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크리스 하먼이 7월 26일 다함께가 주최한 진보포럼 ‘맑시즘 2009’에서 연설한 것을 옮긴 것이다. 다음 호에는 ‘21세기 노동자 계급’이 실릴 예정이다. 크리스 하먼 영국의 좌파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 국내에는 최근에 나온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공저)를 비롯해 《민중의 세계사》, 《오늘의 세계경제 : 위기와 전망》, 《오늘날의 노동자계급》,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 《세계를 뒤흔든 1968》 등 10여 권의 책이 번역·출판됐다.

오늘날 제국주의를 논하는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20세기는 수많은 전쟁과 전쟁 위협으로 점철된 세기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이론은 바로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한 세기 전에 개발된 이론입니다. 중요한 이론가 두 명, 즉 레닌과 부하린이 각각 1916년과 1917년에 제1차세계대전을 설명하기 위해 제국주의론을 개발했습니다.

그들의 요지는 자본주의가 워낙 발달한 탓에 이제 경쟁이 더는 개별 기업들 간의 경제적 경쟁에 국한되지 않고 적어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국가간 경쟁도 수반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진국의 기업들은 자기 국가의 힘에 기대서 세계 나머지 지역을 수탈하고자 했고, 자기 국가의 힘에 기대서 다른 나라의 경쟁 기업들이 자신의 전리품에 손대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국이, 그 다음으로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가 각자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자기 나라 기업들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제국을 구축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입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이라크 침략은 군사력을 이용해 미국 제국주의의 상대적 쇠퇴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처음에 이들 제국은 서로 합의해 각자의 지분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이 제국들이 서로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게 되면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일본과 러시아도 각자의 제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누가 한반도를 차지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열강의 이 같은 각축 때문에 한반도는 20세기 최초의 전쟁터(러일전쟁)로, 그리고 1950년대에는 냉전 시대 최초의 전쟁터(한국전쟁)로 선정되는 끔찍한 영예를 누렸던 것입니다.

미국의 마피아 식 지배 전략

20세기 전반기의 주요 전쟁들은 영국과 프랑스를 한 축으로 하고 독일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세계 패권 전쟁이었습니다. 이들 전쟁에서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가들이 나머지 세계를 수탈할 능력이 그 하나였고, 제국주의 열강 중 누가 나머지 세계를 더 많이 수탈할 것이냐를 둘러싼 충돌이 다른 하나였습니다.

1차 대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한 편이 돼서 독일과 싸웠고, 결국 전자가 승리했습니다. 한동안 평화가 이어지다가 곧이어 2차 대전이 발발했는데, 이 때도 1차 대전 때와 동일한 진영이 서로 맞붙었고 미국과 일본이 각각의 진영에 추가됐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의 결과로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패권을 잃었고 오히려 미국과 소련이 세계 패권을 나눠 갖게 됐습니다. 2차 대전 직후의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였습니다. 전 세계 생산의 절반 가량이 미국 국경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맞먹을 수 있는 나라는 소련뿐이었습니다. 소련은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작았지만 유라시아 대륙 북부를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했습니다. 대서양 내륙 2백마일 지점부터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지역 전체가 소련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 간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비록 미국이 첨단 무기 면에서는 앞서갔지만 방대한 영토를 장악하고 있는 소련이 지상전에서는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미소 양국이 35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 이외의 모든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지역은 아니고 몇몇 예외가 있었습니다. 인도 같은 나라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미국은 세계의 3분의 2를 사실상 지배했습니다. 미국은 과거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가 행했던 것과 같은 직접적인 식민통치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마피아식 지배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즉, 미국은 세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자기 영역 내의 지배계급들에게 “너희들이 ‘보호세’만 내면 우리가 너희들을 후원해 주마”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때의 보호세는 현금이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그들 나라에서 영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힘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현지 지배자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한 지배자들은 1960~70년대에 독자적인 경제 발전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는데, 이는 소련, 중국, 북한과의 경쟁에서 남한이 미국에 필요한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보호 아래 미국한테서 어느 정도 자율적인 지배계급이 등장할 수 있었던 국가가 당시에 15~20개 나라 정도 있었습니다. 마피아 영화를 보면 항상 젊고 야심 많은 중간보스가 나이 든 보스를 몰아내고 자기가 ‘대부’가 되려고 하는데, 미국도 번번이 그런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젊고 야심만만한 보스가 실제로 그렇게 해서 ‘대부’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미국이 오늘날 직면한 문제는, 전 세계 생산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차 대전 직후에는 50퍼센트 가량이었지만 오늘날에는 22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 독일, 중국이 부상해 차례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해 왔고 한국이나 인도 같은 더 작은 도전자들도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은 더는 40~50년 전처럼 압도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미국의 경제력 비중이 22퍼센트라면 군사력 비중은 무려 50퍼센트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군사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른 나라 지배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줘야만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와 국가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시장주의자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 중에는 ‘자본주의에 더는 국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좌파 진영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인즉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세계 각지에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는데 국가가 왜 필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가령 포드 자동차가 기아 자동차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면 포드에게 미국 국가가 왜 필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는 한국의 삼성이 영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면 남한 국가가 왜 필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주요 다국적 기업들을 보더라도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본국 바깥에서 생산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구실이 뭐가 중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합니다. 일단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량의 절반을 본국 바깥에서 해결한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나머지 절반을 본국에서 해결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국적 기업에게는 극히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 경제 위기에서 미국 국내의 상황은 포드나 GM 같은 기업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반면 삼성과 현대에게는 한국의 상황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산의 절반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더라도 나머지 절반이 특정 국가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특정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 기업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더 중요한 문제로서, 어떤 기업이 세계 곳곳에 자산을 두고 있다면 유사시에 누가 그 자산들을 보호해 주겠습니까? 전 세계 20~30여 나라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포드의 경우 누구에게 의존해서 그 공장들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다른 나라 국가들이 그 공장들을 지켜 줄 거라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 국가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더 큰 국가가 자기 뒤를 봐 주고 있지 않은 이상 말입니다. 이 점은 현재 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GM이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데, 미국에서 GM의 운명은 미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고 유럽에서 GM의 운명은 영국, 독일 등의 정부에 미국이 가할 수 있는 압력에 좌우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의 힘이 개별 자본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각국 정부가 현재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더라도 자기 나라 기업을 먼저 구제한 다음 다른 나라 정부에도 똑같이 하라는 압력을 넣는 방식이 대세입니다.

이처럼 국가의 힘이 여전히 중요한 상황에서 미국 국가는 50년 전보다 힘이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다른 국가들이 미국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게 됐고, 이를 이용해 미국 자본의 이익에 맞서 자기 나라 자본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면에서 각국 자본가들이 서로 협력한다 해서 그들이 자기 국가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독일, 일본, 또는 중국 은행이 미국 내에서 영업할 때조차 이들은 독일, 일본, 또는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행사할 수 있는 압력에 의존합니다.

이 점은 WTO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WTO는 기업들의 국제 무역을 규율하는 기구입니다. 하지만 WTO 내에서의 협상은 국가들 간에 이루어집니다. 현재 WTO에서 진행중인 논의에서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 간에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사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그리고 개도국 기업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 갈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기업 중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결국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힘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 헤게모니의 상대적 쇠퇴

이는 미국 헤게모니의 상대적 쇠퇴 문제로 우리를 다시 인도합니다. 미국 국가는 미국 자본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지만 50년 전보다 훨씬 불리해진 상황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그들은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한 여건이 펼쳐질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같은 나라들은 소련의 위협이 상존하는 동안에는 미국의 지시를 기꺼이 따랐지만,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는 좀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한층 더 복잡한 문제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미국에서 네오콘들이 5~6년 동안 주도권을 잡게 된 데는 바로 이 같은 배경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에게는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구상의 요지는 미국이 한 세기 동안 다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세계적 패권을 확립할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회를 부여잡으려면 미국이 우세한 군사력을 이용해 자국의 지배력을 과시해야 한다는 것이 네오콘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또한 21세기에 전 세계를 지배하려면 지구상의 가장 중요한 천연 자원인 석유 공급원을 통제해야 합니다. 석유 공급원을 통제하려면 중동을 완전히 장악해야 합니다. 단지 미국이 소비할 석유만이 아니라 중국, 인도, 유럽이 소비할 석유도 통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왜 중동 지역의 ‘경비견’으로서 이스라엘에 그토록 의존하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또한 미국이 왜 이라크를 공격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통제하면 세계 석유 공급의 중심지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덕에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고 일본이 여전히 강대국이라고는 해도 이 둘 모두 산유국은 아니며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실제로는 미국 지배자들의 의도와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의 입지는 유리해지기는커녕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미국이 이라크 상황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이라크에 남아 있는 미군 병력 때문만이 아니라 이란이 이라크에 개입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암묵적으로 합의해 준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이라크에 워낙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 있는 탓에 다른 중요한 전선에 충분한 역량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령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미국에 공공연히 적대적인 좌파 정부들이 연이어 집권했는데, 이에 대해 미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미국은 이라크 저항세력과 싸우느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손봐 줄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점령이 쉬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이라크만큼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에티오피아 군대를 동원해 소말리아를 장악하려던 시도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 시도도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지난 1년 사이에 미국의 대외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오바마가 당선하기 전부터 이미 미국은 예의 공격적인 네오콘 정책에서 이탈하고 있었습니다. 달리 말해, 미국 국가의 힘을 다른 어느 때보다 과시해야 할 경제 위기의 시점에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 제국주의가 갑자기 평화의 전도사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대외정책 입안자들은 미국이 나머지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특정 국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다른 많은 측면에서 미국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만 보더라도 일부 산업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최고입니다. 항공우주 산업, 마이크로소프트로 대변되는 소프트웨어 산업, 제약 산업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다른 몇몇 국가들이 서로 손잡고 미국에 대적할 경우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은 자기 나라가 초강대국이긴 하지만 지역적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이들이 서로 협력하면 미국의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는 이제 미국보다 더 큽니다. 물론 유럽연합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국가들의 연합이며, 거기에 소속된 국가들은 많은 경우 서로 의견 차이를 보입니다.

일본은 지금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그 규모가 미국 경제의 3분의 1입니다.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 경제의 규모도 대략 미국의 3분의 1입니다. 러시아 경제는 규모가 더 작긴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에게는 중요한 석유 공급원입니다. 말하자면 미국의 처지는 부하들을 단속하는 데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피아 두목의 처지와도 같습니다. 미 제국주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중국 경제가 지금 속도로 계속 성장할 경우 20~3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를 두려워합니다. 그때쯤이면 중국도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중국은 아직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중국 경제의 규모는 아직 일본 경제와 비슷한 정도입니다. 무기만을 놓고 봤을 때 중국의 군사력은 아직 미국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병력 수는 중국군이 미군보다 훨씬 더 많으며, 따라서 미국이 감히 중국을 침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중국 경제가 지금 속도로 20~30년 동안 계속 성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기적인 경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하지만 중국이 언젠가 미국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미국 지배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미국 지배자들은 커다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예전처럼 세계를 지배하기에는 힘이 너무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전선에서 후퇴했다가는 수많은 다른 도전자들에게 더욱 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하고 이란을 위협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들은 이라크에서 철군하는 한편 이란에 유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후퇴하는 것이 참패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미국 언론들은 한결같이 오바마가 진퇴양난에 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오바마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지만 후퇴하기도 난감한 처지입니다.

이는 미국이 지금 당장은 2, 3년 전에 비해 훨씬 덜 공세적으로 행동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때때로 미국이 무차별 공세에 나서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말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평화를 얘기하는 동안 미국 폭격기들은 파키스탄 사람들을 계속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동맹국들조차 온전히 단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미국의 경비견이긴 하지만 항상 주인 말을 잘 따르지는 않습니다. 아랍 국가 수반들은 오바마와 클린턴에게 이스라엘 정착촌을 어떻게 좀 해보라고, 그러지 않으면 중동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오바마와 클린턴에게 “우리는 정착촌이 늘어나는 것을 전혀 막을 생각이 없다. 당신들이 그걸 막으려 한다면 미국 의회에서 우리가 난리를 칠 것이다” 하고 경고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도 미국과 러시아 간의 무력 충돌을 유도하려는 정치 지도자들이 일부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기에 앞으로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하기는커녕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다가도 갑자기 끔찍한 무력 충돌이 벌어지곤 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비유를 들자면, 사자나 곰 같은 맹수는 평상시에도 위협적이지만 상처 입었을 때 더 위험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처지가 바로 상처 입은 야수의 처지입니다.

정리 발언

먼저 미국을 지나치게 악마화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청중 토론 때 한 분이 말씀하셨듯이 저 또한 미국 ‘국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가’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제가 집에 있을 때 듣는 음악은 거의 모두 미국 음악이며, 제가 읽는 소설 중에도 미국 소설이 많습니다. 제가 그런 소설에서 배운 점은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 국가가 평범한 미국인들을 지독히도 학대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요즘 즐겨 보는 TV 프로는 ‘와이어’라는 시리즈물인데, 미국 볼티모어 시 슬럼가에서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그린 내용입니다. 미국 정부의 부패도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미국 기업들이 하고 있는 짓을 보자면, 그들은 이윤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닐 뿐 아니라 민주/공화 양당에 막대한 선거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미국 정치도 좌지우지합니다. 국제 무대에서 미국이 저지른 만행을 논하자면 한국 전쟁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한반도를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지 미국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독재자에 맞서 미국 자본주의에 우호적인 독재자를 지켜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1962년 무렵에 미국이 남한의 경제 발전을 허용했던 것도 사실은 그전 10년 동안 남한 경제가 워낙 지지부진했던 탓에 과연 남한이 앞으로 북한에 맞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를 미국이 걱정할 지경이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또 한 나라를 파괴하려고 한국 기업들에게 군수 물자 조달 계약을 몰아줬습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미국의 패권 아래 있었던 나라 가운데 남한처럼 경제 발전을 이룩한 사례가 흔치는 않다는 점입니다. 소위 신흥공업국가들의 부상은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제3세계 지역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나은가 하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민주당을 ‘차악’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차악도 악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오바마가 당선할 수 있게 한 분위기 변화가 미국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바마는 전 세계인들의 이익과 배치되는 이해관계를 지닌 국가 기관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온두라스에서 그처럼 놀라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출된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쫓겨났습니다. 미국은 그 쿠데타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출된 그 대통령이 온두라스로 귀국하려 하자 미국 정부는 그의 처신을 비난했습니다! 즉 미국 국가는 그 자신이 과거에 세계 곳곳에 구축해 둔, 미국이 세계를 수탈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민주적 구조들을 훼손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 없는 세상으로 가는 경향성은 엄연히 존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자본주의가 국경을 가로지르는 체제이고, 그 세계적인 작동을 규율하는 데 국제기구들이 필요하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WTO, 세계은행, IMF, 세계보건기구, ILO 등의 국제기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국제 기구에서 벌어지는 협상의 주체는 국가들입니다. 또한 이들 기구가 개별 국가의 직접적 통제를 벗어난 관료 구조를 형성할 수는 있어도 개별 국가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 기업들은 세계적 수준에서 구축된 관료 구조에도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위기 시에는 그러한 관료 구조를 쥐락펴락 하는 기업들이 그러지 못한 기업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1997~98년의 동아시아 경제 위기 때는 IMF의 개입이 한국 자본주의에도 도움이 됐지만 미국 자본주의에는 특히 더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현재 WTO의 도하 라운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전적으로 어느 나라 자본이 이득을 보고 어느 나라 자본이 손해를 보느냐를 둘러싼 논쟁입니다.

국제 기구도 국가의 뒷받침을 받는다 1999년 WTO 정상회담에 동원된 미국 경찰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이 그렇게 크다면 차라리 전쟁을 안 하는 것이 미국에 이득이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미국 지배계급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에 2조에서 3조 달러를 쏟아 붓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라크 전쟁에 한 푼도 더 쓰지 않는다면 세계 패권을 더 많이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라크에 병력을 계속 주둔시키고 있고 점점 더 많은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철군했다간 다른 강대국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만약 미국이 중동 석유를 통제할 수 없다면 일본이 중국과 손잡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플로어에서 한 분이 말씀하셨듯이, 중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는다면 그 동맹은 잠재적으로 미국보다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민주/공화를 막론하고 미국 지배계급의 어느 분파도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입니다.

군사력을 증강하는 중국 중국 공군의 수호이27 전투기

어떤 분은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봐야 합니다. 분명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은 50년 전에 비해 크게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매우 강력합니다. 어떤 분은 미국에 더는 제조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반대로 주장하겠습니다. 중국은 아주 미약한 우주항공 산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내일 중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인데, 그 비행기는 아마도 유럽산이거나 미국산일 것입니다. 중국의 자동차 산업도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서울 시내에서도 중국산 자동차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드 자동차는 간혹 보입니다. 전 세계 제약 산업도 유럽 기업이나 미국 기업들이 주름잡고 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시장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미국은 세계 최강의 제조업 국가입니다.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도 미국의 우위는 여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한편 중국의 수출품 중 다수는 100퍼센트 중국산이 아닙니다. 중국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한 다음 해외로 수출합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제력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와 동시에,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매우 모순적입니다. 중국은 미국에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돈을 빌려 줘야 하는 처지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미국과는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용해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과 대등할 정도는 아니어도 미국의 견제 세력은 될 수 있을 정도의 군사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3세계의 소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제3세계’라는 표현은 오늘날 그다지 유용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제3세계’의 일부분이었지만 그 후 산업화를 이루어낸 국가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체제로 보면 중국, 남한,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는 ‘어지간한 산업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과테말라, 파라과이, 온두라스, 볼리비아 등 남미의 많은 나라와 아프리카의 거의 전 대륙, 파키스탄과 인도 대부분 지역은 30~40년 전과 다름없이 가난합니다. 인도의 경우에도 일부 지역에는 산업이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지만 다른 지역, 예컨대 인구 1억 7천만의 우타르 프라데시 주 같은 곳은 거의 어떤 산업도 존재하지 않는 절망적인 빈곤의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지역은 확실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지역에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부를 쥐어 짜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다국적 기업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한국은 먼저 재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벌들과 국가는 이미 1962년부터 남한 정치를 좌지우지해 왔습니다. 재벌들의 관심사는 오직 한국 노동자들과 여타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들이 다국적 기업으로 성공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 45년 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민중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강요했습니다. 이제야말로 한국 노동자와 빈민 들이 지난 45년 동안 강탈당한 부를 되찾은 다음 한국 사회의 총체적 변혁을 위해 그 부를 활용할 때입니다. 물론, 막상 그렇게 했을 때 한국 민중은 전 세계의 크고 작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협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민중이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동안 제국주의에 고통 받아 온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연대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본주의에 맞선 세계적 반란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운동은 자본주의적 축적 논리에 저항하는 전 세계적 운동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경제적 착취에 맞선 저항일 뿐 아니라 전쟁에 맞선 저항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녹취·번역 천경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