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택 칼럼:
나는 고백한다 ― 김은희 작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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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빙 당일 새벽, 혹시나 해서 가봤더니 원고를 거의 못 쓴 채 울고 있더래요 … ” 최근 방송가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하여, 나는 참으로 아둔하게도 이제야 온전히 분노한다. 진정 악의를 가진 쪽은 검찰과 조중동 바로 당신들이 아니던가? 독사의 새끼들처럼 혓바닥을 날름대며 피에 주려 인격 살인을 자행한 파시스트 잔당 그대들이 아니던가? 이것이 당신들이 입만 열면 떠벌리는 자유민주주의의 맨 얼굴인가? 진정 민주주의를 말하려거든 생각해 보라. 정녕 감시받아야 할 대상은 한 개인이나 저널리스트의 사생활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검찰과 국세청 등 소위 공권력, 온갖 탈법을 일삼으며 자기 신문의 발행 부수조차 공개 않는 언론 권력, 그리고 그들과 패거리를 짓는 정상모리배들의 행태에 대한 공적 정보다. 그 실상이 알려진다면 얼마나 악취가 진동할 것인가? 그럼에도 당신들은 어둠 속에 숨어 낄낄대며 시민들을 감시하는 간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꾸로 뒤집힌 시대를 배경으로.
그녀는 말했다. “개인 김은희는 짓밟히더라도 작가 김은희가 열정을 다해 만들었던 프로그램의 정당성까지 함부로 짓밟히고 공격받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20여 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나는 이 대목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처절한 심경의 일단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저널리스트들은 진실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방송이 나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며칠씩 날밤을 새운다. 누가 뭐래도 진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저널리스트의 명예요 최후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 심정을 알기에,
작가 김은희는 우리 시대의 ‘유대인’이다. 교활한 ‘떡볶이 놀음’과 공안 통치의 부활이라는 음험한 이중주 속에서, 그녀를 가두고 있는 원형 정보 감옥은 벌써 YTN 노조원들을 또다른 죄수로 맞아들였다. 바야흐로 허다한 시민사회의 성원들이 ‘빨갱이’의 낙인 하에 고립되어 그 감옥의 수인이 될 것이다. 하여, 그녀가 당한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이 시대 지식인의 죄악이다. 신종 파시즘의 도래를 방관하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