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야권의 내일 집회를 원천봉쇄한다는 방침 … 검찰도 내일 시위를 주동하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에 대해서는 구속을 원칙으로 엄하게 다스린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100℃》 (최규석, 창비, 212쪽, 12,000원)

이명박이 어지간한 집회는 죄다 원천봉쇄하는 지금, 위와 같은 소식은 뉴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저 소식은 바로 1987년 6월 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내용이다.

이명박의 무자비한 탄압 때문에 사람들이 ‘나라가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등의 얘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실제 국민의 67퍼센트가 이명박 취임 후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나빠졌다”(윈지코리아컨설팅 여론조사)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명박을 보며 독재 정권의 폭정만이 아니라 거기에 맞선 위대한 저항의 역사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1987년 6월 항쟁을 만화로 그린 《100℃》는 뜨거웠던 저항의 순간들을 생생히 불러 온다.

《100℃》는 투철한 ‘반공 소년’이 대학 입학 후 1980년 광주 학살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제 수많은 대학생들은 광주항쟁을 보면서 ‘각성’했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활동에 투신했다.

당시 독재 정권의 억압은 혹심했다. 경찰과 안기부는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끌고가 고문하기 일쑤였고 성고문까지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1986년 10월에는 건대에서 열린 반외세 반독재 집회에 참가한 대학생 1천2백90명을 구속해 단일 사건 최대 구속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탄압의 강화는 정권의 위기 의식도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85년에는 대우차 파업, 구로동맹 파업 등 노동자 운동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986년 상반기에 입건된 ‘학원 소요 관련자’는 전년 대비 5백77퍼센트로 증가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던 당시의 경제 상황과 독재자 마르코스를 끌어내린 필리핀의 ‘피플 파워’도 이런 저항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를 억누르려는 독재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물 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전두환은 이 사건을 은폐·조작하려했고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가증스런 경찰의 발표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4월 13일, 독재 정권은 호헌 조처를 발표했다.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깡그리 무시하고 체육관 선거를 통해 독재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오만방자한 정권의 태도는 사람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대학 교수 등 각계 각층의 호헌 반대 시국 선언이 이어졌다.

야당과 재야, 학생, 종교 단체들은 호헌철폐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해 민정당(한나라당의 전신)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날인 6월 10일에 맞춰 대규모 시위를 개최하기로 했다.

오만방자한 정권

6·10 대회 전날 연세대 학생 이한열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고, 6·10 당일 경찰은 무려 3천8백31명을 연행했다. 서울 시내는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국본에서 6·10 대회 때 경적을 울리자고 제안하자 심지어 정권은 버스와 택시의 경음기를 떼어가기도 했다. 독재 정권은 보름 남짓 동안 최루탄 35만 발을 시민들에게 쏘아댔다. 

그러나 정권의 이런 폭압으로도 봇물처럼 터진 민주화 요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6월 26일에는 전국적으로 1백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무력 진압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전두환은 군대 투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저항이 워낙 거세 군대를 투입한다 해도 진압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두환은 쿠데타 동료인 노태우를 내세워 대통령 선거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게 한다. 위대한 저항 운동이 독재 정권을 무릎 꿇린 것이다. 물론, 운동의 확대를 저지하려는 정권의 ‘꼼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명박의 앞뒤없는 반동 공세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겐 민주적 권리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운동 내에서는 부르주아 야당인 민주당과의 연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6월 항쟁 당시 자유주의 야당들은 운동에서 불철저하고 기회주의적이었다. 이들은 여야 영수회담 같은 정치협상에 기대며 최대 규모였던 6·26 집회 개최를 반대하기까지 했다.

《100℃》에는 나오지 않지만, 민주화를 되돌릴 수 없게끔 쐐기를 박은 것은 6월 항쟁 이후 벌어진 노동자들의 대공세였다. 7~9월의 거대한 파업 물결은 군부가 독재를 다시 시도도 하지 못 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 점이 반동 쿠데타로 무너진 4·19 혁명과 다른 측면이다.

이는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것조차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결정적임을 보여 준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생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야당과 연대를 할 때조차 그들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비판이 필요하며 노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6월 항쟁의 교훈일 것이다.

물이 100℃가 되면 끓듯이 사람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를 넘으면 투쟁으로 끓어오른다는 것이 이 책 제목이 뜻하는 바다.

이명박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99℃까지 오른 지금, 분노가 끓어 독재 정권을 굴복시킨 위대한 저항의 역사와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뜻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