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기간제법은 탄생부터 악법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적극 찬성한 비정규직‘보호’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것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적 노동?사회 단체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는 첫 해 이랜드와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와 장기 파업이 시작됐고, KTX 노동자들의 투쟁도 끝 모르게 길어졌다. ‘비정규직 사용 기한 2년 제한’이라는 법은 2년 안에 해고되는 사례들을 대폭 늘려 놓았다.

그래서 지금 비정규직법 논쟁 구도는 혼란스럽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는 2년 전 법사위원장으로서 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바 있다. 지금 안상수는 국회 환노위원장인 추미애와 공개 설전을 하며 법안 유예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명분은 현 기간제법이 비정규직 사용 2년 후 해고를 부추기는 법이라는 것이다. “1백만 해고설”도 여기에서 비롯했다.

답은 간단하다. 현 기간제법이 해고를 부추기는 법이라면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는 법으로 개정하면 된다.

진작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진보 진영은 상시업무에 대한 ‘직접고용에 의한 정규직 사용 의무화’를 주장해 왔다. 이른바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런 방식의 법 개정은 한사코 반대한다. 한나라당의 해고 대란 걱정이 ‘악어의 눈물’인 이유다.

실제로 7월 1일 이후 주요 계약해지 사태는 주로 공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토지공사가 지난달 30일 자로 계약기간 2년이 도래하는 비정규직 1백45명을 계약해지했고, 대한주택공사와 한국도로공사도 각각 31명과 22명을 해고했다. 심지어 국회 사무처도 19명을 해고했다.

한국노총은 5일 “산하 25개 산별노조를 통해 조사한 결과, 73개 공공기관이 지난달 30일 자로 계약기간 2년이 된 비정규직 3백79명 가운데 2백17명을 계약해지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유예론은 한마디로 정치적 부담감 없이 해고하고 싶다는 뜻인 셈이다.

사기극

그렇다고 현행 계약해지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현행 기간제법의 2년 조항은 강제 조항도 아니고 정규직 전환을 명시한 조항도 아니다.

한마디로 현행 기간제법 역시 비정규직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법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판은 옳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지난 3일 고용보험 통계를 통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과 2008년에 고용보험 가입자 중 비정규직 해고가 늘어났다. 현행 기간제법이 고용 감소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7월 4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발언한 보훈병원 노동자는 2년 조항에 걸려 합법적으로 6월 30일 계약 종료로 해고된 것이다. 한마디로 옛 열우당이 ‘나쁘게’ 만든 법을 이명박 정부가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예도 고수도 아닌 “사유제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전면적 법 개정이 대안인 이유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법을 개정하자느니, 시행을 유예하자느니 하면서 현행 법을 기피하는 것은 이 법의 해석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거대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에 직면한 기업주들은 손톱만큼의 양보조차 다시 거둬들이고 싶어한다.

이 2년 조항을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 전환 조항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생겨난 것은 오로지 이 법 시행에 맞춰 시작된 대량해고에 맞서 이랜드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결사적인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랜드 조합원 수천여 명은 매장 점거 등을 불사했고,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1년 넘게 거리를 떠돌며 투쟁해야 했다. 이런 저항들은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경총은 “비정규직들에게 법 개정안이 잘못 알려져 다시 의무적으로 연장해야 하는 줄 인식할까 우려된다”(3.12 성명)고 걱정한 것이다.

착시 현상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의 보고서를 인용해 현행 기간제법이 정규직 전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김유선 소장의 보고서는 무기계약직을 모두 정규직 범주로 포함시켰다. 이는 무기계약직의 계약 조건이 천차만별임을 감안할 때 엄밀하지 못한 출발이다.

민주노총이 2월에 같은 주제로 발간한 정책보고서를 보면,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정규직 전환도 늘었지만 해고도 늘었다. 결정적으로 용역 전환 규모가 커졌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이라는 조건 자체가 기업 경영 상태와 경기 변동에 따라 늘 대량해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일부 기업에서 장기 고용 보장이 이뤄진 것은 이랜드 투쟁의 여파로 대형 유통업체들이 모두 수천 명씩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노조들이 대표 협상을 통해 은행 등 대기업 들에서 무기계약 전환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들의 다수는 숙련된 장기 근속자들이었다.

한마디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나타난 정규직 전환 효과는 첫째는 투쟁 덕분이었고, 둘째는 착시 현상이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대표는 “최초 2년 기한에는 5년 10년 짜리 장기 근속 비정규직이 존재한다. 이들의 숙련도를 감안해 대기업들이 무기계약 전환을 일부 시행했다. 최초 전환 이후엔 이런 장기 근속자가 없다. 이제 지속적 교체 사용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다.”고 지적한다.

분석의 오류는 둘째 치고, 스스로 폐기해야 할 법이라 규정했던 악법을 옹호하는 모순에 빠진 민주노총과 진보 진영의 처지는 “묻지마 반(反)MB 동맹”의 잠재적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은 비정규직 쟁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쟁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이 쟁점을 다루는 TV 시사토론 프로그램도, 일간지들도 진보진영의 견해를 독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유예 반대” 총파업 지침을 유지하되, “사유제한 도입”과 “파견제 폐지”, “특수고용직 노동권 인정” 등 진보 진영의 원칙을 담은 개정안이 대안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진보 정당들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