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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은 개성공단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5월 15일 북한의 개성공단 협약 무효 통보로 개성공단 경협 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일제히 북한을 비난하고 나섰다.

진보신당조차 미국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고 “북한은 이렇게 벼랑끝 전술을 남발하다가는 언젠가 벼랑에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주된 책임이 북한에 있는 양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북한 당국에 개성공단 문제를 북핵 등 다른 사안들의 부차적 조건으로 활용하지 않기를 촉구”했는데, 이렇게 먼저 활용한 쪽은 이명박 정부였다. 이명박은 취임 첫날부터 “북이 핵을 포기해야 남북 협력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입안한 비핵개방3000 구상 또한 이런 상호주의에 입각해 있다.

게다가 합참의장 내정자의 북의 핵 기지 선제 타격 발언과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찬성 투표, 이명박의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돼야 한다”는 발언 등은 북한의 연이은 강경 대응을 부추겼다. 올해 들어서도 이명박 정부는 2년 연속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고 MD와 PSI 참가를 저울질 하는 등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부추겨 왔다.

남한 기업의 이윤을 위해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개성공단 노동자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최근 현대 아산 직원 억류 사건과 북한의 개성공단 협약 재검토 통보 이후 이명박 정부는 PSI 참가를 잠시 유보하고 있지만, “유씨가 석방되는 즉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발표하겠다는 방침”(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다보니 북한이 협약 무효 통보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북한의 협약 무효 통보 이후, 남북 화해를 바라는 여론과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압력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초래한 근본 원인인 대북 적대 정책을 철회하지 않은 채, 임기응변식으로 대화만 제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편 그동안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남북 간 정치·군사적 적대 관계의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미국의 대북 압박이 지속되는 조건에서 남북 경협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동력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과 남한 정부의 공조에 반대하는 투쟁 없이, 경협 강화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를 근본에서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보다 이윤 추구

이번 개성공단 협약 무효 통보에 대해 다수의 언론들은 개성공단이 남북 모두에게 “윈-윈”이었다며 이번 사태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과연 개성공단은 남북한 구성원 모두에게 “윈-윈”이었나?

지난해 말 통일부가 발간한 ‘개성공단 Q&A’에 따르면, 개성공단의 최저임금은 약 55달러 정도로 남한의 최저임금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저임금 노동으로 유명한 중국에 비해서도 2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이다.

남한 기업들은 개성공단에서 각종 세금 혜택도 누리고 있다. 기업소득세율, 개인소득세율, 영업세율 모두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남한에 비해서도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정도면 국내 어느 업체도 쫓아 올 수 없고 중국도 꺾을 수 있었다.”(개성공단 입주 기업주)

또한 남한 정부와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남북 경협의 성과로 해상 수송로보다 더 효율적인 육상 수송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애초부터 남한 정부와 기업들에게 개성공단은 평화보다는 이윤 추구의 “블루오션”이었던 것이다. 이 점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추진된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회담 결과 채택된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은 대체로 평화보다 번영, 즉 기업 활동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이익을 철두철미 옹호하는 이회창·정몽준 등 우파 정치인들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다고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본심이기보다는 냉전적 선동을 통해 우파들 내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데마고기(감정적 거짓 선동)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개성공단에서 기업들의 탐욕스런 이윤 추구는 민족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통해 이러한 명분의 위선이 밝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 현실화를 요구하자, 대다수 개성공단 기업주들은 이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물론 북한 노동자들을 억압·착취해 온 장본인이자 개성공단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초착취에 공모해 온 북한 당국의 이번 요구가 남한 당국에 대한 압박 수단일 뿐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민족 구성원인 북한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통해 이윤을 얻겠다는 것을 민족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이 점을 도외시하곤 한다.

가령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경제 위기 상황에서 특히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들을 살려내는 것이 절박하다”고 했는데, 이런 입장에서 접근하다보면, 같은 민족 구성원인 북한 노동자들의 이익을 일관되게 옹호할 수 없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진보신당의 입장 또한 계급의 이익이라는 관점이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남한의 진보진영은 개성공단에서 민족의 이익으로 표상되는 북한 관료와 남한 기업주 들의 이익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남북한 노동자 민중의 이익과 단결을 옹호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도 남한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걱정하는 관점은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해 남한의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남한 노동자들과 개성공단 이외 지역의 북한 노동자들 모두에게도 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