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만들어진 현실》: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어떻게 ‘창조’됐는가

《만들어진 현실》 박상훈, 후마니타스, 260쪽, 15,000원

‘반지역주의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노무현과 호남 지역 차별의 피해자인 김대중의 죽음으로 지역주의 담론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이명박도 선거 제도 개편을 통한 정치 개혁을 말하면서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문제가 지역주의 극복일까? 한국의 지역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이 문제일까? 박상훈 씨의 《만들어진 현실》은 이 화두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의 핵심이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이며 이것은 박정희 정권이 위로부터 조직하고 계획한 것이라고 밝힌다. 권위주의 정권들이 저항하는 집단의 단결을 해치고 분열지배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하층 계급의 저항이 확산되면서 호남 출신인 김대중의 영향력이 강력해지자 1971년 대선 직후 박정희 정권은 반호남 지역주의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 전형적인 사례는 1980년 광주항쟁 시기에 나타났다. … 부마항쟁과는 달리, 유독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호남의 지역 정서를 불러들여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호남에 대한 편견은 ‘발견’되었고 …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갖는 것으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농업에 기반을 둔 … 조선시대에, 특별히 호남의 과다 수취를 보여 주는 증거는 없다. 민란의 발생 빈도는 호남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영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따라서 저자는 “호남 지역주의가 비호남의 반호남주의와 같은 차원으로 대비될 수는 없”다며 호남 차별 지역주의는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 권위주의 정권의 책임이지 유권자들의 탓이 아니라는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낸다.

또 저자는 권위주의 시절조차 선거에서 집권당의 지역주의가 한국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회 통념도 반박한다. 민주화 이전의 선거 결과 추세를 보면 반호남 지역주의가 영남 지역 특히 영남의 도시 지역에서 야당 지지의 증가를 막지 못했다며 집권당의 지역주의의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역에서 한 정당의 득표 독점성도 끊임없이 유동해 왔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2004 총선에서 호남 지역의 선거 시장을 독점했던 열린우리당이 그 이후 지배력을 상실한 사례일 것이다.”

저자는 이념 정책을 둘러싼 정당 간 대립이 분명하지 않은 선거에서는 표의 지리적 분절성이 나타났다고 말하면서 정책 이념 정당 체제가 대안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념 정당이냐인데, 저자는 김대중 정부 들어 반호남 지역주의는 더는 한국 정치가 해결해야 할 중심 지위에서 벗어났으므로 “실업자와 비정규직, 조선족과 이주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최저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서는 저자가 어떤 정당을 가르키는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만약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선거에서도 계급 투표를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면 적극 지지할 일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을수록 지역주의에 동조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호남 차별은 사라졌을지라도 호남인들이 억압당하고 차별받은 경험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고 영남 출신 지배자들이 민주주의 운동을 억압한 장본인들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처럼 단순히 ‘저항적 지역주의’ 담론도 문제이므로 인식을 바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을 바꾼 계기는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울 때였다. 1987년 6월 항쟁과 그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출신에 상관없이 서로 연대하면서 조직 노동자들 속에서 지역차별 의식이 약해졌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 요구들이 진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념과 정책 정당의 차이를 더 뚜렷하게 하는 동력은 아래로부터 운동이다. 저자에게 이 관점이 빠져 있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약화시킨 선거 결과를 분석할 때 아래로부터 운동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약점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민주주의 투쟁을 억압하고 지역차별을 계승한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지역주의 극복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 일인지를 알게 해 줄 것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