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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호황, 그리고 기후변화

유럽연합에서 버락 오바마까지, ‘녹색 의제’를 중요시하겠다는 약속들이 사방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불황을 이용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에 한 형편없는 TV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대기에 온실가스가 조금씩 축적된 결과로 기후가 어느 순간 파괴적으로 돌변하면서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경제 위기처럼 사람들을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

이 프로그램은 카오스와 복잡계 이론 덕분에 최근에 와서야 시장 경제가 왜 갑자기 위기에 빠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부정확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는 미적분에 대한 기초적 이해 정도밖에는 수학 지식이 없었지만, 이미 1840년대에 그 이유를 제시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경제 저작에서 자본가들의 미친 듯한 자본 축적 경쟁 ― 이를 “자본의 자기 확장”이라 불렀다 ― 이 위기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단지 자본주의가 불황에 빠진다는 이유만으로 그 체제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자본론》은 인류가 생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 즉, 인간과 나머지 자연과의 신진대사 과정을 자본주의가 위협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형태의 농업이 토지 산출력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분석하면서 그런 통찰을 얻었다. 마르크스는 충분히 발전한 자본주의가 아직 세계의 일부 지역에만 존재하고, 생태계 파괴가 불황이나 전쟁보다 덜 알려져 있을 때 이 같은 통찰을 제시했다. 마르크스가 죽은 뒤 거의 1백 년 이상 이 통찰은 잊혀졌다.

마르크스의 통찰

오늘날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지배하며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는 전 세계로 보편화했다. 그중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주요 나라 정부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정한다. 그들은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기후 보호 방법을 경제 위기로 타격을 입은 자본가들을 위한 구제책으로 장려하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의 한 형태인 불황이 자본주의의 다른 위기 형태인 환경 파괴를 치유할 기회가 될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오바마는 취임 선서에서 ‘녹색 의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막상 의회와 합의를 본 경기 부양책에서 물과 에너지 정책은 전체 지출 중 겨우 7퍼센트밖에 안 되는 등, ‘녹색 의제’는 비중이 매우 작다.

2007년에 유럽연합은 온실가스 배출량 20퍼센트 감축을 약속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요청 때문에 최하 4퍼센트 삭감으로 목표를 현실화했다.

또, 다국적 자동차 기업들은 온갖 지원을 받고 있다. 목적은? 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자동차 생산량을 최대한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데, 석유와 디젤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바이오연료조차 기후에는 똑같이 해롭기 때문이다.

기존 생산·소비 형태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서는 기후 변화의 위협에 대처할 수 없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자본가들의 이윤 경쟁이 환경 재앙을 낳아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는 산업을 되살리기보다, 이 산업들의 기술들을 이용해 출퇴근이나 여행을 할 때 최소한의 온실가스만 배출하는 교통 체계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비슷한 사례로, 모든 건물들에 무료로 단열 공사를 해 주는 긴급 프로그램을 도입해 주택·사무실·공장 난방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것은 실직한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추가로 수십만 명에게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효과도 낼 것이다.

그러나 많은 환경 운동 활동가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를 위해 보통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낮출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한 투자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주요 부문들은 그런 투자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세계시장의 경쟁을 의식해 낡은 공장과 기술에서 이윤을 최대한 뽑아내려 할 것이다. 그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알 바 없다. 심지어 신노동당의 기후변화 자문을 맡고 있는 스턴 경조차 불황 때문에 투자자들이 “비용 상승에 매우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지멘스, 클리퍼 윈드파워, BP 같은 이른바 ‘녹색 기업’들도 대안 에너지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 얼마나 맹목적으로 경쟁하는지 묘사했다. “주식 투기가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언젠가 그 투기가 꺼질 것을 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 타격을 입길 바란다. ‘Après moi le deluge!’[내가 빠져 나간 다음 홍수여 와라!]는 모든 자본가와 자본증식 과정의 좌우명이다.”

이런 경제 법칙은 환경에도 적용된다. 정부와 개별 자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할 결과를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경쟁력을 희생하면서까지 필요한 조처를 취하지는 않는다. 방글라데시, 나일강 유역, 그리고 나중에는 런던에서 홍수가 발생하더라도 말이다.

불황기에 녹색 투자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연료비가 치솟는 시기에 대규모 단열 프로그램의 도입이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건설 노동자들도 똑같이 고통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보다 단열 공사와 대안 에너지 프로그램의 도입을 요구할 때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런 대안들을 실현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만이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다.

번역 김용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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