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1일에 민주노동당 2009 정책당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퇴진 운동”을 선언했다. 선언문 초안의 기조는 이명박 “심판”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당대회를 압도했다. 그래서 최종 선언문은 “이명박 독재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물론 일부 대의원들은 선출된 정부의 임기 중 사퇴 요구에 부담을 느꼈다. 민경우 〈통일뉴스〉 전문기자(이하 존칭 생략)가 당대회 직후에 쓴 글(‘이명박 정부 퇴진론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이 정확히 그런 부담감을 보여 준다.(막상 당대회에서는 공개적으로 이명박 퇴진 요구를 반대한 대의원은 없었다.)

민경우는 이명박 퇴진이 실제 가능하려면 “하나는 대통령 탄핵을 통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전민항쟁”인데, 둘 다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전자는 한나라당이 국회 다수파이기 때문이고, 후자는 “헌정 질서에 대한 존중감이 상당 부분 안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헌정 질서를 뛰어 넘는 전민항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통일뉴스〉 2009년 6월 27일치)

따라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중운동은 불필요한 과격한 구호를 자제”하고 “지금은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이해를 걸고 실질적인 성과물을 얻어야(그런 면에서 카드수수료 인하, 학자금대출이자지원조례 등은 좋은 사례이다)” 한다는 것이다. 

2009년 6월 21일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이명박 퇴진 운동 선언은 더 넓은 범위에서 끓어오르는 이명박 반대 정서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이미 천주교 사제단들과 목회자들이 사실상 이명박 퇴진을 요구했다.

이때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언적 천명”을 일단 해야 한다. 모름지기 정치적 입장 천명이 운동 건설의 출발점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이명박 사과”는 대중 정서에 한참 뒤처지는 것이고, “이명박 심판”은 결국 1년 뒤 선거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며, “이명박 불신임”은 운동의 요구가 되기에는 너무 모호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무엇보다, 운동이 카드수수료나 학자금대출이자 같은 즉각적·부분적 문제에 머문다면 다양한 이유로 형성되고 있는 대중의 반이명박 정서를 정치적으로 수렴시키지 못할 것이다.

많은 대의원들이 제도적 틀(“합법주의”)에 갇히지 말고 “민심”을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래서 옳다.

민주당과 선거연합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 이명박 정권 퇴진을 위해 어떤 전략을 채택할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민주노동당은 계급 협조주의 전략을 확정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지역의 실정과 조건에 맞게 올바른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선택적 반한나라당 정책연합·선거연합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지 않는다’는 지난 2월 중앙위원회의 결정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민주당과 사안별 공조를 넘어 전략적 연합으로 향할 여지를 열어 놓은 것이다. 일부 대의원들은 연립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2012년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도 “진보적 정권교체”라고 주장하는 대의원도 있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세력의 대연합도 추진하기로 했다. 진보대연합은 이명박에 맞서 진보 진영의 결집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한국진보연대 강화를 동시에 결정했다. “한국진보연대의 시군구 조직 건설에 당의 지역위원회가 견인차 구실”을 하고, “현재의 한국진보연대가 전체 민중진영의 투쟁 조직들을 다 포괄하고 있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역할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한국진보연대 강화와 진보대연합이 병행될 수 있겠지만, 구체적 현실에서는 두 과제 사이에 모순과 긴장이 존재한다. 진보연대 강화의 핵심은 민주노총의 진보연대 가입과 서울에서 진보연대 건설이라 할 수 있다. 진보연대가 자주파의 정치적 재결집체로 돼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는 진보진영 내에서 자주파의 패권 행사로 이해될 소지가 크다. 그리 되면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제안은 그 진정성을 크게 의심받게 될 것이다(올해 초 민주노총 내 자주파가 추진한 민주노총의 한국진보연대 가입은 민주노총 내에서 정치적 충돌과 분열을 격화시켰고 그 결과 커다란 정치적 앙금을 남겼다). 그래서 일부 자민통 활동가들조차 진보연대 강화가 진보대연합 건설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반대했던 것이다.

이런 구체적 맥락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세력연합 실현 노력 다짐이 다소간 의례적이고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민경우도 현 지도부가 이명박 퇴진을 위해서는 범국민적 단결이 필요한데, 오히려 “선명성을 과시하는 노선과 행동”을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진보대연합의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한 데다, 무엇보다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추진하면 그 구도에 진보신당 등 다른 개혁주의 경향의 진보 세력들도 빨려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국진보연대 강화는 이른바 민주대연합에서 자주파의 헤게모니 확보를 위한 전제 조건인 셈이다. 이런 구상에서는 진보대연합에 대해 종파적 입장을 취하기 쉽다. 결국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계급 간 협력을 위해 계급 내 단결을 희생시킬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이 구상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전략이다. 내가 〈레프트21〉 7호에서 지적했듯이, “진보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계급 협력주의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기치”로 설정하기 위해 반자본주의·사회주의 “기치”를 사실상 폐기했다.

“진보적 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주적 민주정부가 민주노동당의 당면 목표가 된 것이다. 특별히 반자본주의적인 투쟁과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은 부차적 요소가 돼 버렸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통과한 “8대 민생정책”이 현재 경제 위기의 규모와 강도에 비춰 봤을 때 온건하거나 불충분한 것도 이와 관련 있는 듯하다. 부분적으로 “국회에서 입법 가능한 것을 선택”한 이정희 정책위의장의 온건 노선도 반영된 것 같다.

그 결과 지난 2월 중앙위원회 때 사업 과제에 포함돼 있던 은행 국유화가 빠졌고(서민은행 설립으로 대체됐다), 부도기업에 대한 국유화 조처는 여전히 의제에 오르지도 못했으며(쌍용차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에 반대해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생태 정책에서는 기후 변화 대응은 “엄두도 못낸 채” “빗물로 마을 살리기”가 채택됐다.

물론 지난 10년에 비해 민주주의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부상한 것은 맞다. 그리고 운동은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탄압을 저지하고 정치적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 그 점에서 민주주의 문제는 운동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그렇다고 이명박을 반대하는 운동이 좀더 민주적인 자본주의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민주 변혁 전략을 채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 혁명은 객관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의회 공화국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조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봉건적 계급이 여전히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국가를 형성하며 노동계급이 너무 취약해 권력을 잡을 수 없어 부르주아지가 구질서의 주요 반대파로 돼 있는 조건 말이다. 고전적 부르주아 혁명 ― 17세기 영국, 18세기 미국과 프랑스 ― 이 이런 조건에서 일어났다. 이 혁명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치적 상부구조의 민주적 변형이 아니라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경제적·사회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 구조는 농민이 다수였지만 노동자가 주도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1917년 러시아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발전했다. 한국은 대규모 노동계급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나라다. 한국에 봉건 지주 계급은 없다. 즉, 한국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당은 (불충분하긴 하지만)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이지만 그들이 대면하고 있는 것은 (반)봉건 국가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배경의 계급이 운영하는 자본주의 국가와 대면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갈등은 계급 분할이 아니라 정치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두 세력이 왕왕 쉽게 타협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적 민주주의” 전략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분파와 협력을 위해 반자본주의 전략을 의도적으로 기각한다.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적 소유와 집단적 소유가 병존하는 등 생산수단 소유의 다양한 형태를 지향한다.”

그러나 모든 진보 운동이 이명박 정부를 주적으로 삼고 있고, 바로 이 정부가 자본가의 이윤과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요구와 반자본주의 요구의 결합이 정말 불가능할까? 민주노동당은 그렇다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내 반자본주의자들은 장차 운동을 혼란에 빠트릴 위험성이 있는 결정들 ― “진보적 민주주의” 채택, 민주당과 선거연합, 한국진보연대 강화 등 ― 에 대해 반대 주장을 굽힘 없이 적극 개진했다.

그런데도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당의 방침이 “전 당적 토론과 합의로 결정”됐다고 평가했다(‘‘단결과 전진’의 한마당으로 어우러진 제1회 정책 당 대회’). 소수파의 이견을 간단히 무시하는 평가다. 수정안이 8개나 제출됐고, 6백26명의 대의원 중 1백59명이 지도부의 원안에 반대했다(4백67명이 찬성했다). 반대 이유들은 상이했지만 말이다.

차라리 정성희 민주노동당 2010위원회 상임위원의 평가가 솔직하다. 그는 “당 내부의 통일단결과 진보정치대연합에 장애가 될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온 당의 이념과 가치를 ‘당의 기치’로 제목을 바꾸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로 바꿔치기하는 일부 정파의 기만적 수정동의와 합종연횡으로 민주노동당 스스로 ‘NL당’ ‘자주당’이 돼 버린 것입니다.”(‘자주민주주의와 제1차 정책당대회’)

요컨대,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함으로써 급진적 면모를 과시하는 한편, 장차 심각한 정치적 혼란과 시련을 겪을 정치적 선택 ― 민주 변혁 전략 ― 도 동시에 내렸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동시에, 그 운동의 성공을 위해 전략 논쟁도 아울러 수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