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역사상 최대의 군사력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번 전쟁은 1백년 전의 식민지 전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4월 7일 미군 탱크들이 바그다드에 진입하자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그들에게 아첨하는 언론은 승리를 축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직면한 현실은 해방이 아니라 점령이다.

사담 후세인의 바트 당 정권은 이라크 민중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공포 통치를 자행해 왔다. 지금 이라크를 공격하는 미국과 영국은 후세인 집권 기간 대부분 시기에 그를 지지하고 후원했다. 이제 미국이 이라크에 세우려고 하는 정권은 후세인 정권보다 더 나쁜 정권일 것이다.

미군과 영국군 탱크가 지나간 자리에는 혼란, 사상자, 파괴만이 남아 있다.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은 붕괴해 버렸다. 전기, 의약품, 식량, 물 부족 때문에 앞으로 몇 주 동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군사 독재 정권을 세울 계획이다. 그리고 후세인 정권에서 가장 잔인한 짓을 자행했던 작자들 일부는 그 군사 정권에 협력할 것이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4월8일치 〈인디펜던트〉에서 패트릭 콕번 기자는 이라크의 어떤 마을에서 반(反)후세인 “봉기”가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그 봉기의 지도자들은 미국에 협력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들은 겨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지역 바트 당 간부들이었고 후세인 정권의 보안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런 장면이 되풀이될 것이다.

미국은 “새로운 이라크”를 이라크와 아랍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증오하는 정권―이스라엘―의 긴밀한 우방으로 만들 작정이다. 이라크의 행정청장이 될 미국인 예비역 장성 제이 가너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자다.

미국의 거대 기업들은 이라크를 분할해 석유와 사회기반시설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다. 또, 이라크를 약탈해 이윤을 늘리려 한다. 미국의 점령에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은 과거에 아무리 후세인 정권을 증오하고 반대했더라도 이제는 기껏해야 손이 뒤로 묶이고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 쓴 채 길거리에 내돌려질 것이고 일상적인 야만에 시달릴 것이다.

부시와 그 일당은 벌써 다음 표적을 겨냥하고 있다. 전 CIA(중앙정보국) 국장 제임스 울시는 전후 이라크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다. 그는 이라크 정복이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제4차세계대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이란·북한·리비아·쿠바·베네수엘라 등등이 미국의 다음 표적 명단에 올라 있다.

모든 곳의 식민지 정권들이 그랬듯이,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고통·증오·저항을 부를 것이다. 중동 전역에서 미국과 미국에 굴종하는 아랍 정권들에 대한 저항은 지금껏 커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부시와 블레어의 목표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들은 이라크 “해방”이라는 거짓말 뒤에 숨은 진실을 알고 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그것이 부를 끊임없는 공포와 죽음에 맞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들을 상대로 전쟁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계획에도 맞서 일어설 것이다. 그런 세계적 저항만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미국 지배자들의 전쟁 몰이를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해외 좌파 저널에서)


독점 취재 - 베트남 참전자가 전쟁 반대를 외치다

정진희

지난 3월 29일 종묘에서 반전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으로 행진하는 도중 60대로 보이는 한 시민이 시위대 앞에 불쑥 나타났다. 두 눈을 부릅뜬 그는 작은 증명서를 사람들에게 내보이며 계속 “반대한다”는 말을  외쳤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베트남 참전 용사증이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종묘 집회에 참석한 김영권 씨였다. 4월 2일 국회에서 한국군 이라크 파병안이 통과된 뒤, 나는 그를 만나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김영권 씨는 23살이던 1967년에 입대해 논산 신병 훈련소에서 6주 훈련을 받던 중 갑자기 차출돼 베트남에 파병됐다.

“1967년 8월에 베트남에 갔어요. 그 당시에는 우리를 ‘10주병’이라고 했는데 논산에서 6주 훈련받고 국가의 명령에 따라 월남에서 4주 훈련받은 사람들을 ‘10주병’이라 해요. 당시에 전쟁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였죠.

“전쟁이 나면 선량한 군인들이 죽어요. 나는 죄 없는 국민[민간인]을 학살하지는 않았지만 살기 위해 사람을 많이 죽였어요. 그건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정부에서 죽인 것이니 어쩔 수 없었어요. 한국에 월남 2세대들이 왔는데 항상 죄책감을 갖고 살고 있어요. 미안하다. 그 사람들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죄를 받는가 보다 하고 생각해요. 전쟁의 공포, 동료들 쓰러진 것. 적이 쓰러질 때, 이것을 생각하면 전쟁은 없어져야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이면 내가 헛소리를 해요. 주위에서 ‘아버지가 정신이 이상하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헛소리

“나는 월남전 생각이 나서 TV에서 이라크 전쟁을 안 봐요. 지금 이라크 전쟁에서 죄 없는 국민들이 많이 죽고 있잖아요.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잠깐 보지 그 이상은 안 봐요. 보니 내가 월남전쟁 할 때랑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회한에 찬 표정으로 그는 내게 전공표창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내가 새끼들한테 창피하니까 이것을 보여 주지 않아요. 내가 그 때 안 갔어야 하는데. 국가의 명령이니 안 갈 수도 없었어요. 내가 많은 것을 빚지고 살고 있어요. 이제는 세계적인 안정과 평화, 서로 편안하고 남의 나라 건드리지 않고 국민을 보호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나는 고엽제 문제로 국가와 12년을 싸워 온 사람이에요. 하루하루, 사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에 대통령이 우리 참전 용사들한테 검사해 보라고 해서 신청했어요. 원인도 모르게 아프고 해서 1년에 한 번씩 검사하는데, 번번이 고엽제하고는 상관없다는 판정이 나와요. 보훈처 병원에 자주 가 보니 어떤 사람이 판정을 받냐 하면, 내일 모레 관 속에 들어갈 사람들, 팔이 돌아가고 수족 못 쓰고 하는 사람이에요.  

“고엽제 후유증 있는 사람들이 정신적·물질적으로 고생 참 많이 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노동력을 상실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박해를 받고 있어요. 3월 23일에 고엽제 문제로 집회를 했어요. 우리가 당시 벌어들인 8억 5천8백만 달러는 피와 죽음의 대가이니, 1인당 1만 5천 달러씩 지급해야 해요. 참전 용사들이 돈 거저 달라는 게 아니에요. 지긋지긋한 전쟁 속에서 벌어 온 돈, 우리 시대에 경제 발전에 쓰인 돈, 너희들이 이 돈을 활용했으니 돌려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에요. 당시 베트남에 12만 명쯤 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다 죽고 한 6만 명 남았어요. 이제 힘도 없고 고엽제로 시달린 이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당연히 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게 무슨 국민 세금으로 달라는 게 아니지요.

맹호부대

그는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받은 4주 훈련은 전쟁터랑 마찬가지에요. 포로 잡아다 죽이는 훈련을 시켰어요. 월남 가서 4주 훈련받고 구호 작전이 생겼는데 그 때 45일 작전을 했어요. 게릴라 작전이 벌어져 많이 죽었어요. 밀림 지대니까 단 5미터도 안 보여요. 거기서 비둘기부대 동료가 많이 희생당했죠. 난 맹호부대였는데 우리는 보병이니까 날 새면 수색하고 매복하고 그러다 보니 적과 충돌이 생기고...”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생각을 하면 표현할 수 없는...” 인터뷰 처음부터 혈압이 높으니 충격적인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터라 나는 더 물을 수 없었다. 최근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통과한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공병이든 의료인이든 항상 전쟁터는 위험해요. 생명을 걸기 마련이에요. 어느 나라든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복수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가족이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면 살 의미가 없는 거예요. 항상 죽을 각오를 하고 해서 자살 폭탄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공병이든 의료인이든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다 적으로 보여요. 항상 게릴라 작전을 할 수 있는 조건에 있어요. 공병이든 의료인이든 왜 남의 나라 이익을 위해 전쟁터에 개입을 하느냐. 가지 말아야 해요.”

그는 과거를 떠올리는 게 괴로운 듯 인터뷰 내내 힘겹게 말했다. 그런데도 반전 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려 주었다. 그는 몸이 괜찮다면 반전 집회에도 계속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하던 그는 힘겹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에 간 지 39년, 근 40년이 다 됐지만 지금도 그것이 안 잊혀져요. 그래서 전쟁은 없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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