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YH노조 투쟁의 주역인 김경숙 열사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는 해다. 이 투쟁은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영웅적 투지를 보여 준 역사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10∼20대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씩 장시간 노동과 열흘 이상의 철야 노동을 강요받고 휴일에도 일했다. 소변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물 마시는 것도 통제했다. 그러고도 버스비가 30원이던 시절 2만 원도 안 되는 박봉에 시달렸다. 하루만 결근해도 해고당하고 법정수당이나 퇴직금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들은 사장만이 아니라 유신체제와 어용노조 한국노총과도 맞서야 했다. 박정희 정부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억압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단지 “불쌍한 어린 소녀들”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 싸운 여성 노동자”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썼다. 삼원섬유 여성 노동자들은 어용노조를 세우려는 야비한 술수와 노동자들의 투쟁을 간첩 사건으로 조작하려는 경찰의 끔찍한 매질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노조를 건설했다. 

‘똥물 사건’으로 알려진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농성을 해산하려는 경찰들에 맞서 알몸으로 최후까지 저항했다. 콘트롤데이터 여성 노동자들은 결혼·임신 퇴직을 없애고 유급 산전산후 휴가를 쟁취했고, 삼성제약 여성 노동자들은 유급 수유시간을 쟁취해 기혼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투쟁에 동참시켰다. 삼립식품 노동자들은 어용 노동조합 지도부를 거슬러 임금 인상과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YH노조의 김경숙 열사도 이런 투쟁에 앞장섰던 투사였다. 가발 및 봉제품 수출업체였던 YH는 1966년 자본금 1백만 원에 10명 규모로 설립됐지만 4년 후에는 4천 명의 노동자를 거느리고 12억 7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순이익을 냈다. 이것은 모두 여성 노동자들의 등골을 뽑아 이룬 결과였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감수하며 싸운 끝에 드디어 민주노조가 건설됐다. 노조가 최초로 조직한 잔업거부 운동은 생전 처음 감동적인 추석보너스를 안겨줬다. 조합원 전원이 함께한 일요일 연장 거부는 이틀 만에 해고된 동료들을 원직복직 시켰고, 여성들에게는 보장되지 않던 ‘부모사망 5일 휴가’를 요구해 여성차별적인 관행에도 맞섰다. 이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힘 없는 존재가 아니고 단결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노조가 성장하자 사측은 갑자기 공장을 이전하고 휴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노조는 당시 YH가 하청기업을 5개나 거느리며 작업물량을 하청으로 빼돌렸고, 수출액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며 싸웠다.  

그러나 경영진들의 계속된 자금 빼돌리기와 사업확장으로 경영상태가 악화돼 결국 폐업 공고를 내기에 이르렀다. 노조는 부실의 책임자인 장용호 회장에게는 전혀 책임을 묻지 않고 노동자를 거리로 내모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전 조합원이 폐업 반대 농성에 참여해 5일 만에 정부와 사측으로부터 폐업철회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백일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신민당사 농성

결국 노동자들은 당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정당한 요구는 세간의 이목을 끌고 지지를 이끌어 냈다. 지지 확산이 두려웠던 경찰은 농성 이틀 만인 1979년 8월 11일 새벽에 농성장에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1백여 명이 부상하고 노조 대의원인 김경숙이 사망했다. 경찰은 비열하게도 김경숙 열사가 “작전 개시 30분 전에 스스로 동맥을 끊고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08년 3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조사 결과 이 사건은 경찰에 의한 타살로 밝혀졌다. YH노조의 투쟁은 독재 정권 하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투지를 불어넣었다. 이 사건은 부마항쟁과 더불어 박정희 정권의 숨통을 끊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당시 YH노조 사무국장이었던 박태연 씨는 30주기 열사 추모 다큐멘터리에서 “그때 당시 농성했던 경험은 정말 훌륭했어요. 내가 어느 대학을 간들 그런 훌륭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까 싶어요” 하고 말했다. 실제 이 투쟁은 당시 참여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훌륭한 학교였다. 이 ‘학교’의 ‘졸업생’인 YH노조 초대 위원장 최순영 씨는 민주노동당 초대 국회의원이 됐고, 그때 농성에 참여했던 조합원 다수가 지금도 여성운동에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1970년대 그들의 투쟁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여성 노동자 개개인은 연약해 보일지라도 그들이 단결해서 싸울 때 이 모순투성이 사회를 바꿀 힘을 발산해 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