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 프리아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오랜 암 투병 끝에 2013년 3월 6일 병원에서 숨졌다. 〈레프트21〉은 영국인 사회주의자 마이크 곤살레스의 글을 재게재한다. 마이크 곤살레스는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책갈피)의 저자이고,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스페인어문학부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이다. 이 글은 더 나은 세계를 원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 차베스의 당선에 즈음해, 지금까지의 성과는 무엇이고 베네수엘라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본 글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국영 TV와 라디오에서 “안녕 대통령”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본다. 일부는 다음 주에는 어떤 정치적 결정이 내려질지를 알기 위해, 일부는 그를 비난할 거리를 찾기 위해. 그러나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차베스가 노동계급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2006년 11월 차베스의 방문을 환영하는 국영 석유기업 노동자들

△2006년 11월 차베스의 방문을 환영하는 국영 석유기업 노동자들 ⓒ사진 출처 Colectivo UJCE Villaverde

많은 사람들이 차베스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투사라고 여기지만 차베스의 볼리바르식 혁명은 갈림길에 서 있다. 옛 지배계급은 변화를 완전히 중단시키려 한다. 혁명의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관료들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구축해 왔다.

한편으로 대중은 여전히 대체로 차베스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변화 속도에 불만족스러워 하고 옛 엘리트들의 권력이 여전한 데에 불만을 느낀다.

차베스는 1998년에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으며 당선했다. 차베스는 1992년 2월에 베네수엘라 정부에 맞선 쿠데타를 이끌었다가 실패하고 수감됐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수도 카라카스 주변과 여러 도시의 판자촌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게 됐다.

1989년 이 가난한 사람들은 IMF가 부과한 가혹한 경제 정책에 맞서 거리를 점거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운동은 카라카소라고 불리는데, 3일 만에 잔인하게 진압당했다. 그러나 카라카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볼리바르식 혁명의 시작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보유량은 세계 최대급이다. 그러나 수십 년 간 석유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은 인구의 10퍼센트에게만 돌아갔다. 명목상의 국영 석유 기업은 다국적 석유회사의 배만 불렸지 국가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쿠데타를 물리친 민중 항쟁

1999년에 제정된 볼리바르 헌법은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볼리바르 헌법에 따르면, 무능한 공직자를 소환할 수 있게 됐고, 많은 사람들이 교육도 받게 됐고, 모든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게 되고 땅도 갖게 됐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석유의 [진정한] 국유화 조처였다.

옛 지배계급은 공포에 떨었고 반격에 나섰다. 2002년 4월 우익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차베스를 대통령직에서 밀어냈다. 그러나 차베스는 48시간 만에 복귀했다.

카라카스와 많은 도시에서 베네수엘라 대중이 쏟아져 나와 차베스의 복귀를 요구했다.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옛 지배 세력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해 12월 국영 석유기업인 베네수엘라석유공사(PDVSA)의 경영진과 많은 화이트칼라 직원들이 파업을 벌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차베스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PDVSA의 노동자들은 대규모 민중 시위의 지지를 등에 업고 8주 동안 싸워 이 직장폐쇄를 분쇄했다.

혁명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혁명은 미션(Mission)으로 상징됐는데, 미션은 보건·교육·주택 관련 전국적 계획과 원주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미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민중 권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미션은 일종의 유사 국가로서, 평범한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 혁명을 계속 전진시킬 수 있었다. 2005년 1월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우익들은 여전히 정부와 사법부와 대학과 전문직의 요소요소에 박혀 있었다. 모든 곳에서 우익들은 변화에 사보타주했다.

그래도 볼리바르식 혁명은 점점 속도가 붙는 듯했고, 교육·보건·주택 관련 계획이 확대됐다. 정치 언어에서도 민족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 언사가 점점 더 많이 쓰였고, 차베스는 조지 부시를 계속 비판하면서 많은 동료를 얻게 됐다.

그리고 차베스를 낙마시키려는 우익들의 지속적인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2006년 차베스는 [1998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대통령에 재선했다. 차베스는 즉각 새로운 정당, 즉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 건설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정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이 있었다. 이 정당은 과연 민중의 자신감을 고취하고 중앙 권력을 기층으로 이양하는 것을 표현하는 대중 정당이 될 것인가? PSUV는 이런 목표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대중 조직들이 참가한 공개적 논의는 없었다.

차베스는 정당을 위에서부터 건설했고 지도부도 선출되지 않았고 차베스가 임명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PSUV가 혁명을 더 전진시키리라고 기대하며 이 정당에 가입했다.

2007년 11월 차베스는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국민투표에 붙였는데, 여기에는 경제에서 국가 부문을 확대하고 자신에게 재임 후에도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조처가 포함됐다. 차베스는 재선한 지 1년 만에 이 국민투표에서 패배했다. 왜 그랬는가?

국민투표 결과는 경고, 즉 차베스가 계속해서 큰 인기를 누리기는 하지만 대중 사이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경고였다.

미션이 본래 목적을 완수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물가 인상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이는 효과가 났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싸울 때 국가(와 차베스)는 이에 반대했다.

석유를 팔아 번 돈이 넘쳐나는데도, 국가 기반시설은 완전히 붕괴하기 직전인 듯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도로 보수와 건설 계획은 보류되거나 추진되다 중단됐다.

우익 정당들은 언론과 거리에서 차베스에 반대하는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운동을 더 많이 벌이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차베스에 반대하는 TV 방송국 설립을 국가가 인가하지 않자 우익 학생들은 거리 시위를 조직하고 거리에 불을 질렀다.

혁명의 분기점

한편, 석유 가격은 계속 올라갔고 베네수엘라의 중간계급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치지만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2007년 차베스가 패배한 이면에 놓인 둘째 문제는 부패였다. 새로운 국가 관료들은 볼리바르식 혁명의 언사를 사용했지만 이들은 점차 부유해지고 강력해졌으며 자신들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위해 일했다.

우익은 2008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카라카스 시장 당선을 비롯해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차베스가 여전히 존경받고 사랑받고는 있었지만 그가 임명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혁명은 정체하고 있었다.

올해 2월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새 헌법에 따라서 차베스에게 재선 이상의 기회를 줄 것인지를 놓고 투표했다.

이 선거에서는 모든 공직자들의 재출마권도 포함됐다. 그래서 이번에 차베스는 승리했지만 선거 운동은 양극화와 긴장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사람들은 볼리바르식 혁명이냐 아니면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옛 질서로 돌아갈 것이냐(그리 된다면 우익들은 보복을 할 것이다)를 놓고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볼리바르식 혁명 자체는 분열한 듯했다.

한편에는 끊임없이 민중 권력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정치 계급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사회주의 전망을 가진 혁명가들이 있다.

혁명은 분기점에 다다랐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격렬한 경쟁이 있고 모순도 존재한다.

새로 제정한 교육법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초를 두고 보통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사교육도 보호한다. 석유와 가스 생산 확대 계획은 베네수엘라·러시아·중국·유럽 자본이 연합한 기업이 추진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은 볼리바르식 혁명을 비난하고 온갖 난리를 떨지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있다.

배럴당 최고 1백40달러였던 석유 가격은 50달러 언저리로 떨어졌다. 내년에도 경기침체가 계속된다면 ― 그럴 가능성이 높다 ― 석유 산업의 석유 생산량은 물가인상을 벌충하고 사회 개혁을 유지할 만큼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경제적 궁핍의 대가를 치를 것인가? 만약 부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고자 한다면 혁명은 평범한 대중에게 권력과 경제적 통제권을 넘기겠노라는 약속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정책을 지지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유럽의 동맹국들도 마찬가지다. 온갖 미사여구가 많지만 미국은 여전히 베네수엘라 석유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볼리바르식 혁명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싸우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새로운 세대를 고무했다. 베네수엘라에서도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개선이 있기는 했지만 민중 권력을 향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번역 차승일


마이크 곤살레스는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책갈피, 2005)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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