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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변혁과 민주주의 ②:
‘반MB 선거연합’ 노선은 왜 문제인가

촛불항쟁 때까지만 해도 이명박에 맞서는 주된 세력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이었다. 이때 반이명박 운동의 주도권은 거리에 있었고 민주당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러나 촛불항쟁이 가라앉은 이후 이명박에 맞선 투쟁은 주로 ‘반MB연합’으로 정식화됐고, 여기서 주요 쟁점은 늘 민주당과의 관계 문제였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향수를 불러일으켜 민주당의 지분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용산참사 항의 운동, 언론악법 저지 운동, 6월 10일 범국민대회 등에서 민주당과 전술적 제휴를 한 것은 불가피한 타협이었다. 이 운동에 민주당이 참가한다는 이유로 좌파가 불참한다면 민주당에게 운동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과의 전략적 동맹만이 아니라, 민주당과의 전술적 제휴조차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 사회진보연대 류의 입장은 문제다.

그런데 지금 반MB연합을 추구하는 주요 개혁주의자들은 아예 포괄적 쟁점을 둘러싼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으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투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일진일퇴식의 치열한 참호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대중운동 건설보다 선거를 통한 MB심판에 더 주력하는 듯하다.

주도권

상반기 동안 사안별로 운영된 야4당 연석회의는 아예 상설화됐고 여기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4당과 민주노총, 진보연대, 참여연대, 환경정의가 참가하고 있다. 이 기구 자체가 한시적·사안별 제휴라는 틀을 넘어 포괄적 연합이라는 방향을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참가단체 대부분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2009년 6월 10일 집회에 참석한 야4당 지도부  전술적 제휴를 넘는 ‘반MB선거연합’은 이명박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갉아 먹을 것이다.

△2009년 6월 10일 집회에 참석한 야4당 지도부 전술적 제휴를 넘는 ‘반MB선거연합’은 이명박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갉아 먹을 것이다. ⓒ사진 이미진

민주노동당은 “반MB 선거연합을 주도”하겠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은 더 나아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반MB, 반한나라당 정치연합’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열어 두고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김태완 서울시당 수석부위원장도 노골적으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론을 폈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 제시민사회운동이 공동으로 훌륭한 후보를 추대”하거나 “후보 단일화를 강제하는 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보수 우위 시대, 시민사회운동의 과제와 새 활로’, 《시민과 세계》 2009년 상반기호). 이것의 목표는 “제2의 혁신민주정부 수립”이다. 진보신당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만으로는 안 되고 사회경제적 대안을 중심으로 한 선거연합(‘민들레연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반MB 선거연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진보신당은 상설화한 야4당 연석회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물론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노동계급의 실망감이 커질 것이므로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패퇴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나라당만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단지 야4당 중 하나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당이다. 민주당은 10년간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면서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반노동자·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비정규직법, 한미FTA, 도시 재개발, 쌍용차 대량 해고 등 반MB 쟁점 대부분은 그 뿌리가 민주당 정부에 있다.

진보대연합

이렇게 근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인민전선)은 우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배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진정한 힘을 갉아먹을 것이다. 민주당은 체제의 안정을 뒤흔들 대중운동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안정적 기반 속에 자신들의 우위를 원할 뿐이다. 그래서 지난해 촛불항쟁에서 그랬듯이 대중 운동이 고양될 때 잠시 올라탔다가 운동이 그 이상으로 발전하려 하면 꽁무니를 빼거나 운동을 자제시키려 해 왔다. 이 때문에 인민전선이 맺어지면 그 내에서 좌파들이 동맹자를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노동계급 운동을 자제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인민전선 정치의 문제점은 상반기 투쟁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민주당은 뒤통수 치기를 연발했다. 지난해 말 부자 감세 법안이 포함된 예산안에 동의해 줬고, 올해 2월 미디어법 투쟁 2라운드에서도 ‘100일 후 협의 처리’를 합의했다. 6월 10일 6만여 명이 모여 운동이 절정에 이른 직후 또다시 국회로 들어가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와 언론악법 처리에 우유부단하고 동요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개혁주의자들이 민주당과의 동맹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더 큰 적을 물리치기 위해’ 불철저한 동맹 세력을 비판하는 것을 삼갔고, 독립적 투쟁을 건설하려는 노력 없이 ‘무장 해제’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운동은 거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신세가 됐다. 특히, 6·10 범국민대회 이후 운동을 고무할 절호의 기회에 민주당의 숨고르기에 박자를 맞추며 “집회와 항의 행동보다 2010년 지방선거까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고 뒷걸음질친 것이 가장 큰 오류였다. 이것은 쌍용차 투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식으로 민주당 추수와 그로 인한 운동의 힘 빼기가 반복되면 대중은 투쟁의 효과에 회의를 느끼기 십상이다. 이것이 인민전선(정치)의 최대 문제점이다.

그렇다면 ‘반MB 선거연합’과는 다른 선거대안은 있는가?

‘다함께’가 제안하고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 당시 채택했던 진보대연합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보대연합은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의 빈 공간을 메우려는 적극적인 시도다. 이를 위해 진보정당 지지자만이 아니라 아직 그까지 오지 않았지만 반한나라당·비민주당을 지향하는 세력까지 결집하는 선거대안이 필요하다.

이 대안이 성공하려면 적극적으로 진보선거연합 후보를 발굴하고 지지를 규합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 촛불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대안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을 비판하며 탈당한 무소속 임종인 후보를 이번 10월 안산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로 추대한 것이 진보대연합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임종인 후보가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진보정당은 한나라당 당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 손을 벌릴 것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을 추진하는 데 실질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과 인민전선 전략은 공존할 수 없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이 실패한 민주대연합의 재판이며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반MB 선거연합을 합리화하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논리가 성행한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박경순 부소장은 ‘과거와는 달리 민주노동당이라는 독립적 정당이 존재하므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합리화한다. 최근 이 논리는 민주노동당 활동가들로부터 자주 들린다. 또, “민주당을 견인”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대중 투쟁을 통한 진보 세력의 역량 강화가 선행 또는 병행”돼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조직적으로 독립돼 있다는 것이 인민전선의 문제를 불식시키지 못한다. 1930년대 프랑스 인민전선에서 공산당은 현재의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세력이었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1934년에 극우파의 쿠데타를 저지했고, 1936년에는 공장 점거 운동과 총파업으로 대대적인 양보를 받아낼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공산당 당수 모리스 토레즈는 인민전선 내의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급진당)과의 동맹을 위해 “인민전선은 혁명이 아니다. 파업을 시작했으면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며 노동자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이에 힘입어 1938년 급진당의 달라디에는 인민전선 정부의 총리가 된 후 노동자들에게 반격했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표현처럼 “포도주가 식초로 변하”듯이 노동자들은 예전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행동을 자제시키는 동안 투쟁력이 훼손돼 세력균형이 달라진 것이다. 결국 1938년 공산당은 급진당에 의해 인민전선에서 쫓겨났고, 파시즘보다 노동계급의 투쟁을 더 두려워했던 급진당은 결국 파시스트에 권력을 내줬다.

1936년 프랑스에서 인민전선 정책을 채택한 사회당의 레온 블룸(좌)과 공산당의 모리스 토레즈(우)

△1936년 프랑스에서 인민전선 정책을 채택한 사회당의 레온 블룸(좌)과 공산당의 모리스 토레즈(우)

‘투쟁을 통한 견인론’도 문제를 내포하긴 마찬가지다. 인민전선 속에서 투쟁을 강화하려 할수록, 민주당은 동맹에게 압력을 넣어 투쟁을 자제시키거나 여의치 않으면 동맹에서의 이탈을 협박할 것이다. 그런데 인민전선주의자들은 인민전선을 여차하면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전략적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이 목표에 충실하려 할수록 선거연합은 그물처럼 노동계급의 투쟁을 얽어맬 것이다.

‘투쟁을 통한 견인론’은 프랑스 인민전선을 비판하며 ‘투쟁적 인민전선’을 내세웠던 프랑스 사회당 좌파 마르소 피베르의 구실을 떠오르게 한다. 트로츠키는 피베르가 ‘투쟁적 인민전선 강화를 위해 인민전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전투적 노동자들을 인민전선에 묶어두는 “일종의 아편” 구실을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