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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 제국주의의 피조물에서 저항의 구심으로

오바마는 취임 초 “알카에다와 탈레반 테러조직을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 증파 결정을 내렸고, 최근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카르자이와 파키스탄 대통령 자르다리를 백악관으로 불러 탈레반 소탕에 대한 전의를 다졌다.

탈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보수적 이슬람 교리인 와하비즘에 바탕을 둔 단체다. 이전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과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들이 지향하는 사회는 지독하게 우익적이고 여성차별적이다.

미국 정부는 이 이유를 들어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정당화했고, 아프가니스탄 바깥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반대하지 않거나 심지어 지지했다. 한국에서도 2007년 샘물교회 교인들이 탈레반에게 피랍됐을 때, 참여연대 등 평화주의 단체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점령, 한국의 파병 정책과 같은 비중으로 탈레반을 비판했다.

그러나 애당초 미국과 파키스탄은 탈레반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르다리가 지적하듯이 탈레반은 “우리[파키스탄]와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 존재”였다.

탈레반을 이해하려면 30년 전으로 돌아가 그들이 집권하게 된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8년 동안 점령을 지속했다. 이 기간 동안 50만 명이 살해됐고 1백만 명이 불구가 됐으며 8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총인구는 약 1천5백만 명이었다.

그러나 저항은 멈추지 않았고 옛 소련과 경쟁하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주의자들, 즉 무자헤딘이 투쟁을 이끌었다. 1988년, 옛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중앙권력에 갑작스레 공백이 생기자 이번엔 이슬람주의자들이 치열한 내전을 벌였다. 이 내전은 무려 7년간 지속됐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계속 정치적 혼란 상태로 남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국이 이란과 러시아의 간섭을 받지 않고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갈취하려면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안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필요에 따라 탈레반은 미국과 파키스탄 정보 당국의 후원 아래 성장할 수 있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촌 ‘학생들(탈레반)’로 구성됐는데,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하는 파슈툰족 출신이 압도적이었다. 또 이들은 성장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 아래 설립된 종교학교(마드라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이런 출신 배경이 탈레반 사상의 두 가지 주요한 특징, 즉 이슬람주의와 파슈툰족 우월주의를 만들어 냈다.

1994년 탈레반이 처음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을 때, 그들은 겨우 30명짜리 게릴라 조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 2년 만에 수만 명으로 불어나 파슈툰족이 대다수인 아프가니스탄 동부와 남부, 수도 카불을 접수했다.

부패한 이전 권력자들과 다르게 탈레반이 법과 질서를 강조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대중은 그들을 신뢰했다. 또 탈레반이 미국과 파키스탄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파슈툰족 우월주의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는 데 걸림돌이 됐다. 탈레반의 통제 범위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와 남부를 벗어나지 못했고 나머지 지역은 군벌들이 통치했다. 이것을 지켜본 미국은 탈레반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이루고자 한 기대를 접었고, 1990년대 후반 그들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그 뒤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침략과 내전에 이력이 난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당장 저항에 나서지 않았다. 또 탈레반은 미국의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본뜬 초보수적 이슬람 통치와 축구장에서의 즉결 처형 등 기행으로 대중의 지지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이 나서 미국과 탈레반 사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데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 이 협정으로 탈레반은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 접경 북서변경주 등 파슈툰 부족 지역으로 돌아갔고 미국은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령군의 야만적 행태는 곳곳에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 냈고 ‘재건’을 한다며 들어온 NGO들은 부패했다. 결국 사람들은 다시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투쟁을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탈레반이다.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탈레반을 썩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주도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점령에 협력하지 않고 공공연히 저항을 호소하는 세력으로 잘 조직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경험에서 배운 탈레반도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여성차별적이고 억압적이다. 그러나 민간인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 전술을 지양했고 ― 이것은 주로 알 카에다가 즐겨 쓰는 수법이다 ― 파슈툰족 우월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점령군에 맞서 모든 무슬림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탈레반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전 국토의 80퍼센트를 장악해 명실공히 가장 유력한 정치세력이 됐다.

한편, 탈레반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

탈레반이 파키스탄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데 조바심을 느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지역에 무인폭격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격으로 대응했다. 또 파키스탄 정부에 압력을 넣어 이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펼치게 했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엄청나게 희생됐고 무려 2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탈레반에 수동적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 중 일부는 탈레반과 함께 무장 저항에 나섰다.

지난 8년의 경험이 보여 준 것은 점령이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삶을 개선하긴커녕 더 끔찍한 나락으로 빠뜨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점령을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모든 이가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