 공약을 이행했다. 불교 승려들은 “타밀어의 분별 있는 사용”을 허용하는 작은 법 개정에 항의해 폭력 시위를 벌였다.

새 법으로 인해 공직에서 타밀어 사용자 수가 급감했다. 1948년에는 공무원의 30퍼센트를 차지했던 타밀족이 1970년에는 6퍼센트만 남았다. 사회 상층부와 중간계급에 속해 있던 타밀족들은 이제 자신들이 좋은 일자리에서 배제되고 그들의 자녀들 또한 대학 교육을 받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8년에는 반(反)타밀족 소요가 도처에서 벌어졌다. 3년 뒤, 타밀족은 정부의 차별 정책에 맞서 총파업을 벌였지만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타밀족 밀집지역인 중부 고지대와 북부에 군대를 파견했다.

타밀족은 스리랑카 국가의 억압과 학살의 주된 표적이 됐다.

스리랑카 좌파는 정부가 조장한 종족 간 갈등이 널리 확산되는 것을 가로막아야 했다. 싱할리어를 쓰는 평범한 노동자·농민 들이 지배계급의 종족우월주의에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정당인 란카사마사마자당(LSSP)은 트로츠키주의 정당으로 모든 언어 사용자들 내에서 상당한 수의 당원을 갖고 있었다. 또 한동안 스리랑카의 주요 야당 구실을 했다.

그러나 LSSP는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산당과 함께 정부에 참여해 스리랑카 민족주의의 진정한 대변자를 자처했다.

1970년에는 주요 야당인 통합국민당(UNP)이 좌파 정당, 타밀 정당 들과 손잡고 분쟁 종식을 약속하며 권력을 잡았다.

새 정부는 타밀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일정 정도 자치권을 주려 했다. 그러나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교육수준이 높은 싱할리 젊은이들이 주도한 반란이 벌어졌다. 이들은 구직을 어렵게 하는 불교의 카스트 제도 철폐를 요구했다. 이 충돌과 뒤이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약 1만 명이 사망했다.

지배계급의 취약성이 확연히 드러났다. 정부는 타밀족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여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 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지부진한 현실과 주요 타밀족 정당들의 타협에 신물이 난 타밀족 젊은이들은 무기를 들고 정부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리랑카 북부에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여러 집단을 구성했다. 타밀호랑이는 그 중 핵심이었다.

스리랑카 당국의 탄압이 시작됐고 타밀족 수천 명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다. 타밀호랑이는 납치와 폭탄 공격으로 맞섰다. 스리랑카를 집어삼킨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반란

타밀호랑이는 남부를 휩쓴 싱할리 젊은이들의 반란에서 가능성을 보지 않았고 대신 모든 싱할리어 사용자들을 정부 억압 정책의 공범으로 여겼다.

스리랑카 대중의 전국적 지지도, 정부에 맞서 이길 군사력도 없었던 타밀호랑이는 인도 정부의 지원을 바랐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사기꾼 같은 구실만 했다.

처음에 인도 정부는 인도 도시 마드라스의 군사기지에서 타밀호랑이가 무장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나중에는 스리랑카에 ‘평화유지군’ 7만 5천 명을 파병하는 내용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도왔다.

스리랑카의 붕괴가 초래할 불안정이 자국에까지 확대될까 봐 두려웠던 인도는 군대를 동원해 타밀호랑이를 무장해제시키려 했다. 이것은 치열한 전투로 이어졌고, 그 결과 타밀족 난민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1980년대 이후 집권한 스리랑카 정부들은 타밀호랑이를 분쇄하려고 외교와 군사공격을 번갈아가며 활용했다.

한편,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2004년 발생한 쓰나미는 스리랑카 빈민 수백만 명의 삶을 큰 고통에 빠뜨렸다. 그들의 종교나 언어와 무관하게 말이다.

최근 스리랑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13억 파운드[약 2조 5천억 원]를 빌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IMF는 그 대가로 재정긴축 정책과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타밀호랑이의 군사적 패배로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가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의 새 시대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군사비에 쏟아붓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보건 노동자, 기술자, 교사 들이다. 분쟁과 환경 재앙으로 살 곳을 잃은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양식, 안정을 보장할 대규모 공공지출 프로그램이다. 이것들은 모두 스리랑카 좌파의 요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국 정부가 스리랑카 정부의 군사행동을 비난하고 스리랑카에 무기 판매를 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스리랑카 정부의 군사공격을 멈추게 하고 빈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면 단결 투쟁이 필요하다. 스리랑카 정부의 차별 정책과 이것이 부추기는 종족우월주의 문화에 도전할 준비가 돼 있는 운동만이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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