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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 경제

정성진(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의 바그다드 점령으로 이라크 전쟁은 일단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세계적으로 항전과 반전운동 및 반미 테러가 계속되겠지만, 이제 관심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후 상황으로 이동했다.

전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의 하나가 세계 경제 동향인데,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승리에 따라 세계 경제가 그 동안의 불확실성과 불황에서 벗어나 본격적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은 근거 없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세계 경제 위기는, 흔히 주장하듯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세계 경제 위기는, 멀게는 1970년대부터 시작해 가깝게는 2000년 여름 미국의 ‘신경제’ 호황의 종식과 함께 더욱 심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장기 불황, 즉 장기적 이윤율 저하와 과잉생산·과잉설비의 누적이 근원이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약간의 ‘전쟁 특수’나 영구 군비 경제 효과, 또는 ‘지연된 수요’를 작동시켰는지는 몰라도,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장기 불황을 반전시킬 정도의 경기 부양 효과를 제공하지는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승리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 위기의 뿌리인 세계적 규모에서 이윤율 저하와 과잉생산·과잉설비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오히려 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의 근원

세계 경제의 동향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미국 경제의 상태는 이라크 전쟁 개전 전부터 이미 심각했다. 〈이코노미스트〉(2003년 3월 15일치)는 2003년 미국 경제의 성장률 예측치를 3.6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다른 무엇보다 미국 경제 전체의 이윤율이 2002년 4/4분기까지 세 4분기 동안 연속 저하하면서,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 장기 불황의 배후에 있는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추세가 다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투자도 2000년 가을 이후 매 4분기 연속 감소했다. 이윤율 저하와 투자 둔화의 지속은 ‘신경제’ 호황기에 누적된 과잉투자와 과잉설비 및 과잉생산이 그 동안 계속된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데 연유한다. 2003년 3월 미국 제조업의 가동률은 72.9%로 1972-2000년 평균 가동률 80.2%보다 무려 7% 이상 낮았는데, 이는 현재 미국의 과잉투자와 과잉설비, 과잉생산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 이와 같은 과잉투자와 과잉설비, 과잉생산 문제의 지속은 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국[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심화하는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2001년부터 지금까지 연방기금 금리를 모두 12차례, 도합 5.25퍼센트나 인하했다. 현재 연방기금 금리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인 1.25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나스닥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가 지수는 그것이 천정에 도달한 2000년 초보다 50퍼센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3년 동안 주가가 계속 하락했는데도 미국 경제의 거품은 아직 다 꺼지지 않았다. 현재 미국 주요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00년 초보다 오히려 더 높다. 주가가 떨어진 것보다 이윤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주가는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다.

물론 저금리는 부채 증가를 통한 소비 지출을 촉진했다. 이와 같은 소비 지출 증가는 세계 화폐 자본이 미국으로 계속 유입되는 것과 함께 지난 수년간 미국 경제의 거품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한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거품을 지탱해 온 부채 증가를 통한 소비 지출 증가는 더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미국 민간부문 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동안 GDP의 2.6퍼센트를 상회한 미국의 민간부문 저축률은 1990년대 동안 소비와 차입이 증가하면서 마이너스가 돼, 2000년 마이너스 5.2퍼센트, 2002년 3/4분기에 마이너스 1.4퍼센트로 떨어졌다.

게다가 2002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1년에 비해 28퍼센트 증가해 무려 5천34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GDP의 5퍼센트를 상회하는 규모로 지난 30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이와 같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 달러화 가치에 하락 압력을 가하고 있다. 유로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현재 1유로 1.11달러로 지난 4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일본의 경제 위기도 지속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2003년 3월 15일치)는 2003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도 2.8퍼센트에서 1.1퍼센트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또, 2003년 일본의 경제성장률 예측치 역시 0.5퍼센트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주요국의 실업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초 신규 실업자가 30만 8천 명이나 늘어났다. 독일도 지난 1∼2월 실업자수가 13만 5천 명이나 증가했는데, 이는 1990년대 초반 이래 최대 상승폭이다.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10.5퍼센트다. 프랑스와 일본의 실업률도 지난 1월 각각 9.1퍼센트, 5.5퍼센트를 기록했다.

요컨대, 세계 경제는 이라크 전쟁 훨씬 전부터 이미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영구 군비 경제 효과의 한계

자본주의 경제에서 일반으로 군비 지출은 단기적으로는 재정 지출 증가를 통해 경기 부양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는 누적된 과잉 생산과 과잉 자본을 파괴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를 저지하고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영구 군비 경제 효과를 작동시킨다. 예컨대 ‘9.11 테러’ 후 2001∼2002년 미국의 군비지출은 각각 6퍼센트, 10퍼센트 증가해 2000년 여름 이후 시작한 미국 경제의 후퇴가 더욱 심화하는 것을 일정 정도 저지했다.

또, 1930년대 세계대공황은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영구 군비 경제의 작동을 통해서만 종식될 수 있었다. 이것은 파괴를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야만적·모순적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은 제2차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처럼 영구 군비 경제의 작동보다는 베트남 전쟁이나 1991년 걸프 전쟁처럼 경제 위기의 심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 규모 전체에서 전쟁에 수반된 군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GDP 대비 군비 지출의 비율은 제2차세계대전 시기에는 무려 1백30퍼센트였지만,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15퍼센트였고, 1991년 걸프 전쟁 시기에는 1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군비 지출을 최대 1천5백억 달러로 잡아도 GDP의 1.5퍼센트 정도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은 1991년 걸프 전쟁을 단기전으로 승리했음에도 1990∼1991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여파로 아버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했다.

제거되지 않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더욱이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군비 지출은 미국의 GDP 대비 연방 재정수지의 비율이 2000년 2.3퍼센트 흑자에서 2002년 마이너스 2.3퍼센트 적자로 반전한 조건에서, 또 배당세 인하 같은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으로 세수가 감소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루어져서, 재정적자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다.

게다가 부시는 이라크 석유 독점과 중동 지역 패권 유지를 위해 이라크 안팎의 저항에 맞서 군정을 장기간 실시해야 할 것이므로 이에 따른 천문학적 재정 지출을 또 부담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부시는 이라크의 석유 판매 대금으로 전후 복구 비용과 미군 주둔 비용이 충당하려고 계획했겠지만, 이라크의 유전 복구와 석유 증산 그 자체에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소요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재정 적자와 경제적 곤란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게다가 전후 복구와 석유 개발 이권을 둘러싸고 미국·유럽연합·러시아와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여기에 ‘사스’(‘21세기의 페스트’(?))가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위기에서 면제된 듯 보였던 중국을 엄습하고, 또 최근 한반도에서 다시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이라크 전쟁 이전보다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기대했던 ‘떡고물 효과’ 같은 것도 없을 것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