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민중 항쟁에 대한 임지훈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이하 존칭 생략)의 글을 잘 읽었다. 나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임지훈 동지가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신문에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힌 개입주의 정신과 설득의 자세로 논지를 전개한 당당함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와 “미국을 필두로 한 제국주의 진영”에 맞선 투쟁을 중요시하는 것은 나와 중요한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임지훈 동지의 주장은 결정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저항의 지도 이데올로기 문제다.

임지훈 동지는 “아마디네자드 정부가 충분히 민주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무사비 측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기 때문에 시위를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무사비의 정치적 약점과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임지훈 동지의 주장은 전적으로 올바르다.

그러나 투쟁을 분석할 때 그 지도 이데올로기나 지도적인 세력의 지향을 고려하는 것뿐 아니라, 그 투쟁의 객관적 성격과 효과를 봐야 한다.

전자만을 우선시하거나 투쟁 성격 분석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면 복잡다단한 계급투쟁의 양상에 올바로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들이 미국의 도움을 바랐다고 해서 광주항쟁의 의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지도 이데올로기는 김대중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였다. 게다가 유명한 일례처럼, 미국이 한국의 불안정에 대처하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부산으로 보냈을 때, 광주항쟁 참가자들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들을 도우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반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데올로기가 저항 운동에 지배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광주항쟁을 친자본주의적이고 친제국주의적인 시위로 폄하해야 하는가. 그렇기는커녕 광주항쟁은 1980년대 내내 저항의 뿌리 구실을 했고, 한 세대를 급진화시켜 모종의 혁명적이며 반제국주의적인 정치가 등장하게 만들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둘째, 임지훈 동지는 “시위의 주요 세력인” 이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이 “영어를 할 줄 알고, 인터넷 등의 첨단기기 활용능력이 크다”는 것을 “서구 지향성”의 문제가 있는 사례로 든다. 그러나 임지훈 동지가 든 사례는 오늘날 국제적 저항 운동의 양상을 볼 때 보편적인 현상이어서, 시위의 성격을 폄훼하기 위한 꼬투리 잡기식 비판으로 들린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촛불시위 때 인터넷은 보조수단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열의 있는 촛불 시위 지지자들은 외신의 촛불 시위 보도들과 정부의 영문 합의문들을 번역해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면 이런 사례를 들어 촛불시위를 친서방 시위로 매도해야 하나?

이란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다. 임지훈 동지가 마치 특권층처럼 취급하는 대학생 수가 무려 3백50만 명이다(전체 인구는 약 7천만 명이다). 15세 이상 인구 중 89.4퍼센트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란은 베일에 가려진 성직자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이란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2007년 기준으로 세계 13위다.(한국은 8위다.)

셋째, 임지훈 동지는 미국과 서방의 시위 개입을 지적한다.

미국과 서방이 발 빠르게 이란 정부더러 탄압을 중단하라고 발표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근거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의 위선 때문에 이란 민중의 시위가 곧 친미 시위인 것은 아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입장이 모든 사태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2006년에 공개된 박정희 시절의 외교 문서를 보면, 당시 미국 정부는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 너무 강경한 조치라는 우려를 표명”했고, 중앙정보부가 자행한 김대중 납치·피살 시도에 대해 “김대중이 생존해 있어 다행스럽고 미국에 오기 원하면 미국은 언제든지 그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임지훈 동지의 분석 방법에 따르면 긴급조치 9호에 항의하는 운동과 박정희 정부에게 핍박받던 김대중 구명운동 또한 미국의 개입에 의한 것이 된다.

임지훈 동지는 더 나아가 시위에 미국이 실제로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중요한 전략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과 배후조종을 강조하는 주장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있다.

첫째,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가 깔려 있지만, 오히려 미국 제국주의의 ‘무소불위의 힘’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음모와 배후조종이 성공을 거두고 있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를 보면 ‘무소불위의 강력함’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또, 〈뉴욕타임스〉 기자 팀 와이너는 제2차세계대전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미국 정보 공작이 신화로 부풀려져 있고, 오히려 실수와 오류 투성이었다고 주장한다.(《잿더미의 유산》, 랜덤하우스, 2008)

둘째, 이런 주장은 해당 국가 내의 계급투쟁과 정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의 ‘음모’로만 현실을 분석한다.

“배후조종”과 같은 음모론의 약점은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의도치 않게 음모를 꾸미는 대상의 “전지전능함”을 강조함으로써 저항과 변화의 열망에 무력감을 심어 줄 수 있다.

이란을 휩쓸었던 저항의 배경은 “민중의 불만 가득한 현실”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 이런 관점에 서야 이란 저항에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

반제국주의 투쟁

임지훈 동지는 미국 제국주의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아마디네자드와 이란 지배계급을 약화시키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를 강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모든 문제를 미국 제국주의와의 관계·대립이라는 틀로만 접근하는 협소한 관점이다.

김용욱 기자도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상황, 만약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 한다면 당연히 반제국주의자들은 미국의 공격에 반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고, 공격이 벌어진다면 미국의 군사적 패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다. 즉, 미국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다.(만약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마찬가지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란에 군사적 지지 전술을 취할 때조차 이란 지배자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삼가거나 지배자들에 맞선 저항을 비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아마디네자드를 비롯한 이란 지배계급의 “강경한 입장”이라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이란 정부는 중동의 중요한 저항세력인 헤즈볼라와도 연관이 있지만, 제국주의 군대의 점령 상태에서 수립된 이라크의 알 말리키 친미 정부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아마디네자드는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2005년 10월)고 말했지만, 최고 성직자 하메네이는 “이란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아랍 국가들과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다”(2006년 6월)고 말했다. “공통된 견해”란 이스라엘의 영속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두 국가론”이다.

둘째, 이란은 독립적 자본 축적 체제를 갖추고 있는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다. 그래서 이란은 지역의 작은 열강이기도 하다. 예컨대, 1980년대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은 두 국가가 서로 지역의 패권을 쥐려는 경쟁 때문에 시작됐다. 이런 경우에 반제국주의자들은 이란을 군사적으로도 방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전쟁의 성격은 바뀌었고,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이란을 군사적으로 방어해야 했다. 반제국주의 전술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게다가 축적은 곧 착취를 뜻하고, 이것은 이란 내의 계급 대립이 핵심 문제임을 뜻한다. 그리고 이란에는 강력한 노동계급이 존재한다. 이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인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맞설 수 있는 잠재력과 힘을 지니고 있다. 이란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에게는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체제의 근본적 변혁이라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있다.

셋째, 미국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는 핵심적인 또 다른 힘은 바로 국제적 저항과 연대에서 비롯한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도대체 아마디네자드와 이란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묵인하고 지지하는 태도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이란을 방어하는 국제적 연대 건설에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이란을 방어할 때 이란 지배계급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오히려 방어를 건설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란의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면서도, 그 총구를 이란 지배계급에 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혁명을 성공시키는 것, 그래서 이란에서 진정한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권력을 수립하는 것, 그래서 중동 지역의 연속 혁명의 가능성을 실질화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제국주의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디네자드와 이란 지배계급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피억압자 들의 저항과 조직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란의 민주주의 시위와 저항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투쟁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미국을 비롯한 “서구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이란 지배계급에 맞선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이란의 저항과 시위를 폄훼하고 지지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옹호자” 행세를 하고 있는 미국과 서방의 위선을 묵인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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