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아버지가 다른(성이 다른) 자매가 어머니의 장례 이후 아버지를 찾아 나서며 가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러나 단순히 여성들의 로드무비가 아니다. 전통적 아버지상과 부계혈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돕는 영화다. 더불어 고정된 생물학적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되새김질을 통해 가족과 성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결혼, 가족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한 영화는 현대 사회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만큼 심심찮게 제작되고 있다. 유사한 소재를 다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수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호주제와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쇼킹 패밀리〉,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으로 살아가게 되는 〈다섯은 너무 많아〉, 최근 상영된 〈아내가 결혼했다〉 등.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도 최근 짧게 상영되고 슬그머니 상영 종료된 영화다.

물론 억압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족을 구성하고 싶어한다고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역시 통속적 TV 드라마에서처럼 빈부차와 ‘신분과 계급’의 차이로 결혼을 못하는 이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그 역시 너무도 끔찍하지만). 여러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하고 싶어도, 가족을 구성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들이 많다. 돈이 없어 가족을 구성하지 못하거나 해체되는 비일비재한 잔인한 사례들, 미국의 각종 선거기간만 되면 후보들의 정치성향을 대별하게 하는 쟁점인 동성결혼이 그렇고, 소위 생물학적 성을 자신이 원하는 그것으로 바꾸었단 이유로 편견과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트렌스젠더들이나 성소수자들도 그렇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루이스 H.모오간을 인용하며 “가족은 능동적 요소”이며 “친족은 수동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가족의 형태는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당연한 절차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최근 〈결혼 못하는 남자〉의 인기에서 보여 주듯 사회진출에 따른 여성의 비혼 뿐만 남성의 비혼, ‘여성화’ 등도 심심지 않게 이슈꺼리가 된다. 그러나 결혼을 통한 제도적 결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진보를 염원하는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을 마땅히 지지해야 한다. 또한 누구나 경제적 예속과 사회적 제도와 관계없이 가족을 구성하고 진정한 공동체를 결합 또는 해체할 권리를 누리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 변화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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