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전 세계가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6월 초에 신종플루의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7월에는 감염자 수가 너무 많아 집계를 포기했다. 겨울철인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물론이고 여름인 북반구 나라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전염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무더운 여름철에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더 크다. 또 신종플루 환자의 70퍼센트가 20대 이하인데 개학 이후에 학교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해 확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WHO 서태평양지역본부 박기동 박사의 말처럼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WHO는 앞으로 2년 동안 최대 20억 명이 신종플루에 감염될 것으로 전망했고, 한국 정부도 대유행이 시작되면 몇 달 안에 8백만 명이 감염될 것으로 예측했다. 일본에서는 1주일 새에 감염된 사람이 11만 명에 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메카 등 이슬람 성지를 순례하려면 건강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코스타리카의 현직 대통령이 신종플루에 감염되기도 했다. 스페인 보건부는 키스를 자제하라는 지침까지 발표했고, 한국 외교통상부는 신종플루 발생으로 해외 여행경보를 지정한 국가가 1백48곳에 이를 정도로 많아지자 ‘경보’가 무의미하다며 지정을 해제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신종플루로 두 명이 사망하자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책은 요란스럽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다.

우선, 체계적인 계획 없이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거점 병원과 약국을 지정해 의료 현장이 혼란에 빠졌다. 정부가 지정한 거점 약국에는 치료약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거점 병원에는 격리 진료 시설과 격리 병동이 준비 안 된 경우가 태반이었다. 서울삼성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같은 대형병원에서도 격리 시설이 없어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거점 병원을 지정하면서 정부는 보건소에서 일반인을 진료하는 것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거점 병원에서도 제대로 된 신종플루 대응 방안이 없어 우왕좌왕했다. 보건소에 가면 병원에 가라 하고 병원에 가면 보건소에 가라는 식이다. 애꿎은 환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고생하는 것이다.

서울시내 보건소의 허접한 격리시설 이러니 신종플루가 퍼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진

이명박이 삽질하는 동안

정부의 신종플루 대응 지침도 문제다. 정부는 치료약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65세 이상 노인이나 6세 이하 어린이,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에게만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치료약을 처방하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신종플루 감염자 중 85퍼센트가 ‘고위험군’이 아닌 30대 이하고, 타미플루는 초기 48시간 내에 투약해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부 지침으로는 효과적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종플루 사망자가 가장 많은 미국에서도 사망자의 60퍼센트는 50세 미만이었다.

실제 국내 첫 번째 신종플루 사망자는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았고 감염 초기에 보건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보건소에서는 체온이 신종플루 치료 기준에 0.1℃ 못 미친다며 항균비누만 줘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1주일 뒤에 그는 사망했다. 정부의 대책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백신 확보도 문제다. 지난 5월 초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백신 확보 예산을 짜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 그러나 해외의 백신 제조업체들은 한국 정부의 백신 구매가격이 시세의 절반도 안되는 ‘헐값’이라며 백신을 판매하려 하지 않았다. 다시 예산을 확보하는 데 두 달을 또 허송세월했다.

정부는 1천3백만 명 분의 백신을 구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에서 녹십자가 생산할 예정인 6백만 명 분을 제외하면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다른 나라에서 백신을 선점했고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생산물량이 부족해 녹십자에게 백신을 사겠다고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 백신도 빨라야 11월 초에 나올 수 있는데 의료인·방역요원·군인 등에게 우선 접종할 예정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올해 안에 예방접종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백신은 3주 간격으로 두 번을 접종해야 해서, 빨라야 12월에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데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치료약 확보도 마찬가지다. 이미 조류독감의 인체 발병 때문에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한 지가 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치료약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인구의 11퍼센트인 5백30만 명 분의 치료약을 보유하고 있고 5백만 명 분을 추가로 확보해 WHO가 권고하는 전체 인구 20퍼센트의 치료약을 구비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하는 5백30만 명 분도 올해 안에 들어오기로 ‘계약’된 것이지 실제 수중에 확보하고 있는 것은 2백50만 명 분이 고작이다.

사실 신종플루는 빠르게 전염되지만 치사율이 낮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그 자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쉽게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고유한 특징 때문에 전염도 빠르고 치사율도 매우 높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중 치사율이 60퍼센트에 달하는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1과의 결합이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최근 칠레에서 칠면조가 돼지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소식은 그 가능성에 한 발 다가섰음을 보여 준다. 조류독감으로 많이 사망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신종플루가 계속 확산하고 있는 것도 불길하다.

만약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인류는 상상할 수 없는 대재앙을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신종플루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환자 둘 중 하나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섬뜩하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고 복제약을 저렴하게 생산하는 강제실시가 그것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장관 전재희는 “아직은 약이 있는 상태에서 강제실시를 하면 국제적 신의에 맞지 않다”는 정신 나간 소리만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당장 강제실시를 통해 치료약을 생산해야 한다.

왜 21세기에도 전염병 대재앙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최첨단 기술 발달로 화상전화도 하는 21세기에, 인류는 도대체 왜 여전히 전염병으로 인한 대재앙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신종플루의 유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운영되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체제다. 자동차 회사든, 컴퓨터 회사든 경쟁을 통해 이윤을 얻고, 이 경쟁에서 뒤처지면 도태되고 퇴출된다.

따라서 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 기업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 살아있는 생물을 기르는 축산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축산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위생적이고 비좁은 우리에 최대한의 동물을 몰아넣고 사육한다. 이런 환경 때문에 동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질병에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동물이 질병에 걸리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장에 내다 팔 정도로 살이 찌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시장에 출하하려고 동물에게 예방적으로 항생제를 매일 먹인다. 미국에서 사람의 질병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항생제의 양은 연간 3백만 파운드인 반면, 가축에 투여하는 양은 8곱절이 넘는 2천5백만 파운드에 달한다. 항생제 남용은 자연스레 항생제 내성을 낳고 항생제 내성 병균의 증가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된다. 이런 사육환경에서 결국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켜 신종플루 대유행을 낳은 것이다.

이윤지상주의라는 걸림돌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는 이런 전염병을 해결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류는 이미 신종플루 발생 전부터 독감 치료약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이윤을 보장해 주기 위한 특허권 때문에 필요한 양을 충분히 생산할 수 없었다.

현재도 특허권을 갖고 있는 로슈의 공장에서만 신종플루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필요에 턱없이 부족한 양만 생산하고 있고 그나마 강대국들 중심으로 나눠가져 제3세계의 가난한 민중에게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쌍생아인 불평등과 빈곤도 심각한 문제다. 형편없는 식사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전염병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당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던 인도에서 전 세계 사망자의 60퍼센트 가까이가 발생했다. 뭄바이의 하층 카스트 주민들은 부유한 인도인과 유럽인들보다 8곱절이나 많이 죽었다.

1백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멕시코는 의료민영화로 공공의료체계가 붕괴된 상황이어서 초기에 신종플루 사망자가 유독 많았다. 현재 사망자가 가장 많은 미국은 OECD 국가 중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지구를 몇 번씩이나 날려버릴 핵무기는 가지고 있어도 국민들을 살리기 위한 기초적인 의료체계에는 관심이 없다.

이명박도 부자들에게 수조 원을 감세해 주기 위해 보건복지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 때문에 ‘신종 전염병 대책’ 예산은 총 17퍼센트 삭감됐고, 이 중 ‘신종인플루엔자 대비 치료제 지원’ 예산은 46퍼센트인 20억 9천만 원이 삭감됐다.

해외 발생 전염병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는 1차적인 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국립검역소 예산은 4억 원 삭감됐고, 지역사회 감염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도시지역 보건지소 확충 예산은 48퍼센트인 45억 원이 삭감됐다. 반면 의료민영화를 위한 ‘첨단의료복합단지조성’ 예산은 63억 원이 새로 배정됐다. 이러니 신종플루가 퍼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명박이 4대강 사업 같은 삽질에 정신 팔려 있는 동안 대재앙은 점점 우리 곁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윤이 제일 중요한 이 체제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재앙을 막으려면 체제의 핵심인 이윤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인류는 이미 1918년 스페인 독감을 통해 5천만 명에서 1억 명이 죽는 대재앙을 경험했다. 당시에 관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시체를 땅에 묻을 사람조차 부족했다. 이런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 정부에 강제실시를 요구하는 것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 삶에서 이윤 논리가 제거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위해 싸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