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6월 28일 뉴욕에서 벌어진 스톤월 항쟁은 오늘날 미국과 전 세계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공공연한 탄압에 시달렸다. 동성애는 비정상이나 정신병으로 취급받고 대부분 지역에서 불법이었다.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져 ‘전기충격’ 등 잔인한 치료를 받았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거나 의심받은 교사나 공무원은 쫓겨났고, 풍기문란 혐의 등으로 체포된 동성애자들의 명단이 신문에 실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수치심 속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게이바,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술집은 그들이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나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동성애자들에게 음식 팔기를 거부했고, 이를 이용해 대부분 마피아였던 게이바 주인들은 폭리를 취했다. 마피아들은 경찰들과 유착돼 있었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상납을 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불시 단속을 벌여 손님들을 잡아가곤 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에도 경찰이 ‘스톤월 인’이라는 술집에 쳐들어와 손님들과 종업원들을 체포했다. ‘스톤월 인’은 주로 가난한 유색인종 동성애자들, 집에서 쫓겨난 젊은 동성애자들과 드랙퀸들[여장 남자] 같은 밑바닥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여느 때와 달랐다. 체포 과정에서 한 레즈비언이 격렬히 저항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거리의 동성애자들과 드랙퀸들은 경찰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동전과 술병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경찰의 괴롭힘과 천대에 시달리던 동성애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급기야 시위 진압 부대가 출동했다. 그러나 저항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흘 밤 동안 소요가 계속됐다.

스톤월 항쟁은 저항과 반란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벌어졌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공민권 운동, 반전 운동, 여성 운동 등이 성장했다. 흑인들은 여러 도시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불의와 천대에 저항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공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 여성 운동에 참여하거나 그런 운동들을 지켜보며 동성애자들도 스스로 일어나 차별적인 사회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동성애자 운동은 흑인 운동의 구호를 따라서 “게이는 좋은 것이다”, “게이 파워” 등의 구호를 쓰기 시작했다. 조금씩 전진하던 동성애자 운동이 사회 전반의 반란 분위기와 결합돼 분출한 것이 스톤월 항쟁이었다.

스톤월 항쟁은 동성애자들의 집단적 커밍아웃이었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차별받으며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보여 준 것이다. 또 스톤월 항쟁은 단발적인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전투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새로운 운동으로 연결됐다. 새로운 활동가들은 기성 사회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길 원했고, 성 해방을 외쳤다. 스톤월 항쟁 직후 만들어진 ‘동성애자해방전선’은 이름부터가 ‘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대한 오마주[경의 표하기]였다. 스톤월 항쟁 이후 생겨난 동성애자 단체들은 스스로를 급진적 사회운동의 일부로 여겼다.

‘게이 파워’

한편 새로운 동성애자 운동은 가족이나 친구 사회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커밍아웃’을 중요한 의제로 삼았다. 동성애자들은 커밍아웃을 통해 벽장 속에서는 가질 수 없는 자긍심과 존엄성을 되찾았다. 스톤월 항쟁 이듬해인 1970년부터 시작된 기념 행진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의 모태가 됐다. 지난 6월 13일 서울에서도 2천 여 명이 도심을 무지개로 물들이며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고 자긍심을 드러내는 행진을 벌였다.

6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
6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
6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

오늘날 동성애자 운동의 성과로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가 삭제됐고, 여러 국가에서 차별 금지가 법적으로 명문화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고, 동성 부부도 아이를 입양하거나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존재한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유명인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차별과 편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성애 부부 중심의 핵가족에게 재생산을 떠맡기고 이를 위해 가족을 이상화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결코 동성애혐오와 차별을 뿌리 뽑을 수 없다. 한때 가장 선진적인 동성애자 운동이 존재한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뒤 동성애자들이 학살당한 역사는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스톤월 항쟁 뒤 1970년대에 전진하던 미국 동성애자 운동도 로널드 레이건 당선과 함께 시작된 우파의 공세에 맞닥뜨렸다.

한국에서도 동성애자들의 존재가 많이 가시화됐지만 직장·학교·군대 등 사회 모든 곳에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자들은 동성애자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거나,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동성애를 확산시키고 가족을 무너트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군형법에는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존재한다.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학교에서 아웃팅으로 인한 괴롭힘에 시달린다.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나서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는 성 정체성이 알려질까 두려워 항의하지 못한다.

여전히 80여 개 국가에서는 동성애가 법적 처벌을 받는 범죄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동성애자 인권이 보장된다는 국가들에서도 동성애혐오로 인한 괴롭힘과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스톤월의 정신은 ‘가장 천대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동성애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이며 그 세상을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자해방전선의 한 선언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특수한 투쟁은 성적 자기결정권, 성역할 고정관념의 철폐, 그리고 자신의 몸을 국가라는 법적·사회적 기구로부터 간섭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위한 것이다.”

동성애자 차별에 맞서는 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다. 이것이 LGBT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스톤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