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예수전》:
예수 얘기를 통해 본 어느 좌파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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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을 쓰는 것이 가능한가? 믿음이 깊은 그리스도교인은 무슨 소리냐 싶은 물음이겠다. ‘복음서’라고 부르는 신약성서의 맨 앞 네 권
하지만 현대의 불신앙자가 도대체 숫처녀가 임신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치병을 고치고, 물 위를 걷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문서를 어떻게 믿느냐는 물음을 던지면 대뜸 그리스도교인은 크게 둘로 나뉠 것이다. 복음서를 거의 다 믿을 수 있다고 보는 보수파와 초자연적 기적 얘기를 제외한 나머지를 믿을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로 말이다.
물론 보수파도 예수의 처녀 탄생과 부활과 재림까지 사실로 믿는 근본주의자와 그 정도까지는 아닌 온건 보수주의자로 나뉜다.
한편, 매우 자유주의적인 그리스도교인은 예수가 윤리적 행동의 본보기였다는 점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요컨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얼마나 믿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거의 1백 퍼센트 믿는 근본주의자부터 이들이 증오하는 유명한 미국 신약성서학 학술단체인 예수세미나처럼 예수가 한 것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언행 가운데 겨우 18~20퍼센트만을 믿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들까지 실로 그리스도교인의 분포는 다양하다.
사실, 죽은 사람의 부활까지 믿는다면 그밖에 못 믿을 게 없다. 그러므로 초자연적 기적 얘기는 별문제로 하고 나머지 얘기들만이라도 역사상의 사실인지를 토론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리라. 문제는 네 복음서의 이 부분조차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신심과 영성을 고무하는 경건 문학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복음서의 진술이 모순투성이라는 점이다. 가령 마태오의 얘기
예수는 비폭력 무저항을 가르치는가 하면
선행을 드러내라고 예수가 가르치는가 하면
역사상 많은 이단 시비와 때로 학살마저 일으킨 삼위일체 논쟁과 관계 있는 것으로, 예수는 자신이 신과 같다고 하는가 하면
예수는 유대교 율법이 자신의 가르침으로 대체됐다고 하는가 하면
복음서
혁명 전야, 성서에 의심을 품다
근대에 들어와 복음서 기록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이 자라나, 실제의 예수
라이마루스가 이런 급진적인 가설을 세운 때는 프랑스 대혁명 전야이자 계몽주의의 절정기였다. 이후로도 혁명을 앞두고 ‘불온한’ 기운이 서구 사회 전반을 감돌 때마다 성서에 대한 의심이 퍼져갔다.
1848~49년 유럽 혁명 전야인 1840년대 초에 당시 마르크스와 청년 헤겔파
복음서 등 신약성서 문헌의 신뢰성에 대한 회의론은 20세기 초반에 또다시 정점에 도달했다. 이 시기는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 제1차세계대전,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1918~20년 중·서부 유럽 혁명, 1930년대 대불황과 스페인 혁명, 프랑스 공장 점거 운동 등의 격변으로 점철된 질풍노도의 시기다.
1906년,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든 《예수의 생애 연구사》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세기의 수많은 예수전이 어째서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낱낱이 들춰내면서, 복음서가 전기나 전기적 자료가 될 수 없음을 입증했다. 그는 아프리카 정글에서 의술 활동을 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밀림의 성자’로 우리에게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라이마루스와 브루노 바우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위대한 신약성서 학자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이자 탁월한 신학자인 알프레드 루아지는 역사의 예수가 신앙의 대상 예수와 어렴풋하게 연관돼 있기는 하지만, 복음서의 희뿌연 연기를 뚫고 실제 예수의 광휘를 분명하게 볼 수 없다고 주장해 1908년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당했다.
독일 혁명의 여파 속에서 출판된 《예수》
슈바이처와 불트만보다 더 나아간 철저한 회의론자들도 있었다. 역사적 예수 탐구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슈바이처는 예수가 유대교 묵시록의 전통에 따라 세말을 예언했다고 상술했고, 불트만도 예수에 대한 책을 썼던 것이다. 철저 회의론자들인 독일의 알베르트 칼토프와 아르투어 드레프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이런 주장에 동의했다. 칼 카우츠키는 《그리스도교의 기원》
반자본주의 정서와 예수 상(像)
불트만 이후 1990년대까지 그보다 더 회의적인 신약성서 문헌 분석가는 주류 신약성서 학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1968년 운동의 시대에 등장한 각종 해방신학
그러나 21세기 들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과 급진적 비판이 확산되면서 복음서와 나머지 신약성서 문서에 대한 회의론도 다시 고개를 들어, 역사적 예수 탐구와 예수전 집필 시도는 다시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날 가장 자유주의적인 경향의 역사적 예수 탐구자들은 예수세미나 회원들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철저 회의론자들
결국 오늘날에도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해 예수전을 써 보려는 사람들은 슈바이처가 예리하게 지적한 문제점에 직면하고야 만다. 즉, 예수전을 쓴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예수에게 투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초상을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가치관과 신앙관을 그림의 대상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는 예수를 낭만가로, 비폭력 평화주의자는 예수를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사회 개혁주의자는 예수를 사회 개혁가로, 사회주의자나 혁명가는 예수를 사회주의자나 혁명가로 채색했다. 이렇게 말한 슈바이처 자신은 예수를 묵시록적 유대교 전통에 따라 세말을 경고한 예언자로 보고 아프리카로 의료봉사 활동을 하러 떠났다. 최근 인기를 끄는 일부 ‘예수세미나’ 회원들은 예수를 동시대 견유철학파의 현인으로 본다.
견유철학파는 재산·권력·명예·건강에 대한 욕망을 거부하고 자연과 부합하는 반
특히, 가톨릭 사제 출신인 크로산은 예수가 국가 권력에는 도전하지 않은 채 사회의 근본적 변혁에 헌신했다는 주장을 해, 2000년대 반자본주의 운동 내 자율주의적 크리스천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결론을 맺자면, 김규항의 예수전은 예수라는 거울에 반사된 좌파 칼럼니스트 김규항의 상
추천 도서
▶ 바트 어만, 《성경 왜곡의 역사》, 청림, 2006년. 교회가 예수를 그릇 인용했다는 주장.
▶ 존 쉘비 스퐁,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년. 역사적 예수의 관점. 진보적인 입장.
▶ 얼 도허티, 《예수 퍼즐》, 씽크뱅크, 2007년. 신화적 예수의 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