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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가족대책위 박정숙 씨의 연설 (7월 5일 전교조 전국 분회장 대회):
“가족 만날 자유, 음식과 물 먹을 자유도 없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맞습니까”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이 50일 째 육박하고 있다. 정부와 사측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우리 편의 연대도 다행히 커지고 있다. 7월 5일 전교조 전국 분회장 대회에서 쌍용차 파업 지원기금이 1천3백만 원이나 모금됐다. 이날 대회에선 쌍용차 가족대책위 박정숙 씨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다음은 연설 전문이다.

우리 부부는 대학시절 부산에서 만났고, 그 당시 우리 남편은 막 출시되어 도로를 누비던 무쏘에 반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쌍용차에 입사하게 되면서 신혼살림도 낯선 평택에서 시작하게 됐죠. 그게 벌써 16년 전 일이네요.

작년 가을쯤 아들 녀석에게 “넌 나중에 도대체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라고 물었더니 이 녀석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뜸 한다는 말이 “아빠 같은 아빠요. 아빠랑 같이 쌍용자동차 다닐 거에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15년 정도 있으면 가능한 일이겠네.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출근하면 멋지겠는데?”하고 말해 주었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남편도 내심 기분이 좋은지 아들 녀석 엉덩이를 한번 툭 치더라구요. 무뚝뚝한 우리 남편의 아들에 대한 애정 표현이죠.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 딸의 꿈은 어릴 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통령이 되는 겁니다. 그때는 꿈은 커서 좋다만 너무 실현가능성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딸의 꿈보다는 아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됐습니다.

아들의 꿈을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힘든 줄 모르고 옥쇄파업 45일차를 맞이하며 고생하고 있는 남편. 정리해고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는 부당함에 맞서, 아이들에게, 부인에게,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투쟁에서 이겨야 돌아오겠다던 남편의 말에 저도 용기를 얻어 가족대책위원회 활동에 참여한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대책위는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사랑 받으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예쁘지도 않지만 밉지도 않은 얼굴에 웃음 가득 띠우며 남하고 말싸움 한 번 안하고 마음 상한 일 있으면 집에 와서 혼자 씩씩거리며 내 한탄 들어줄 남편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던, 그저 그렇게 살았던 이름도 없는 아줌마들, 누구누구의 엄마들, 새댁들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집회에 나가 힘들지만 팔뚝질하며 노래도 부르고 투쟁 구호도 따라 외치고 온 몸이 땀범벅이 돼도 부끄러운 것이 없어질 만큼 뻔뻔해졌습니다.

남편도 못 바꾼 우리를 누가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요?

회사는 쌍용차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 모터 배관을 6월 30일 고의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이 때문에 공장 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해 긴급히 응급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1일 오전에 또 다시 관리직 5명을 동원해 펌프모터를 파괴했습니다. 그것도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배선을 절단하고 모터와 컨트롤러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저질렀습니다. 경찰병력이 이틀에 걸쳐 공장 주변을 막아서는 기회를 틈타 파괴한 것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단수를 시키기 위해 고의로 수도세를 미납했습니다. 그러나 단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접 파괴 행위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비열하고 치졸한 행위입니까. 앞에서는 대화 운운하면서 뒤에서는 먹는 물조차 단수시키기 위한 음모를 획책했던 것입니다.

파렴치한 작태

운영자금을 핑계로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던 회사는 용역깡패에게는 32억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지불해 놓고, 3천만 원이 없다며 고의로 수도세를 체불했습니다. 용역비는 아깝지 않고, 조합원들이 먹고 사용해야 하는 물 사용료는 아깝다는 것은, 노동자들을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정신이 제대로 된 관리인과 경영진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회사는 대화의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비열한 행동이 아니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낸 것입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생일 때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뜨끈한 미역국에 네 식구 둘러앉아 케이크 나눠 먹으며 그저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 생일엔 그 소박한 생일파티마저도 어렵게 됐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남편 얼굴이나 볼까 회사 앞에 갔었습니다. 저 외에도 많은 가족들이 휴일을 맞아 남편과 아빠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아이들만이라도 들여보내 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그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아이들만 물건처럼 담장 위로 건네져 아빠 품에 잠시 안겨볼 수 있었습니다.

요 며칠 회사 주위를 경찰들이 지켜 서 있으면서 가족들의 출입을 막는 것은 물론, 식재료의 반입도 저지당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만날 자유, 음식과 물을 먹을 자유, 생각을 말할 자유가 없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맞습니까?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소통이라 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통해 소통을 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통해 소통을 합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살자고 외치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귀 막고, 전교조 시국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을 연행하고 징계하는 이 정부와는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식사 때마다 수저통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남편의 수저 한 벌을 볼 때마다 정말 마음이 짠합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무릎 부딪히며 식사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보낸 날이 벌써 45일째입니다.

아빠는 아들을 통해 자신을 추억하고 아들은 아빠를 통해 미래를 꿈꿉니다. 1천여 명의 아빠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가정으로 돌아가 두 팔에 아이들을 품을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올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