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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적 개입이 만든 역사

지금의 시리아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과 프랑스가 만든 국가다.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어 중동 지역을 분할했다.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차지했고,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이라크를 지배했다.

프랑스는 신생국 시리아의 지배자들로 지주와 상인 계급을 들어앉혔다. 당연히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거대한 운동이 일어났지만 무자비한 탄압이 뒤따랐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시리아는 독립을 얻었다.

1960년대에 집권한 이래 현 정부의 혹독한 탄압은 저항에 부딪혔다. 현 정부는 반정부 봉기를 일곱 차례나 진압해야 했다. 1963년, 1964년, 1965년, 1967년, 1973년, 1980년, 1982년.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일어난 이슬람 봉기는 1982년 2월에 최고조에 이르러 이슬람주의자들이 하마 시를 장악했다. 바트당 정권은 무장 헬리콥터와 불도저를 투입했고 시가지를 폭격해 적어도 1만 명을 죽였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렇게 보고했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알-하데르 같은 좁은 도로로 군 병력과 탱크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구 시가지에 대한 공습이 감행됐다. 전투 개시 후 나흘 동안 탱크들이 알-하데르 가의 주택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며칠 동안 집중 폭격이 이루어진 후 2월 15일에 국방장관이 반란은 완전히 진압됐다고 발표했지만, 도시는 여전히 포위된 채 고립무원 상태였다. 그 뒤 2주 동안 철저한 가택 수색과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보안군이 자행한 만행과 무고한 주민에 대한 대량 학살 소식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드러났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아사드는 부시에게 시리아 정부가 하마 시에서 한 일을 상기시키며 이는 미국이 따라야 할 “본보기”라고 말했다.

2000년에 하피즈 알-아사드가 죽자 그의 아들 바샤르는 “다마스쿠스의 봄”으로 알려진 정치적·경제적 자유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치인과 인권에 대한 탄압은 여전하다. 시리아에는 수백 명의 정치수가 수감돼 있고, 인권 단체들은 고문이 “일상사”라고 말한다.

이라크에 써먹은 수법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시리아 정권의 억압 사례를 들먹이며 시리아에 대한 압박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집트·요르단·쿠웨이트 같은 동맹국들의 인권 탄압은 문제 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