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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주의의 최전선 파키스탄의 새로운 재앙

최근에 미군과 파키스탄 군대가 스와트(Swat) 지역에서 벌인 군사 공격으로 파키스탄의 정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 제프 브라운이 현 상황을 살펴보고 카라치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아심 잔한테서 군사 공격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키스탄의 좌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들어 봤다.

[2009년] 5월 초순부터 버락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 전선은 인구가 1백50만 명이고 산악 지대인 파키스탄 스와트 지역으로 확대됐다.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자동차로 몇 시간 걸리지 않는 스와트는 이른바 ‘파키스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계곡 지대인데, 치안이 불안해지자 2년 전 이 지역의 모든 스키 리조트가 문을 닫았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이지만, 부패한 지주들의 지배 때문에 주민들의 삶은 팍팍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찾아 국내외 대도시로 이주했다.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은 지난 25년간 이곳에서 천천히 입지를 굳혀 갔다. 최근에 〈뉴욕 타임스〉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로빈 후드를 자처하면서 대지주들을 겁줘 대지주 일부는 도망쳤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 급진 이슬람주의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마울라나 파즐루라다. 그는 오토바이와 트럭에 송신기를 장착한 FM 라디오 지역 방송국을 차렸다. 파즐루라와 그의 동료들은 수십 개의 마을에 공식 법정에 대항하는 샤리아 법정을 세웠다. 그들은 딸을 학교에 보내거나 서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미국의 파키스탄 전쟁의 목표물은 알 카에다다. 미국은 주로 무인 폭격기를 이용해 알카에다를 공격했다. 십여 차례에 걸친 폭격으로 알 카에다 지도자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7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 페트레이어스의 전(前)참모 데이비드 킬컬런은 “적중률 2퍼센트에 부수 피해 98퍼센트는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폭격이 자아낸 분노는 파즐루라와 그 지지자들에 대한 지지를 늘렸을 뿐 아니라, 파키스탄 군대의 전투력에도 영향을 끼쳤다.

많은 병사는 파즐루라와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병사들은 그들을 동료 파키스탄인이자 무슬림으로 여긴다.

1980 년대 이들의 부모 세대 때 무자헤딘(저항군)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웠고, 미국은 파키스탄이 무자헤딘을 훈련시키고 지원하도록 돈을 대 줬다. 파키스탄에 해마다 10억 달러씩 군사원조를 제공하더라도 미국이 파키스탄군에게 저항세력 공격을 명령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군사 공격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인 지난 4월에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파키스탄인들이 이슬람 무장 조직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그런데도]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과 근본주의자들에게 타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파키스탄군이 저항세력 섬멸에 나서는 것이 미국의 소망임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제프 브라운: 최근에 벌어진 공격의 배경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심 잔: 스와트 지역에 대한 첫 번째 군사 공격은 2007년 11월 무샤라프 정권 아래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공격으로 90만 명이 난민이 됐지만 “국가의 권위를 세우겠다”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군사 공격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을 분쇄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군사 공격은 2008년 7월에 시작됐는데, 이때는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바자우르와 키베르도 공격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스와트에서만 65만 명, 바자우르에서 45만 명의 난민이 생겨났지만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 군사 공격은 2009년 4월 26일, 공식적 “군사 행동 중지” 기간이 종료된 후에 북서변경주 정부가 지금은 무장해제한 옛 무장 단체 ‘이슬람율법실행운동’과 권력 분할 협정을 맺었던 지역에서 시작됐습니다. 마드라사[이슬람 교육기관] 소유주들이 ‘이슬람율법실행운동’을 이끌었고, 이 단체는 1984년부터 이슬람 율법 실행을 주장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이맘들이 스와트 지역의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판사가 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습니다.

이슬람율법실행운동 같은 전투적 단체들을 분쇄해 지역 칸[부족장이나 지주]의 지배를 복원하려는 [파키스탄] 국가의 계획은 또 한 번 실패했습니다. 옛 지배계급인 칸과 다른 유지들의 경제력은 사라지고 있는데,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농업과 지역 교역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새로 이 지역에 유입된 신흥 중간계급은 땅을 매입·개발하는 데 열성일 뿐더러, 취약한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정부의 공백을 메우고 있습니다.

끔찍한 전쟁에 이어 불안정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평화협정에는 빈민 계급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율법실행운동은 옛 질서에 도전했다가도 결국 옛 질서와 타협하는데, 이 운동이 사회의 근본 모순인 계급 모순을 해결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이슬람주의 저항세력은 칸을 비판해서 하층민들의 호응을 얻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칸의 지배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또 다른 억압적 질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교착 상태 때문에 평화협정이 체결됐습니다. 파키스탄군의 사상자 숫자가 크게 늘고 지역에서 저항이 커지고 군사 작전 중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거듭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아와미국민당이 평화를 약속하며 북서변경주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아와미국민당이 대중의 압력을 받아 평화협정을 중재했습니다.

미군과 파키스탄 군의 스와트 공격으로 난민이 된 아이들

그런데, 4월 말 갑자기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이 공격으로 2백50만 명이 난민이 됐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카라치의 노동계급 거주지 란디로 매일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골목마다 난민을 위한 구호 시설이 세워졌고, 심지어는 군대의 공격을 지지하는 정당들도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군대는 왜 지금 공격을 감행했을까요?

최근에 벌어진 스와트 공격은 북서변경주의 다른 지역과 접경지대의 부족자치구역에 대한 파키스탄 국가의 계속된 침략 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은 9·11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전선 국가’ 구실을 하려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처음에는 와지리스탄을, 그 다음에는 쿠람과 바자르를 침공했는데, 2004년 전에 파키스탄군은 이들 지역에서 한 번도 군사 작전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1969년에 스와트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편입될 때도 군대가 주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이번 군사 작전은 파키스탄의 대통령 자르다리의 미국 방문과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의 압력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토착 지배자들의 독자적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압력에 반응하고 있기도 합니다.

탈레반은 어떻게 어느 정도의 대중적 지지를 얻게 됐습니까?

파키스탄의 사법 체계는 뿌리부터 썩었고 오직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합니다. 파키스탄에 편입되기 전 군주정 국가였을 때 스와트 지역은 훨씬 더 효율적인 사법 체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에 편입된 지 30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옛 체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의 주요 현안인 토지 소유권 분쟁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그런 요구가 더 강해집니다.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반응이 있습니까?

스와트에서 권력을 잡고 나서 탈레반은 반(反) 탈레반 또는 정부 쪽 사람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면서 부유한 지주들도 공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권위주의적 버전의 이슬람에 반대합니다. 당연히 자유주의 엘리트들도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언론의 99퍼센트는 [파키스탄] 정부를 지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탈레반 수백 명을 사살했다는 따위의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독립적 보도는 없습니다. 언론은 현재 벌어지는 극악무도한 전쟁 행위를 보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키스탄군의] 군사 작전을 지지하면서 ‘국가 속의 국가’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군사 작전의] 잔혹함을 인식하면서도 저희에게 이렇게 반문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다른 해결책이 있소?”

좌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좌파는 매우 취약합니다. 저희는 활동하면서 종교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 이 전쟁에 반대해 저항할 의지가 가장 강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와 자유주의자 들은 대단히 혼란스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탈레반을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아 갈 야만인으로 볼 뿐입니다.

둘째, 파키스탄에서 좌파는 대부분 노동 대중이 아니라 중간계급 지식인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번 위기로 지식인들은 얇은 진보적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자신의 진정한 색깔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이제 파키스탄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며 “우리는 파키스탄을 지켜야 한다”하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슬람화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저지할 저항을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종교적 성향을 가졌으나 자맛 에 이슬라미(Jamaat e Islami)나 자미아트 에 울라마(Jamiat e Ulama)처럼 지도자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려고 국가와 타협하고 저항세력을 공격하는 주류 종교 정당에 신물 나기 시작한 사람들과 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과 함께 투쟁할 수 있다면, 종교적 성향이 있는 이들도 나중에는 사회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향후 전망은 어떻습니까?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작전이 단기전이며 외과 수술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대중은 스와트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도심에서 반전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파슈툰족이 대거 거주하는 란디 지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의 전략이 장기적이며 전쟁이 수년 간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 사람들을 계속 먹여 살릴 수 있을까’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란디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여 이 재난의 원인인 전쟁을 멈추라는 압력을 넣으려 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다른 이들은 굶주리는 사람들[난민]을 돕고자 모금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스와트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벌어질 게릴라 전쟁이며 북서 변경주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재난의 규모는 계속 커질 것입니다. 주요 대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 전쟁은 끝나지 않고 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습니다.

번역 차승일

출처 영국의 사회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