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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악법 날치기 통과 이후: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기분 좋은 말을 많이 한다. ‘수고했다. 시원하다. 계속 좀 밟아 달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옳다고 보라.”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가 언론악법 날치기 처리 직후 한 말이다. 진짜 멍청한 자다.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66.8퍼센트가 방송법을 반대했다. 게다가 의회 민주주의 절차마저 무시해 국민의 80퍼센트가 미디어법 처리 갈등 원인으로 한나라당을 지목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제 무덤을 팠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지고 있는 형국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96년 12월 김영삼 정부와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이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을 때처럼 즉각적인 대규모 저항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주로 국가 탄압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억압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를 더한층 강화할 것이다.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는 것, 다시 말해 더는 ‘지도적’이지 못하고 단지 ‘지배적’이고 강제적인 힘만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은, 대중이 자신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멀어져 이전에 믿었던 것을 이제는 더는 믿지 않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를 두고 “권위의 위기”, “헤게모니의 위기”라고 불렀다.

바로 이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선거로 집권 했는데 자신감은 없고, 대화는 전혀 안 하고, 하는 법도 모르는 정권”(한홍구 교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설익은 ‘친서민’ 정책을 부랴부랴 내놓은 것은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타협책’은 대중과 또 다른 갈등과 균열을 빚을 것이다. 한 입으로 두 말 하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친서민’ 정책을 얘기하면서도 구조조정(대량 해고)과 비정규직 확대를 ‘국정 과제’로 삼는다.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 해고를 한사코 고집하는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말하니 그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지배 이데올로기와 대중의 균열을 강제력을 통해 막을 수는 없다. 급진 이데올로기가 부상하고 급진적인 지식인들의 주장과 강연이 대중적 흡입력을 갖는 까닭이다.

위기의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거품 경제의 시작

사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어설픈 ‘쇼’를 통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복합적이며 주요 사회 모순들과 결합돼 있다.

이명박은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경기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참 어리석은 주장이다. 수출 지향적이고 따라서 그만큼 경제의 외생적 효과에 민감한 한국 경제의 현실을 도외시하니 말이다.

지난 6월 초 저명한 주류 경제학자들인 배리 아이켄그린과 케빈 오루르케는 현재 위기와 1930년대 대불황을 비교하는 구체적 통계를 발표했다. “세계 산업 생산은 1930년대 하락과 엇비슷하고, ‘새싹’의 조짐은 확실히 없다.” “세계 주식 시장은 3월부터 약간 반등했고 세계 무역은 안정화됐지만, 대불황 때보다 더 낮은 수치다.”

물론 금융 시장들이 지난해 가을 붕괴 당시의 끔찍한 공포를 부분적으로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경제들의 하강 속도가 완화되고 중국의 성장률이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품 시장의 투기(특히 유가 인상)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위기의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거품 경제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폴 크루그먼은 “장기적인 스태그네이션의 위험이 아주 높다”고 지적했다.

물론 경제 위기가 필연적으로 좌파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대불황의 주요 정치적 수혜자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이명박 정부도 한국 경제 위기를 등에 업고 등장했다.

그렇다고 경제 위기가 언제나 좌파에 이롭다는 생각을 정반대로 뒤집는 것도 잘못됐다.

1930년대의 경험은 대규모 경제 침체가 사회를 정치적으로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불황 때 히틀러와 프랑코(스페인)의 승리만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것에 대응해, 거대한 노동계급의 봉기, 즉 1934년과 1936년 프랑스 노동자 투쟁, 1930년대 중엽 미국의 전국적 점거 파업 물결, 1936~1937년 스페인 혁명도 있었다.

요컨대, 결국 우파가 승리했지만 필연적 결론은 아니었다.

지금 위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정치적 양극화와 이윤 회복을 위한 사장들의 노력이 중요한 투쟁들을 부를 수 있다.

이런 투쟁들의 결론은 절대 결정돼 있지 않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유기적 위기”의 경우에, 경쟁하는 사회 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응집력과 지도력의 질이 결정적일 것이다.

그러러면 위기의 효과에 맞선 저항을 지지·강화하며 저항을 건설하기 위한 단호한 노력을 되도록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8월 15일 이명박 정부에 맞선 저항을 대규모로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운동에 노동계급이 조직적·집단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얼마나 주도적 구실을 할 수 있느냐에 운동의 성패가 달려 있다. 지난해 촛불 항쟁에서 실종된 고리는 조직 노동계급이었다. 서울에서만 70만여 명이 결집하고서도 이명박 정부를 쫓아내지 못한 것은 조직 노동계급의 참가 부족과 노동계급적 투쟁 방식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런 운동 건설 과정에서 진보 진영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진보 진영의 단결 프로젝트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분열의 경험과 정치적 불일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전선, 산업 전선, 선거 전선 등에서 진보 진영의 단결을 더한층 강화시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명박 정부의 범죄 행각을 저지해야 민주당이 아닌 정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